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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그녀 Jan 04. 2024

서울과 시장 물가가 다르냐고요?

경주 안강 시장으로 시작한 한 달 살기 둘째 날

살아가는 여행은 짧은 그것과 다르다. 밥을 해 먹어야 하고, 빨래와 청소를 해야 한다. 컨디션 유지를 위해 안락한 환경에서 잠도 푹 잘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도 많다. 첫날 일정의 시작이 '시장 장보기'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각종 기본양념류, 참치나 라면 등 비상 식품류 등 대형마트에서 살 수 있는 것은 미리 구비하고 왔지만 야채나 생선, 고기 같은 신선제품은 현지에서 공수해야 한다.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안강시장으로 향했다. 경주 시내에서 25분쯤 떨어져 있는 이곳 안강읍은 시골 깡촌이 아니다. 맘스터치, BHC 등 프랜차이즈 가게들도 제법 있다. 안강 시장도 규모가 꽤 컸다. 4일, 9일이 장날이라 우리가 간 날은 문 연 곳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사방으로 뻗은 길 양쪽으로 빽빽이 상점들이 차 있는 것으로 사람들이 가득한 장날의 풍경이 짐작되었다. 


4, 9일 장날에 꼭 다시 와야지! 


화려한 색깔의 고무로 된 털 장화, 말려 놓은 생선들, 4인분에 만 원인 국 가게를 지나 '엄마 손 반찬'이라는 가게에 멈춰 섰다. 갖가지 반찬들이 먹스럽게 진열되어 있었다. 장조림, 각 종 나물, 진미채 조림, 젓갈류 등 눈알이 굴러갈수록 입 안에 침이 고였다. 하루 한 끼는 외식하기로 했기에 반찬은 딱 두 가지 고르기로 했다. 아이들 1개, 어른 1개를 고르느라 조금 고심했다. 첫째는 건새우볶음, 둘째는 쥐포 조림을 두고 토론을 펼쳤다. 원하는 것이 다른데 1개를 골라야 하니 말이다. 결정을 못하기에 "누가 양보해 볼까?"라고 했더니 첫째가 기꺼이 양보해 준다. 사실 여행을 떠나며 계속 이야기해 온 것이 우리 모두의 정신적 건강이다. 한 달 동안 여행하며 몸이 지치기도 할 테고, 뜻대로 되지 않은 일도 많을 테니 우리가 서로 잘 돕고 양보해야 한다고 말이다. 평소 비협조적일 때가 많았던 첫째 나름 여행을 신경 써 베푼 양보였다. 우리는 평화롭게 한 팩에 5천 원을 주고 쥐포 조림과 남편 픽의 창난젓을 검정 봉지에 담아 왔다. 반찬 가게 할머니께서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저희 또 올게요!" 인사했다. 진짜 장 보러 또 올 테니까.




야채 물가는 서울의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방의 전통시장이 더 쌀 거라 기대하면 오산이다. 서울에서도 시장 예찬론자이기에 야채 시세는 잘 알고 있다. 양파, 감자 한 바구니에 5천 원, 애호박 하나에 1500원, 시금치 한 단에 4천 원. 이 정도면 서울과 비슷하거나 아주 살짝 저렴한 정도다. 만 오천 원으로 양손 검은 봉지 두 개를 가득 채웠다. 조용한 시장에서 야채를 골고루 사가는 우리에게 머리가 새하얀 가게 할머니는 큰 미소로 "잘 가요" 하셨다. 장날이 아니라 기대했던 호떡은 먹지 못했지만 냉장고를 채울 생각에 든든했다.(밥 하는 엄마는 냉장고가 비어 있으면 불안하다) 





사실 오늘의 메인은 '석굴암'이다. 첫째가 경주에서 가장 가보고 싶어 했던 곳이다.(참고로 둘째가 경주에 가장 기대한 것은 2년 전 1박 2일로 놀러 와 먹었던 십원빵이다. 4살 때 먹었던 걸 아직도 기억하다니.) 책을 통해 본 석굴암은 그 사진에서도 웅장함이 느껴진다. 거대한 본존불과 둥그런 돔 천장. 그리고 사방에 펼쳐진 조각들.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굴암을 지었다는 김대성의 이야기. 일제 강점기에 보수한다는 명목으로 돔 지붕을 시멘트로 발라버려 복구가 어렵고, 이 때문에 현재는 에어컨으로 습도를 조절해야 해서 유리벽으로 차단되어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까지. 신비로움과 통탄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곳이기에 첫째의 마음에 훅 들어왔나 보다. 


