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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그녀 Nov 07. 2023

이토록 쿨하지 못한 엄마

초등교사맘 교육 일기 [ 8살 아들 편 ]


"아 맞다! 일기!"          

어제는 야근이었다. 모처럼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밤 10시에 퇴근했다. 쓰윽 남편을 스캔하니 내가 분주하게 움직이면 괜찮아질 정도의 서늘함이다. 매일 하는 1시간 루틴 공부도 안했고, 저녁은 라면에 만두 파티를 했다며 아이들은 신났다. 그럼에도 감사해야지 하며(감사하지 않으면 폭발하는게 결혼 생활) 서둘러 아이들 챙겨 책 하나 읽어주고 재웠다. 수업, 보고서 컨설팅, 팀 보고서 작성까지 쉴틈 없이 이어졌기에 나도 곯아 떨어졌다. 30분쯤 일찍 일어나 책을 보며 오늘의 할 일을 되새기다가 '수요일?' 뭔가 허전했다. 그렇다. 오늘은 1학년 첫째의 일기 내는 날이다.          

"엄마 없으면 일기도 안쓰니? 알림장 확인은 해야지!" 




잠도 덜 깨어 부스스한 아들은 각성이 덜 되었다가 점점 짜증이 올라오는 듯 했다. 그런데 참을 수 없었다. 학생의 기본 중에 기본 아니던가. 제 숙제 못챙기는 아들에게 화가 나는건지, 간밤에  "너 뭐 해야 하지 않니?"하고 한 마디 묻지 않은 애비에게 화가 난건지 모르겠다. 안그래도 왜 이리 나는 빡빡한 엄마지? 하며 자책하는 시간 가운데 있는데 아침부터 화를 내는 내 자신도 싫었다. 결국 아이는 부루퉁한 얼굴로 시늉만 낸 일기를 쓰고 "최악의 아침이네"라는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너도 힘드니? 나도 시키기 힘들다 /출처: Unsplash







'나도 최악이야.'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내가 이토록 쿨하지 못한 엄마일 줄 몰랐다. 입학 전, 특히 '학습'라는 녀석이 우리 둘 사이에 파고들기 전에는 제법 여유가 있었다. 아이들 다루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첫째가 둘째를 틈만나면 때리는 등 종종 문제가 생겼지만 나의 기본적인 육아 철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해결할 수 있었다. 학습. 이게 들어오니 다르다.    


       

하루에 문제집 몇 장, 한 시간 앉히는데 반 년 이상 걸렸다. 그동안의 씨름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퇴근하고 집에가는 발걸음이 늘 무거웠다. 오늘도 씨름할 생각에 도망가고 싶었다. 어떤 날은 '이게 맞나? 아이가 집을 행복하게 느껴야 하는데.' 라는 생각에 다 때려치우고 책육아에 성공한 엄마들처럼 풀어놓고 싶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그래. 나보다 남의 말을 더 잘 듣는게 아들이지. 영어라도 학원을 보내버려?' 했다. 하지만 그 끝에는 나의 신조와 가까운 말인 '그럼에도'와 '기꺼이'라는 두 단어가 발목을 잡았다. 대체로 학교에서도 유능한 교사로 교실 안팎에서 인정받아왔고, 이제껏 큰 문제 없이 육아를 해 왔지만 엄마표 교육은 내게도 퍽 어렵다          








작은 것 하나도 내가 알려주고 길러줘야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 생활 습관, 학교 생활, 친구 관계, 형제 관계 등 지금 아니면 안된다는 느낌으로 계속 다듬고 있었다. 말이 길어지고 아이의 눈은 초점을 흐린다. 삐뽀삐뽀 책으로 유명하신 하정훈 소아청소년과 의사선생님이 하셨던 말이 종종 머릿속을 맴돈다.      

아이를 부모가 만들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예요

생각해보니 내가 부모님께 받은 긍정적인 영향을 생각해보면 결코 반복적인 말(이라하고 잔소리라 칭한다) 덕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결정적 변화는 부모님의 살아내는 모습이나 나의 갈등 극복 경험에서 일어났다.      



부모가 주는 여백에서 예상보다 훌륭한 시간을 보낼거라 믿자 / 출처: Unsplash



오늘 따라 가수 이적의 어머니이자 교육학자인 박혜란 작가님의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이란 책이 떠오른다. 책에서는 줄곧 말했다. 아이들을 그대로 두니 알아서 척척 잘 자랐다고. 물론 세 아들이 모두 서울대에 간 배경에는 서울대를 나온 부모님(이적은 온 가족 서울대 출신)이 만든 가족의 풍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지나가는 말 한 마디, 마흔에 공부를 시작한 엄마의 뒷모습 등.. 하지만 그녀의 '알아서 잘 클거라는 믿음이 있었다'라는 말은 인상적이다. 이적 씨도 어릴 적부터 '엄마가 내 인생을 책임져 주거나 도와주지 않겠구나. 내가 혼자 힘으로 커야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한다. 그리고 그렇게 컸다.  



신혼 초 된장찌개가 엉망일 때 남편이 이리저리 지적하고 알려주려했으면 때려쳤을거다. '앞으로 숱한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 하며 인내하며 묵묵히 먹어줬기 때문에 맛있어지고 있는거다.(분명 신혼 초보단 낫다) 아이의 마음도 똑같겠지. 아이에게 여백의 미를 주는 만큼 내가 제시하는 아이의 미래(이대로 산다면 정말 성공이겠는가. 이렇게 빨리 변화하는 세상에서..)이상으로 자란다. 이렇게 말하지만 내일 당장 아들의 “일기 안 내고 왔어요..”라는 말에 답답할 거다. 믿자 믿어. 믿으면 기대 이상으로 잘 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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