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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by 책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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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이사빛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죽음을 입 밖에 내는 일은 여전히 금기다. 그러나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각종 사고와 비보는 우리를 계속해서 삶의 유한성 앞에 세운다. <죽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는 죽음이라는 불편한 주제를 도덕적 훈계나 종교적 단정이 아닌, 철학적 사유와 생활의 언어로 풀어낸다.


플라톤은 언젠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철학이란 결국 죽음을 연습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책의 저자인 나이토 리에코는 이 오래된 문장을 상기하며 죽음을 교리나 관습으로 가르치는 대신 고대 철학에서 현대 물리학까지 가로지르며, 각자가 자신만의 ‘죽음의 언어’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죽음을 묻는 일은 결국 ‘나’를 다시 조립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현인들의 사유를 현대어로 다시 꿰어 낸다. 소크라테스는 『변명』에서 죽음을 “깊은 잠이거나 더 나은 삶으로의 이행”으로 보며, 무지(無知)의 자각을 통해 공포를 벗겼다.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철학을 “죽음의 연습”이라 규정하고, 영혼을 맑히는 절제와 성찰의 훈련을 제시했다. 니체는 내세의 위안을 거부하고 아모르파티(운명애)와 영원회귀 사유로 “지금을 무한히 반복해도 좋을 만큼 사랑하라"라고 요구했다.


저자는 이들의 논의를 현실의 장면—병실, 부엌 식탁, 장례식장—으로 끌고 내려와, 교훈이 아니라 실천으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그렇다면 왜 지금, 죽음을 말해야 하는가? 사회 전반에서 죽음 대화는 종종 불길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개인적 비극과 예기치 못한 사고 소식이 이어지는 현실에서, 침묵은 대비를 미루게 만들 뿐이다.


저자는 “죽음 담론의 문해력”을 높여야 가족 간 의사결정의 혼란을 줄이고, 남은 자의 죄책감과 후회를 덜 수 있다고 지적한다. 동시에, 힘든 마음이 지속될 땐 주변의 신뢰할 만한 사람과 전문기관의 도움을 즉시 요청할 것을 권고한다. 도움을 구하는 행위는 약함이 아니라 생을 지키는 실천이라는 메시지다.


나이토 리에코의 <죽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를 덮고 나니, 마음 한켠이 조용히 흔들린다. 죽음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만으로 방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책은 오히려 이상할 만큼 맑은 빛을 품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공포가 아닌 사유의 문제로 옮겨 놓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이토 리에코는 말한다. 죽음은 체험할 수 없지만, 사색의 연습은 가능하다고. 그 연습은 마음의 체력을 키운다. 그것이야말로 중년 이후의 삶을 지탱하는 근육이다. 우리는 결국 죽음을 배움으로써 더 선명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웰다잉을 위한 준비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조금 더 또렷이 살아내려는 태도다. 그리고 그 태도의 출발점에, 이 책이 조용히 놓여 있다.


이 책은 가족과 죽음 대화를 시작하려는 사람, 병상 동행·돌봄·상담 등 현장의 실무자, 상실을 겪었거나 곁을 덜 아프게 돕고 싶은 이들, 그리고 소크라테스–플라톤–니체의 사유를 생활의 언어로 정리하고 싶은 독자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이다. 또한 죽음은 끝을 이야기하는 일은 불길함이 아니라, 지금에게 예의를 갖추는 일임을 이 책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 출처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

https://blog.naver.com/twinkaka/22406513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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