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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그녀 Dec 01. 2023

엄마! 난 왜 재벌 3세가 아니야?

<트렌드 코리아 2024> by. 김난도

"엄마.. 난 얼굴도 못생겼고 금수저도 아니야. 공부도 못해. 이번 생은 망했어."

아이가 이런 말을 한다면 마음이 어떻겠는가. 요즘 아이들은 재벌 3세를 추종한다. 좋은 집에서 예쁘게 꾸민 아이돌의 삶을 관심있게 들여다보며 그렇게 살고 싶어한다. 학생들의 일기 검사를 보면 자신에 대한 불만족이나 깊은 열등감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이 끄적여 있다. 공부도 운동도 악기 연주도 잘 하고, 얼굴도 예쁜데다 착한 아이들이 교실 안에 날로 늘어간다. 예전에는 질투 어린 시선으로 시샘하는 아이들이 많았다면 요즘은 그런 아이들을 추종하는 분위기다. 아예 '멋진 애'로 인정하는거다. 부러우면 '멋진 애'처럼 팔방미인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되지 않나 싶다. 하지만 아이들은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 생각되면 일찍 포기하며 '나는 좀 쟤보다 못한 애'로 생각한다. 



비단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SNS를 보면 돈도 많고 얼굴도 예쁘며 운동으로 탄탄한 몸매를 지니고 자녀교육도 잘하는 완벽한 엄마들이 넘친다. 그런 이들을 보며 쿨하게 넘어가기란 쉽지 않다. 인스타 피드를 후루룩 넘기며 부러움과 감탄의 쓰나미가 한 차례 지난 뒤 남는 것은 허탈함이다. 마음이 약한 이들은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우울감까지 찾아온다. 또 다른 효과로 어떤 이들은 그들처럼 되기 위해 무리한 노력을 한다. "우리 집은 왜 차가 안좋아?" 아이가 이런 말을 할 때 마음이 덜컥 내려 앉으며 외제차를 검색한다. 근육 탄탄한 몸매에 일과 가정을 모두 꽉 잡은 워킹맘이 되고 싶다. 우린 완벽한 부모이자 사람이 되고 싶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김난도 교수님이 매년 쓰시는 <트렌드 2024>가 출간되면 한 해를 정리할 때가 왔구나 싶다. 매년 연말이 되면 이 시리즈의 책을 펼친다. 어쩜 이렇게 내가 피부로 느끼는 사회를 잘 정리해두었는지 놀랍다. 더불어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의 흐름도 사례를 통해 알려준다. 신개념 단어들의 향연이라 사자성어 외우듯 읽을 때는 감탄하며 이해하지만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랬다. 지금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알면 보편적인 이해를 가지고 지혜롭게 행동할 수 있다. 아래 세대의 생각을 알고 꼰대가 되기 싫은 것도 이 책을 읽는 이유다.



올해도 10가지의 핵심 키워드와 그에 따른 다양한 개념들이 담겼다. 직업병인지 읽으면서 내내 우리 반 아이들의 얼굴이 동동 떴다. 이 사회적 흐름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교실 속에서 마주하는 일들이 떠올랐다. 또 염려되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가르쳐야할 지 고민되었다. 10가지 중 생각의 흐름이 계속 되는 것은 완벽한 사람, 곧 ‘육각형 인간이다.







육각형 인간이란 외모, 학력, 자산, 직업, 집안, 성격, 특기 등 모든 측면에서 흠이 없는 사람을 뜻한다. 심리, 진로 등 많은 검사지에서 육각형 이미지를 활용해 나타내는 것을 '헥사곤 그래프'라고 한다. 그런데 이 육각형 끝 점에 외모, 학력 등 하나라도 뛰어나면 부러울 법한 모든 요소를 두고 각각 만점을 주었을 때 아름다운 육각형이 자태를 드러낸다. 이런 육각형 인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단다. 읽자마자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는게 힘들 수 밖에 없구나' 싶었다.


육각형 인간은 노력만으로 안되는 요소를 갖춰야 한다 (출처: 트렌드코리아 2024)



쿨해지려 노력하지만 나 또한 '바디 프로필에 도전해야 할까?' 혹은 '부동산 공부를 열심히 해봐야 하나?' 라는 내적 고민을 종종 하게 된다. 모든 요소를 갖춘 사람이 되고 싶은거다. 이것은 노력으로 완벽을 만들고자 하는 완벽주의와 다른 느낌이다. 육각형 인간의 요소 중 노력으로 안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육각형을 제외한 나머지 다각형 인간들의 마음이다. 선망 어린 질투, 나에 대한 불만족, 요소 하나하나를 채우려는 무리한 노력 등 스스로를 행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심리가 발동된다.



