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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끌 Sep 12. 2020

구해줘, 밥

'책끌(책에 끌리다)' 서평 #61

<구해줘, 밥>은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 주는 책이다. 저자는 〈한국인의 밥상〉 제작노트에서 찾아낸 4년여 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삶과 그 삶이 녹아 있는 음식 레시피들을 보면서 뜻밖의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고 이야기했다. 저자 자신이 그랬듯 ‘분노의 계절’에 누군가에게는 진솔한 삶이 버무려진 한 끼의 밥상을 나누어 먹는 기쁨이 아픈 상처를 치료하는 약보다 더 나은 위로를 건네는 느낌을 받았다.

  

구해줘, 밥


2020년, 코로나19는 8개월을 넘어가면서도 잦아들지 않고 우울감과 상실감을 키워가고 있다. 위드(with) 코로나 혹은 코로나 블루 시대라 부르기 시작한 여름을 지나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 오는 길목에 서 있다. 하지만 시간도 날짜도 계절의 변화도 느끼지 못한 채 불만족스러운 하루를 힘겹게 버텨낸 하루에 이 책은 맥주 한 모금에 술안주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최불암은 갓 지은 밥에 지방의 특산품이나 별미를 재료로 만든 다양한 음식을 맛보며 고향의 향기를 전했다. 90년대 20대 청춘을 보낸 40~50대가 주축으로 나오는 TV 예능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서 가수 양수경은 친구이자 동생들을 향해 목청껏 외친다. '얘들아, 밥 먹자~~~'라고... 

구해줘, 밥


이 책은 저자가 〈한국인의 밥상〉을 촬영할 당시에 직접 발품을 팔며 전국 팔도를 취재하면서 만났던 서른세 가지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사람들의 이야기와 만난 맛깔나게 버무려져 음식들은 입맛을 다시게 한다. 생소한 음식들에 대한 소개도 많고, 집에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레시피 소개도 흥미롭다.


저자는 촬영과 편집을 반복하던 자신의 일상에 회의도 들고 불만이 쌓여가지만 마땅히 풀 곳을 찾지 못하던 때 <한국인의 밥상> 제작노트를 발견하고 그곳에 숨어 있던 보석 같은 시간 속으로 회귀한다. 그가 펼쳐놓는 인생 레시피를 따라가다 보면 푸릇한 5월의 향이 가득한 시절과 만난다. 백두산에서 만난 노부부가 끓여준 손두부 명태탕이 어떤 맛이었을지, 부산 자갈치시장의 아지매가 구워주는 곰장어는 어떤 맛일지 알 수 없지만 단짠내가 진동할 것 같아 입맛을 다시게 된다.


송이 박나물 무침, 고기 무자고 볶음, 갓김치 멸치 육젓, 삼치 껍질 유비끼, 토란탕, 메밀반대기, 거지탕 등등. 먹어본 음식보단 음식도 생경한 음식들과 그의 기억을 따라 함께 거닐다 보면 전국 팔도를 단숨에 돌아본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한겨울 눈 사냥을 그리워하는 70대 산골 할아버지의 눈물도, 쉰이 넘은 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연신 예쁘다고 속삭이던 치매 앓는 어머니의 손길도, 깊은 산골 처녀 농군과 결혼한 군인 아저씨의 애틋하고 아름다운 연애담도 따뜻함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일에서 사람에게서 상처 받았던 경험을 음식으로 치유했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여러 편의 이야기를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로 본듯한 경험이 쌓인다. 그가 일에 짓눌려 숨이 막히던 날에 ‘재미 삼아, 일삼아’ 따왔다는 물김을 뜨거운 밥 위에 올려 먹으라며 싸주셨던 소기점도의 노부부 이야기를 읽을 때는 김광석의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흥얼거린다.  


[한국인의 밥상]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구해줘, 밥>을 읽다 보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이거 봤었는데...' 하며 슬며시 미소 짓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던 일이 코로나19 이후 소중한 기억이 되어 버린 것처럼 이 책은 삶의 행복은 멀지 않은 가까이에 있다고 이야기해 준다.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린 저자는 20대 이후에도 여전히 불안정한 하지만 열정적이고 변화무쌍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20대의 삶과 전혀 다를 바 없고, 여전히 미숙하고 불안전하지만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며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좋아하는 사람들과 밥 한 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워지는 때다.


* 출처 : https://blog.naver.com/twinkaka/222087136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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