석굴암이 콘크리트 덮이기 전 저런 모습이었다니 신비로울 수밖에!



"석굴암 언제 가요?"를 아침부터 몇 차례나 물었다. 그런 아이에게도 꼬불꼬불 차로 올라가는 길은 힘들었나 보다. 나 또한 '석굴암' 하면 한참을 구불댔던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 '이 아이에게도 나중에 나와 같이 구불댄 기억을 갖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웃음이 났다. 고불길을 오를수록 지면과 멀어졌다. 아래 세상이 점점 작아졌다. 차에서 내려 거친 산바람을 들이마시니 시원했다. "댕~댕~" 종소리가 주차장 윗편 정자에서 들렸다. 둘째는 종이치고 싶다며 달려갔다. 1타 1천 원. 종을 치려면 돈을 내야 하는구나. 그때부터 종소리가 "천 원~천 원~"으로 들렸다. 종은 천 원이지만 석굴암은 공짜다. 작년 5월부터 불국사와 석굴암은 나라의 문화재 보수 지원을 받으며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입구 문을 들어서니 또 구불구불 흙길이 보인다. 석굴암은 그 가는 길마저 우릴 애태운다.

 



한참 걷고 계단을 올라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이전에 봤었던 나마저 "와..." 하는 탄성이 나온다. 거대한 본존불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멋졌다. 교과서 글귀에도 나왔든 찬란한 미소가 있었고, 조명을 받아 그 모습이 더 부드럽고 거대해 보였다. 유리벽 너머로 한참 거리가 떨어져서 봐야 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아이들은 집에서 가져온 연필과 종이를 꺼냈다. 사각사각 연필 소리가 작은 관람 공간을 메웠다. 사진도 찍을 수 없기에 잠깐 눈으로 보고 가는 사람들이 스쳤다. 그동안 아이들은 연신 고개를 들었다 파묻었다 하며 그림을 그렸다. 관리하는 분이 어제는 신정이어서 사람들이 마당에 줄을 서서 떠밀리듯 잠깐동안만 석굴암을 보고 가야 했다며 오늘 그리러 온 것이 정말 다행이라 하셨다. 둘째는 5분 컷으로, 첫째는 15분 동안 진득이 스케치했다. 나도 그 옆을 지키며 오래도록 본존불을 바라봤다. 


첫째가 스케치 한 석굴암 본존불



감로수도 만져보고, 석굴암 조각들도 유심히 봤다. 아래로 펼쳐진 풍경을 보니 우리가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 이렇게 천천히 느낄 수 있는 게 살아가는 여행의 진미지! 돌아오는 구불길에 실제로 석굴암을 보니 어땠냐고 물으니 여러 대답이 나온다. 오는 길이 힘들었다. 생각보다 거대했다. 사람들이 본존불에 기도하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아들은 교회 오빠) 유리벽이 있어 답답했다. 어떻게 이런 산속에 저렇게 큰 조각을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본존불이 인도의 신 같은 모습이었다. 석굴암을 원숭이처럼 그렸다.(둘째) 지나가는 사람이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 칭찬해 줘서 좋았다. 집에 가서 석굴암 퍼즐을 만들고 싶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대답이 예뻤다. 이전에도 와봤던 곳이지만 이제는 구불댄 기억뿐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진하게 누린 추억이 덮여 더 입체적인 장소로 기억될 것 같다. 



다녀와서 만든 퍼즐을 고이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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