<프랑스와 한국에서 중산층을 정의하는 기준>    [출처: 임의진, <숫자 사회>]

프랑스

1. 1개 이상 자유롭게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을 것

2. 직접 즐길 수 있는 스포츠 하나가 있을 것

3. 다룰 줄 아는 악기 한 가지가 있을 것

4. 남들과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 하나가 있을 것

5. 공분에 의연히 참여할 것

6. 약자를 도우며 봉사를 꾸준히 할 것


한국

1.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2. 월 급여 500만원 이상

3. 2,000CC급 중형차 이상 소유

4. 통장 잔고 1억 원 이상 보유

5. 해외여행 1년에 1회 이상 다니는 정도



책에 언급한 프랑스와 한국의 중산층을 정의하는 기준을 보면 관점이 확연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기준은 1~5까지 모두 돈과 관련되어 있다. 더불어 '오 마이 갓! 저 중에 나는 몇 가지나 갖추고 있나?'하며 손가락을 꼽게 된다. 모두를 중산층 이하로 만들어버리는 매직 기준이다. 물질로 자신을 정의하면 행복하기 어렵다. 목표 지점에 도달해도 세상의 돈은 끝없이 찍어져 나와 있기에 성취에 취하기도 전 또 다른 상위 목표가 생긴다. (30평대 아파트를 소유하면 이제 강남의 아파트로 진출하고 싶어지는..) 문제는 많은 아이들도 자신들의 미래를 저렇게 혹은 저보다 높은 기준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육각형 인간과 더불어 이 책에서 언급한 '디토 소비'와 '요즘남편 없는아빠'도 완벽한 인간을 추종하는 심리와 결이 비슷하다. 디토 소비란 한 마디로 '따라쟁이 소비'다. 영화 '사랑과 영혼'(물레씬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의 여자 주인공이 했던 말 "디토(ditto)"는 "나도"라는 뜻이다. 때론 어떤 사람이 좋아서(인플루언서, 연예인 등), 콘텐츠를 보다 보니 사고 싶어서 "나도 살래!" 하며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사람을 추종하여 소비하는 것은 육각형 인간을 선망하는 심리와 비슷하다. '요즘남편 없는아빠'는 80년대 생 아빠들을 말한다. 아빠로서의 멋짐을 좀 알고 그 역할을 충실히 해서 멋진 남편과 완벽한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요즘남편 없는아빠' 또한 궁극적으로는 '멋지고 완벽한 나'를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여기에서도 일부 '다각형 아빠'들은 '그들은 완벽한 아빠고, 난 못해'라며 일찌감치 포기해버리며 자신을 모자라다 생각한다. 





교육 이론상 사람이 노력하고 싶은 도전 과제 수준은 현재 자신의 수준보다 +1 정도다. 너무 높은 과제를 받아들면 이내 포기하며 더 나아가 자신을 '모자란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현재의 트렌드를 반영한 '육각형 인간'이라는 용어와 그 내용을 살펴보며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육각형 인간'이 되고 싶어 과도한 노력을 하다가 이내 진정 소중한 가치를 놓치진 않을까? 혹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비관하며 열등감으로 살아가진 않을까? 나아가 아이의 '육각형 인간' 추구로 부모의 지원이 과도해지진 않을까? 중심을 잘 잡지 않으면 아이들 세대의 삶은 '만족감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기 어려운 시대'가 될듯하다.



인도 배낭여행을 30일 다녀온 적이 있다. 처음에는 더러운 환경에서 옷도 갖춰입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안쓰러웠다. '태어난 곳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사는건 좀 불공평하지 않나'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하지만 여행의 달력이 채워질수록 생각인 변했다. 생각보다 이곳의 아이들도 꽤 행복해보였다. <삐뽀삐뽀 119>의 하정훈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요즘 부모들은 모자란 환경을 계속 채워주려고 해요. 그런데 그게 아니예요. 아이들이 그 환경을 인정하고 딛고 일어서는 힘을 길러줘야해요." 서로 다른 삶의 모양새를 부족함 아닌 개성으로 느껴야 한다. 그 중 극복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노력으로 얻을 수 있게 격려해주면 된다. 사실 어른인 우리부터 삶을 개성으로 인식하는 것이 잘 안되지만 아이들 세대는 좀 바뀌어야하지 않을까? 


Chat GPT가 말하는 성공한 삶의 기준 중 육각형인간의 조건은 '재정적 안정성'정도다 (출처: Chat GPT)


요즘 아이들의 꿈은 '쉬는 백수'다. 요술램프가 있다면 어떤 소원을 빌고 싶은지 물으면 '돈, 외모, 공부'는 빠지지 않는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프랑스와 한국의 중산층 기준을 하나씩 불러줬다. 한국인 기준을 불러줄 때는 "우리 아빠도 이 조건은!" 등 웃으며 농담을 던지더니 프랑스 기준을 불러줄 때는 조용했다. 아이들도 뭔가 다름을 느꼈다. 그 어떤 때보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대화를 많이 나눠야 할 때다. 삶의 가치를 노력으로 충분히 채울 수 있는 것으로 두어야 한다. 자신의 소소하고 명확한 성취를 느끼며 효능감있게 살아가야 행복하다. 자신이 갖고 태어난 환경을 인정해야한다. 



밥 먹는 식탁에서 이런 질문을 나눠보자. '돈이 많아지는 것을 목표로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만약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말해주고 싶니?' '멋지게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완벽한 사람이 있을까?' '직업이 아닌 어떤 꿈을 꾸고 있니?' 이때 일장연설은 금물이다. 아이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며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발휘하자. '육각형인간'을 가랑이 찢어지게 쫓아가지 않으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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