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짝그녀 Jan 03. 2024

애 둘을 데리고 경주에서 한 달을 살겠다고?

경주 한 달 살기 프롤로그


이번엔 경주다. 두 아이가 두 살, 네 살 시절 속초 3주 살기, 이후 정선, 영월에 2주 정도 머물러 살아가는 여행을 해왔다. 한 달 살기 열풍이 불기 전 시작했던 이런 패턴의 여행을 기획한 건 사실 거창한 철학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렸고 그맘때쯤 아이들은 낮잠도 자고, 밥도 식당에서 자유롭게 먹을 수 없으며 여러 장소를 하루 안에 채워 넣는 것이 불가능하다. 처음 두 살, 네 살 아이들과 여행할 때는 아침 먹고 한 군데 들러 진하게 놀고 숙소에 들어와 점심 먹고 낮잠을 한 차례 재웠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또 한 탕을 뛰고 저녁 즈음 귀가하는 일정이었다. 재촉할 필요도, 아이의 컨디션으로 당황할 필요도 없는. 그야말로 슬로한 여행의 맛에 푹 빠져버렸다. 이후 여름마다 두 차례 정도 살아가는 여행을 하다가 중단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기에 여러 도시를 한 주 씩 여행하는 것도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여행을 2년 정도 쉬었다. 


2019년 속초 3주 살기, 아이들이 어릴 때 살아가는 여행은 시간이 쫓기지 않아 오히려 좋다




다시 한 달 살기를 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1년을 잘 보내고 두 달이라는 긴 겨울방학을 맞이했다. 몇 차례 되지 않을 초등학교 방학을 긴 여행으로 채워주는 것은 어떨까, 인생에 이 아이들과 진득한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하는 마음에 한 달 살기 하던 루트를 다시 밟아 갔다. '이거다!' 경주의 작은 13평짜리 아파트. 경주의 메인과 25분 거리는 있지만 조용하고 적당히 사람 사는 곳의 6층 엘리베이터 없는 작은 아파트였다. 남편에게 브리핑과 허락을 구한 뒤 예약했다. 숙소 주인도 멋진 분이었다. 이곳에 숙소를 남기고 해외살이를 하고 있다.(사람 사는 모양들이 이토록 다양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렇게 난 1월 한 달 경주 시민이 되기로 했다.


한 달간 우리 집이 되어줄 엘베 없는 6층, 13평 아파트



신라 천 년의 도시 경주. 서울의 어원이 되었던 서라벌의 도시. 혹자에게는 힙한 황리단길로, 또 역사 기행으로, 수학여행이라는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는 곳일 테다. 여러 차례 짧은 여행으로 경주에 왔지만 항상 겉핥기 같은 아쉬움을 갖고 떠났다. 이번엔 구석구석 제대로 누비리. 이런 의지를 담아 숙소를 정한 뒤 다음 준비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책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경주를 알아봐야지. 미술관을 관람할 때도 작품에 관한 이야기와 작가에 대한 히스토리를 알면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진다. 슬로한 여행을 하려면 한 곳 한 곳을 깊이 느끼고 즐겨야 한다. 출발 한 달 전부터 알라딘 중고서점을 훑어 갖가지 신라와 경주에 관한 책을 아이들과 함께 누렸다. 여덟 살 첫째는 신라 역사를 담은 만화책에 폭 빠졌고, 여섯 살 둘째는 첨성대, 석굴암, 불국사 등 역사적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가고파 했다. 곧 실물 영접을 할 거란 생각으로 우린 책을 읽는 내내 흥분의 도가니였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기대와 더불어 타지에서 삼시 세끼를 채울 걱정이 스몄다. 한 달 중 3주는 남편 없이 여행해야 한다. 딱히 떠오르진 않지만 돌발상황이 생기진 않을까, 겨울이라 숙소가 너무 춥다면 어쩌지, 여행 도중 아이들이 아프면 안 되는데, 한 달이 지루하게 흐르면 어쩌지 등 잡다구리 한 염려도 스쳤다. 나 홀로 여행이었다면 '적응하면 되지' 하고 훌훌 털어버릴 것도 아이들과 함께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니 말이다. 하지만 접기로 했다. 한 달을 여행하는 것은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것도 좋지만 여러 상황 속에서 함께 적응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았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여행에서의 집안일 분업을 제안했다. 첫째는 방청소, 둘째는 이불 정리를 택했다. 엄마인 내가 홀로 여행을 끌어가지 않고 아이들 또한 주체가 되도록 자리를 내어줘야겠다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디테일하게 여행 계획을 짜지 않았다. 그날그날 날씨에 맞춰, 우리의 컨디션에 맞춰 즉흥적으로 여행하기로 했다. 한 달 살기를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아이들과 한 달 내내 붙어있는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냐 묻는다. 물론 지지고 볶는 순간들이 많을 테다. 하지만 인생의 선배님들이 늘 말씀하셨듯 자식과의 시간은 유통기한이 있다. 이 아이들과 진하게 누릴 시간은 앞으로 10년 남짓이다. 2024년 1월, 우리의 경주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