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학부모가 될 줄 알았니.
엄마인 나는 요즘 너를 학교 정문 앞에서 배웅하며, 오랫동안 뒷모습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이렇게 너의 뒷모습을 오래 보게 될 줄이야.... 너의 등굣길. 매일 나는 나의 시야에서 너를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때까지 정문에서 발을 떼지 못한다.
학교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아이는 첫 주는 직접 고른 새 책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웃으며 들어갔다. 학부모가 된 나는 '인수인계, 넘치는 일을 맡아' 단기 육아휴직의 꿈을 포기한 뒤라, 그저 아이에게 '정말 고맙다, 내 아들 너무 대견하다.' 분명 그랬었다. 심지어 일단 교문을 통과한 아이는 엄마를 돌아봐 주지도 않고 앞만 보고 전진할 때가 더 많았고, 한 번쯤 친절하게 뒤돌아 봐 줄 때면, 미소를 싱긋 보여주고 손을 흔들어주며 들어갔었다. 그런 너의 모습 뒤에, 울며 엄마와 안 떨어지려는 아이들이 여럿 보여서, 퇴근 뒤 아빠와 식탁 위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그래, 그랬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아이는 등교할 시간이 가까워지면 울먹이며 "배 아프다"는 말을 한다. 어린이 집 갈 때도 가기 싫으면 종종 등장한 핑계다. 계속 배 아프다는 말을 랩처럼 반복하기 때문에, 한참을 정말 아픈지 걱정했던 문제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학교가 치과 가는 것보다 싫어." 마음이 덜컥한다. 치과.....보다 싫다니......
그래도 담담하게 답해본다.
"엄마도 회사 가는 거 싫어."
아빠도 거든다.
"아빠도 그래. 그래도 가잖아.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들이 있는 거야."
이런 말들은 아이의 귀에 안 들어가는 걸까.
삶에는 이유 없이 해야 하는 목록들이 분명 있는데, 특히 아이들은 좋은 습관을 만들어가야 하므로 그냥 할 일들이 있는데, 그동안 내가 자상한 엄마의 모습을 하며 이유를 달아주었던 걸까.
아이는 살짝 진정이 되었다가도 갑자기 "왜"를 묻는다.
"왜 내가 그래야 하는데? 왜 꼭 가야 하는데?"
뒤늦게 "이유는 없다."를 말해보지만 늦은 감은 있다. 아이는 이미 꽤나 똑똑해졌다. 엄마는 하라는 일에는 이유가 없어도 되고, 본인은 이유가 있으면 안 되냐는 말까지 한다.
어찌어찌 아이를 학교에 들여보내고, 회사에 도착해 내 의자에 털썩 앉아,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첫째 아이가 등교할 때마다 자기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울어서, 매일 울면서 출근했다는 친구의 답이 온다. 지난주 봤던 그 아이들과 엄마들이 떠오른다. 이제 내 아이가 학교 정문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니, 그 마음이 어땠을지 완전히 공감이 간다. 일 하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엄마가 선생님께 배 아프다고 메시지 보내 놓을게."
정확히 세 번을 뒤돌아 보고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간 아이는, 학교에서 잘 지낸 모양이다.
"엄마, 보건실에 13분 누워 있었어. 그런데 보건실은 다른 건물에 있더라고... (재잘재잘)"
어린이집 다닐 때 그랬던 것처럼, 배 아프다고 말해도 괜찮겠지 싶긴 했다. 다행이다.
태권도까지 마치고 집에 오는 아이는 언제 그랬냐 싶게, 밝다. 어쨌든 또 다행이다. 태권도를 시작하니 더욱 에너지가 넘치고, 자면서도 발차기를 하는 아이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등원 시간이 가까워지니, 다시 시작되었다.
"배가 너무너무 아파. 세상에서 제일 아파."
학교 문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아이의 귀에 대고 말했다.
"배가 아프면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또 보건실에 가. 엄마가 매일 선생님께 메시지를 보낼 순 없어. 네가 말해야지. 중요한 것은, 너만 배가 아픈 게 아니라는 사실이야. 지금 너희 반 열아홉 명 모두 학교가 처음이라서, 모두 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너랑 비슷할 거야."
그렇게 등교해서 하루를 보내고 하교한 아이는 어제와 비슷한 좋은 기분이다.
"오늘도 보건실 갔어?" 물으니, "아니."
"학교에서 배는 계속 아팠어?" 물으니, "아니."라고 답한다.
다행이다.
훗날 돌아보면 전혀 큰일이 아닐지도 모를 이 일. 모든 일은 스스로 적응기를 통해 뚫고 나가야 하는 법, 알지만 쉽지는 않다. 의연한 척하지만 내 아이의 일이 되니,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스트레스가 많나, 아직 친구들이랑 한 마디도 안 나눈 건 아닐까. 배가 정말 아픈 건 아닐까, 온갖 걱정과 추측으로 하루 종일 머릿속은 '꼬여 있는 실타래'처럼 풀리지가 않는다. 심지어 이제는 어린이집에 다닐 때처럼 선생님께 망설임없이 연락을 할 수도, 친절한 응답을 바랄 수도 없다. 하교한 아이를 보고 나서야 마음이 풀리며, 독립을 향해 서서히 걸어가는 너를 그저 응원할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때 나를 떠올려 본다. 등굣길이 기억난다.
아이 걸음으로 그 먼 등굣길을, 큰 도로 찻길을 건너가며, 지각도 하지 않고 매일 갔으며, 지금은 하찮아져 버린 개근상을 6년 내내 받으며 학교를 다녔었던 나. 어린 나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그렇게 나는 느끼며 배우며 성장해 갔을 테다.
그러니, 나의 아이인 너도, 너의 성장과정을 스스로 겪어 내며, 너의 마음은 네가 단단히 만들어 가야 하며, 너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도 내가 다듬어가며 단단히 만들어가야 할 나의 몫인 것이다.
응원한다. 너와 나.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