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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그녀 Nov 21. 2023

매운맛 아들, 딱 알려드립니다

<최민준의 아들 코칭 백과>

"필통은 가져왔어?" 

오늘은 자상한 엄마가 되고자 다짐하고 퇴근했었다.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으잉? 놓고 왔네. 헤헤" 웃음이 나오니?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은 벌써 일주일째 학교에서 필통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 필통 속이 어떨지 상상되며 이가 악물어진다. 

"그럼 학교에서 글씨 어떻게 쓰니? 연필이 다 닳았을텐데." 

"괜찮아요. 학교에 조그만한 연필깎이 갖다 놨어요" 아들은 뿌듯한 표정으로  그런 일에는 성질낼 필요가 없다는 듯 당당하게 말한다. 늘 교실에서 마주하는 '이런' 남학생들에 익숙하건만 내 품의 자식한테는 쿨하게 넘어가지지 않는다. 

"그래도 가지고 다녀야지. 습관이야 습관!" 

꾹 눌러담은 한 마디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 듯 배실배실 포켓몬 카드만 만지작거리며 쳐다본다. 여기서 끝낼 것을 나는 그 모습이 거슬려 한 마디 톡 쏜다.

"너 엄마가 말하는데 계속 카드만 볼거야?" 여기서부터는 '화'다. 결국 엄마를 존중하지 않는다네, 학생이 되는 기본을 지금 배우는 거네 하며 일장연설을 뿜었다. 뒤돌아 부엌으로 향하는 내 마음은 '그리 다짐하고도 난 엄마로서 낙제야!'하며 익숙한 자책이다. 대체 왜일까? 아들은 하는 것이 늘 부족해보이며, 간단하게 끝날 대화가 분통 터지는 훈화말씀으로 마무리되어 꼰대 자책을 하게 된다. 




교실에 있으면 여학생들은 잘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손꼽는 반면 남학생들은 섬세하고 성실하게 생활하는 아이들이 손꼽힌다. 하지만 내 품의 초등 교사 아들 아닌가. 나의 목표는 그 손꼽히는 남학생들에 있단 말이다. 수업시간에 눈을 초롱이고, 글씨도 번듯하며, "선생님, 오늘 일기 내는 것 맞죠?" 하며 숙제를 나보다 더 잘 챙긴다. 이런 남학생들은 우리 아들과 기질이 다른 걸까? 그 아이들의 학부모님은 나처럼 분통 터뜨리는 유전자가 없어 아들도 순하고 성실하게 낳으셨나? 선배 엄마들의 아들 키우기 힘들다는 푸념이 사춘기때 인줄 알았는데 학교에 들어가니 사사건건 갈등이다. 등교 시각, 알림장 쓰기, 서랍 속 학습 준비물 정리 등 신경써야 할 것이 많다. 또 매 주 받아쓰기, 독서활동기록장, 일기 등 챙겨야 하는 과제물이 있다. 잔소리와 그에 대한 내성이 강해지는 아들의 모습(행동은 달라지지 않으나 잔소리를 흘려듣는 기술은 나날이 늘고 있다)에 속시끄러운 무력감이 가득 찬다. 


사마귀 관찰에 점퍼 채 땅바닥에 바짝 붙어있다...빨래...



그 날도 연산 문제집 두 페이지를 한 시간 동안 온 몸을 베베 꼬아가며 풀고, 양치하고 침대에 누울 때까지 30분이 걸렸던 밤이었다. 인내심으로 눌러 참은 말들이 가득차서 잠이 오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고 있어.' 칭찬으로 신이 나서 의욕적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는데, 나도 아이도 악순환의 굴레에 빠진듯한 실패감에 답답했다. 육아가 풀리지 않을 때 늘 그렇듯 책을 찾는다. 뒤적뒤적 밀리의 서재 베스트 목록을 훑어보는데 <최민준의 아들 코칭 백과>라는 제목이 눈에 띈다. 목차를 보고 놀랐다. 전부 내가 하던 잔소리들이다. 


