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의 수와 지혜는 정비례한다.. 고 믿고 싶죠?
최근 몇 년 사이에 흰머리가 부쩍 늘었다.
흰머리가 처음에는 그저 새치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그 수가 점점 늘어나더니 이제는 새치들을 가지치기에는 이 녀석들이 너무나도 방대 해졌다고나 할까. 음, 이렇게 점점 영역이 늘어가는 건 유쾌하지 않은데.. 그건.. 음.. 마치 제주도 땅에 중국인들이 땅을 사 모으면서 조금씩 섬을 점령해 나가는 것과 같은 느낌처럼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다. 점령당하는 기분?
몇 년 전에 유튜브를 본 기억이 있는데 최강 동안 관리라고 해서 모 할머니께서 건강 비법을 설파하시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다른 건 기억에 남지 않고 건강 쪽 보다는 다른 쪽에 더 관심이 가서 기억에 남았었는데, 60 아니 70세가 넘으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새까만 머리를 갖고 계신 부분이었다.
그 할머니 왈, " 검은콩을 매일 갈아서 먹는다"는 것이었다. 그게 왜 인상 깊어서 기억해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게 떠오르는군. 뭐 여전히 아직까진 그렇게까지 검은콩을 갈아 마실 정도의 절박한 수준까지 흰머리들이 점령한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전략적 판단 오류일까?.. 말이 쉽지 실제로 그렇게 매일 검은콩을 갈아 마시려면 엄청난 정성이 필요한 것이다.
매일 신선한 검은콩을 어디에선가 공수해 와야 하고 택배로 정기 배송을 받아야 한다. (한 무더기로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라 콩을 소분해야 하고, 그 이후 1인분의 콩 섭취량을 정한 뒤에는 물 불리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콩을 불리기 위해 담가 놓을 용기와 ( 그 일을 매일 꾸준히 실행할 용기도 함께 필요하다 )
그리고 믹서기도 필요하다. 우리 집에 예전에는 믹서기가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아내와 나, 둘 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지금은 흔적도 찾을 수가 없다. 아무튼 믹서기를 공수해 왔다 치고 콩물을 갈아먹으면 그냥 먹으면 맛이 없을 테니 양념을 쳐야 하는데 우리 집엔 요리와 관련된 양념조차 기본적으로 잘 구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부차적인 것 또한 준비해야 하는 것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거기서 끝나면 모르겠는데 여차저차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까지 준비를 해서 콩을 잘 불려서 갈아먹은 후에 매일 같이 설거지와 믹서기 날에 끼어 있는 잔여물들을 세척하는 일들이 남아 있는데 그것 또한 매일 할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진이 빠지며 "그래 까짓것 내 머리 하얀색 물감 좀 묻었다 치자.."라는 너그러운 생각까지 들 정도다. 오히려 이런 생각하느라고 흰머리가 더 생길 지경이니 원.
흰머리는 보통 유전 유전의 경우가 많다고 배웠던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아버지도 내 나이쯤 해서 흰머리가 조금씩 생겼던 것 같다. 물론 그때 기억은 희미하긴 하지만 40대가 넘어서는 염색도 하셨던 것 같고, 뭐 그런 걸 보니 나도 조만간 향후 몇 년 안에 염색을 해야 할 처지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멋 부리는 컬러 염색이 아닌 무려 "흰머리 염색" 말이다.
그 생각을 하니 조금은 서글퍼지는 느낌이긴 하지만 애써 외면하기로 하고, 요즘에는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흰머리는 미용 가위로 조금씩 잘라주는 편이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뽑아재꼈는데, 최근에 미용실에서 미용사가 나에게 언제부턴가 매번 하던 멘트였던 "어머 손님! 손님 머리숱이 정말 많으시네요!"라고 하는 말을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되면서 약간의 두려움과, 약간의 걱정과, 여러 가지 탈모와 머리 심기 후기들을 간접 경험해 본 바로 귀한 머리카락을 굳이 뽑아서 전력 손실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저 잘라 주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그리곤 생각한다.
" 흰머리가 늘어가면 늘어 갈수록 지혜로워진다."
음, 옛 어른의 격언을 의지할 수밖에 없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