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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끌 Mar 30. 2022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 #47

태어나서 죄송하다고? 이게 다 무슨 말인가? 버려지는 아이들에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볼 때도 답답했는데,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어린 시절에 대해 아픈 기억들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전안나 작가의 고백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태어나 예쁘게 잘 자라야 하는데... 작가의 이름에 고아, 무적자, 입양아, 아동 학대 피해자라는 수식어와 함께 하고 있다.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몰라 그 답을 찾기 위해 읽었던 책에서 희망을 찾았다고 하는데...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는 전안나 작가가 자라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시기를 견디는 동안 읽었던 수많은 책 중에서 큰 깨달음을 주거나 삶에 영향을 주었던 책에 대한 소개를 담고 있다. 이 책에는 작가가 선정한 30권의 책에 대한 소개와 함께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곁들여져 있다.




p.24

나는 재투성이 신데렐라였다. 양어머니로부터 학대받는 신데렐라가 되어 입양된 다섯 살 여름부터 양어머니 집을 탈출한 스물일곱 살까지 나는 매일 울었다. 여섯 살 크리스마스 사진에도 울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유치원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 집집마다 가정 방문을 했던 날에 찍은 사진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양어머니에게 맞아서 울고 있었고, 초인종이 울려서 나가 보니 유치원에서 온 어색한 흰 수염을 단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줬다.


p.49

결혼 두 달 전에 양어머니 집을 나왔다. 가출, 아니 출가라고 해야 할까? 혼수도 할 것 없이, 남편 집에 옷 가방 하나 들고 들어가서 시작한 결혼 생활이었다. 남편은 멀쩡한 집의 아들로 태어나 강남 8학군에서 학교를 다녔고, 유학도 다녀왔으며 부모님이 경제적인 준비도 잘해놓아서 얼마든지 더 나은 결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나랑 결혼했을까? 지금도 미스터리이다. 어쨌든 남편은 나를 선택하는 바람에 못 볼 꼴을 많이 겪었다.



이 책에서 흥미롭게 읽은 내용으로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을 시작으로 27년간 태어나서 죄송한 존재였다는 작가 자신에 대한 고백 같은 이야기부터였다. 과거에 글쓰기 강좌에서 진행했던 '내 인생의 결정적인 시기'에 대해 써봤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자기 역사를 쓰는 이유가 '자신의 존재 확인을 위해서'라는 말에 공감한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작가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를 엿볼 수 있었는데 참 잘 자랐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김애란의 <칼자국>에서는 양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최광현의 <가족의 두 얼굴>에서는 자신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었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낳아 준 친엄마, 키워 준 양엄마, 남편의 시엄마, 양아버지와 사실혼 관계의 새엄마까지 넷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진짜 엄마는 없다고 말했다. 엄마가 없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아버지가 떠난 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가끔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예전보다 더 나이 드신 어머니를 뵐 때마다 뭐라도 더 챙겨 드려야 하는데 싶은 마음이 든다. 작가는 어떻게 그 많은 시간들을 견디며 살았을지 온전히 그 마음을 다 헤아리진 못하겠다.



p.77

나는 지옥에서 살았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슬퍼서, 나는 죽기로 결심했다. 매일 죽으라는 양어머니의 저주를 들으며 사는 이곳이 지옥이었다. 양어머니만 없으면, 그곳이 바로 천국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죽음은 칼로 손목을 긋는 것이었다. 문구점에 가서 두꺼운 공업용 커터 칼을 사왔는데 막상 그으려니 어느 정도 힘을 줘야 하는지 몰랐다.


p.86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나를 힘들게 했던 양어머니도 이제 보니 나보다 키도 작고 왜소한, 여든 살이 넘은 노인네이다. 힘들게 오르락내리락했던 장위동 달동네는 이제 재개발을 해서 평지가 되었다. 길고도 길었던 등하굣길은 골목길에서 이차선 도로가 되었다. 낯선 집에서, 낯선 여자에게 맞던 작은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전안나 작가는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서 삶을 시작했다고 한다. 다섯 살에 입양을 갔지만 여섯 살 때 출생 신고가 됐고, 양어머니는 온갖 이유를 들어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를 때렸다고 한다. 그리고 양아버지는 사업을 말아먹고 대학 등록금 한번 지원해 주지 않았다고 하는데... 입양을 해서 이렇게 키워도 되나 싶은 생각에 울컥하고 분노가 치민다. 


이 정도면 삐뚤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녀는 스무 살 때부터 그들을 경제적으로 부양하다 그 집에서 나와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키우며 산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계속되는 폭언과 협박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영화 <굿윌헌팅>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심리학 교수 숀은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윌이 불우한 시절을 보낸 이후로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할 때 '너의 잘못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그를 다독여 준다. 작가도 아직 자신이 이겨내진 못했지만 이런 일을 겪었을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었다는 말과 닮아 있다. 


이 책에는 <달과 6펜스>, <배려의 말들>, <인생>, <논어>, <이상한 정상 가족>, <어떻게 살 것인가> 등 다양한 책을 통해 작가가 느끼고 배운 것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한 편의 드라마틱한 소설 같은 이야기를 작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 무심히 적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자신의 삶이 힘들다고 뭐가 잘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 출처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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