다음 날 함께 속터졌던 남편에게 보낸 책의 목차


책장을 넘기며 내가 너무 단기간에 아들을 바꾸려 했다는걸 깨달았다. 학교 생활도 처음 틀이 잡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반복되는 실수를 빨리 고쳐주려 했다. 딸 아이에 비해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말들을 툭툭 내뱉는게 사회 생활에 문제가 될 것 같아 긴 훈화를 던져댔다. 지금 당장 내 기준에 맞는 아들로 만들고 싶었다. 조급함은 화가 된다.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 꾸물꾸물 양말 신는 아이에게 "빨리 좀 해!" 고함 치고 싶은 것처럼 "빨리 변해!"라고 재촉하는 마음은 분노 섞인 잔소리가 되었다. 책은 말한다. 


우리의 훈육은 늘 담백해야 효과를 발휘합니다.

 '잘못을 이번 기회에 뿌리 뽑아버리겠어!'와 같은 마음엔 

분노가 담기기 쉽습니다.

엄마의 피드백과 조치가 문제의 본질과 멀어질수록 

훈육의 효과는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없으면 화가 납니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이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다릅니다. 





이 책이 준 아들 키우기의 키워드는 '인정 욕구'와 '논리'였다. 그러고 보니 결혼 전 부부 생활에 관해 줄창 읽었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사랑의 7가지 언어> 등에서 공통적으로 '남자는 존경, 여자는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남자는 많이 인정해줘야한다' 라는 내용이 있었다. 아들들은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인정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고 한다. 가족이나 또래에게 인정 받기 위해 무모한 행동이나 공격적인 장난, 제멋대로 보이는 말을 하기도 한다. 반면 인정 욕구를 자극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아이가 열정을 쏟는 관심사나 가끔 컨디션 좋을 때 잔소리하던 교정 행동을 한다면 꼭 그 '행동에 대한 과정이나 변화 정도'을 읽어주자. '읽어준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했을 때 그 과정, 노력, 노고 등을 그대로 말로 표현해주는 것이다. 숙제를 매번 스스로 하지 않다가 한 번 챙겼다면 "이번에는 스스로 숙제를 챙겼구나."와 같이 담담하게 말해주는 것이 좋다. 가기 싫어하는 학원에 다녀왔다면 "힘들었을텐데 참고 다녀왔네" 때로 마음에 안드는 쓸데없는 것(엄마 피셜)도 언급해주자. "이전보다 게임 실력이 좀 늘어난 것 같은걸" 나중에 잔소리도 잘 흡수될 수 있도록 마음 바닥을 잘 다져놓아야 한다. 





다음 키워드는 '공감'보다  '논리'다. 반복되어 언급되는 내용이 아이의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네가 그러면 엄마는 속상해"와 같이 엄마의 감정에 호소하지 말라는 거다. 아들의 무심한 반응에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SNS에서 엄마가 엉엉 울 때 아이의 반응을 영상으로 찍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어떤 아이는 엄마를 따라 울고, 또 다른 어떤 아이는 오히려 웃기도 했다. 공감능력의 차이다. 대부분의 아들은 딸에 비해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 아들은 엄마가 슬퍼하지 않도록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논리적인 이유를 들어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아들은 사회적으로 약속한 규범이기 때문에, 혹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므로 어떤 행동을 한다. 책의 제안대로 "알림장을 보고 다음 날 숙제를 챙기는 것은 학교의 규칙이야"라고 말해보자. 이렇게 논리적인 것이 감정을 자극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엄마와 아이가 마주 보며 대립하는 입장이 아니라, 나란히 서서 사회적 합의를 지키는 방향으로 지도해야 한다. 


어딜가나 나무에 기어오르는 아들, 엄만 걱정이 앞선다


사실 육아서의 이론과 실전은 다른 부분이 많다. 그리고 실전은 너무나도 다채로운 상황이라 어떻게 적용해야할 지 막막할 때가 많다. <최민준의 아들 코칭 백과>는 이름도 백과사전 처럼 다양한 타입의 아들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정리해두었다. 쭉 읽다보면 우리 아들 이야기가 아니여도 같은 결의 흐름이 있다. 더불어 내 아이가 특별히 문제아는 아니라는 깨달음과 함께 큰 위로가 된다. 책의 마지막을 덮으며 내겐 '인정욕구'와 '논리'가 모든 유형의 아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만능 소스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아들을 재촉하고 어르고 달래며 끌어가는 하루를 보냈다. 아들 엄마 동무들이여! 맛깔나게 아들을 요리하는 내일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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