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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티서 Jun 29. 2021

[이 시국에 장막희곡] 이렇게 가라앉는가

도망자의 변

  원래 한 주에 한 회씩 올리기로 한 장막 희곡 프로젝트를 결국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매주 올라오는 글을 읽어주시던 분들, 공감을 눌러주신 분들, 내심 완성 희곡의 행방을 궁금해 해주시던 분들 모두 죄송해요.

  일단 중도 포기이기는 하지만 프로젝트를 갈무리하는 글을 올리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공지인 듯 에세이인 듯 한 글을 씁니다.


 1.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저는 우선 플롯과 캐릭터 전사를 짠 뒤 무대에 대한 대략적인 고민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그 이후가 작품의 마스코트 정하기 단계였는데요. 역시 코랄색 립스틱?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을 고민하던 상태였어요. 무대 주에는 불분명하던 무대에 대한 고민도 조금 구체화된 상태였습니다. 영화 도그빌에서처럼 간단한 흰 선으로만 분리된 무대를 생각해 봤어요. 단체 생활을 하랍시고 서로 다른 아이들을, 어른들을 한 공간에 몰아넣은 교실의 폭력성을 잘 드러내줄 것 같아서요. 얄팍한 선으로만 표시된 각자의 공간. 그 공간이 지켜주지 못하는 개개인의 비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선을 넘어가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마음씨에 관해서.... 가려주는 벽 하나 없는 공간이 주제를 잘 보여줄 것 같았거든요.

   (나아가 선생님의 바지가 벗겨지는 장면에서는 무대 양 옆과 뒤에서까지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오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야말로 공개되었다는 느낌을 주려고.)


2. 왜 그곳에 있는가.

  지금 제가 작업을 중단했다가 결국 포기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해서였습니다. 최근 여러가지 일거리를 맡았는데요, 여러가지를 해도 극히 가난하다는 생각에 멘탈의 나사가 풀려버렸습니다. 그 와중에 우선은 돈 약속을 한 일들부터 처리해야겠더라고요. (물론 그런 작업들에서도 모두 손을 놓고 한 한달 간 무기력하게 살았던 것 같지만...) 아무튼 이런 투정을 부릴 생각은 아니었고, 아무래도 저의 멘탈 체력을 생각할 때 몇 개는 포기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자율적으로 집필하던 이 브런치 프로젝트를 포기해요.

  쓰던 작품이 너무너무 쓰고 싶은 내용이었다면 어떻게든 써봤겠지만, 또 위에서 언급했듯 나름대로 작업의 단계단계들을 재밌었고, 계획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지금 구상하는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제 심장에 안 와닿는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냥 전형적인 청소년 서사, 화해의 이야기 문법에 맞춰 각기 다른 정체성의 사람들이 친해지는 이야기를 그린 것 같아서요. 딱히 영혼은 안 담겨 있고요. 새삼 제가 요새는 트랜스 배제 진영과 트랜스 당사자의 연대에 큰 관심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부분이 여전히 힘들지만... 그래도 글로 더 쓰고 싶은 부분은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마음 속 문제들 같아요. 디스포리아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해야하는 문제에 밀려, 생계에 밀려, 스스로도 미뤄둔 자신에 대한 고민들에 관해서...

  어떤 교육 프로그램에 지금까지 쓴 플롯을 정리해서 냈는데, 그때 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나 이제는 이런 이야기 별로 쓰고 싶어하지 않는구나, 하고요.


3.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할까요.

  우선은 이사를 하고.

  좁은 공간이 주던 우울감을 공간 탓으로 미뤄버리고 기분 전환을 하고, 떨쳐버리기가 안 되면 운동도 끊고(과연..), 병원도 가봐야겠어요. 

  따로 장막 희곡을 정리해서 어떤 공모에 내고는 싶은데, 지금 작업하던 이 내용은 아닐 것 같아요.

  실패한 프로젝트이지만 더 이상 제가 이런 주제로 작업하고 싶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주제의 10분 희곡을 써봤어서.... 내심 장막으로 풀어야 한다는 부채감이 있었는데. 꼭 시의적절하다고 해서 제가 도전할 필요는 없었나 봐요.

  모두 건강하셔요. 몸도 마음도. 어쩌면 건강하자는 것이 은근히 어렵고 요즘 가장 중요한 계획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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