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 북경대 외국인 기숙사 건물에 확진자가 생겼다.
2022년 11월 24일 목요일.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의 첫 번째 조별리그가 있는 날이었다. 상대는 우루과이. 친구들과 함께 모여서 경기를 보기로 했다.
우리가 모여서 경기를 볼 수 있는 곳을 찾기란 무척 어려웠다. 학교 밖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학교 안이 녹록한 것은 또 아니었다. 경기는 중국 시각으로 밤 9시에 시작하는데 모든 강의실과 학교 식당은 10시면 문을 닫는다. 학교 안 카페는 조용해서 친구들과 시끄럽게 축구 경기를 볼 분위기는 아니다. 기숙사도 밤 10시가 되면 해당 동에 살지 않는 사람은 건물에서 나가야 한다.
그렇지만 결국 우리는 모여서 축구 경기를 볼 장소를 찾아냈다. 바로 3W라는 카페의 야외 테라스였다. 날이 추웠지만 우리는 옷을 껴 입고 맥주로 몸을 데우며 함께 경기를 보았다.
경기는 0:0으로 끝나 버렸다. 우리 모두 아쉬운 마음에 선뜻 기숙사에 돌아가지 못하고 미적거렸다. 그때 한 친구가 아이디어를 냈다. 우리 단과대 건물 지하에 빈 공간이 하나 있는데 경비가 신경을 쓰지 않는 곳이라 열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직 맥주가 반이나 남은 궤짝을 들고 그곳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지하 교실은 문이 열려 있었고 무려 커다란 스크린도 사용할 수 있었다. 우리는 비밀의 정원을 발견한 아이들처럼 신이 나서 자리를 잡았다. 곧 우리 기숙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였다.
빈 강의실, 캔맥주, 맥너겟, 월드컵 경기, 그리고 친구들. 즐거울 수밖에 없는 조합이었다. 중학교 수련회 때 교관들이 밤새서 놀지 못하게 하면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몰래 노는 그 즐거움이 더욱 짜릿하고 쏠쏠하지 않던가? 코로나 방역이라는 명목으로 학교 밖에도 못 나가게 하는데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축구 경기를 보고 있자니 무척 즐거웠다. 그러느라 핸드폰도 열어보지 않고 한참을 놀았던 것 같다.
자정이 지난 무렵이었을까? 무심코 핸드폰을 보았는데 기숙사 단톡방에 수백 개의 메시지가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기숙사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라는 합리적 의심과 '우리 기숙사에 확진자가 나왔보다'라는 부정하고 싶은 추측이 동시에 머릿속을 스쳤다. 단톡방을 열었다. 기숙사에 확진자가 있는 것 같다는 소문으로 단톡방이 떠들썩했다. 아직 확인된 정보는 없었다. 학생들은 각자가 얻은 단편적인 소문을 공유하며 대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우리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이 전부 탐정, 궁예, 소설가, 경찰, 기자가 되어 있었다.
정보를 종합하면 거의 확실시되는 사실은 외국인 기숙사의 거주자 중에 확진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확진자가 총 몇 명인지, 학생인지 아니면 기숙사 직원인지, 몇 호동에 거주하는 자인지 같은 정보는 아무것도 확인된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질문에도 답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확진자와 같은 기숙사에 사는 우리는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말이다.
한 학생이 기숙사 엘리베이터 앞에 테이블이 생겼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기숙사 단톡방에 공유했다. 그것을 본 학생들은 내일 건물을 봉쇄하면 도시락을 배달해야 하니 도시락을 올려놓을 목적으로 테이블을 가져다 둔 것 아니냐고 추측했다. 정말 기숙사를 봉쇄할 거냐는 학생들의 질문이 쇄도했지만 기숙사 측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들 또한 윗선의 방역지시에 따를 뿐이기에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기숙사 밖에서 새벽까지 축구 경기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국인 친구들은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어서 기숙사로 돌아오라고 했다. 이대로 기숙사가 봉쇄되어 버리면 안에서 밖으로 나올 수도 없지만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을 터였다. 봉쇄가 될 때 되더라도 자기 물건이 있는 기숙사 방 안에 갇히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 친구들의 의견이었다. 나는 일단 경기만 다 보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내가 아직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단과대 건물에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단과대학의 학생 관리 담당자(辅导员)가 중국 학생을 통해서 나에게 말을 전해왔다. "일찍 들어가고, 들어갈 때 물이랑 먹을 거라도 좀 사 가지고 들어가라"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기숙사 봉쇄는 이미 예정된 것 같았다.
포르투갈과 가나의 경기까지 끝이 났다. 시간은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더 이상 귀가를 미룰 수 없었다. 가방을 챙겨 기숙사로 향했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1.5리터 생수 네 병을 샀다. 기숙사 단지로 발을 들이기 전, 단지 입구에서 경비에게 물었다. "지금 들어가면 기숙사 단지 밖으로 다시 못 나오는 거예요?" 경비는 그렇다고 했다. "휴..." 한숨을 쉬고 결단을 내리듯 기숙사 단지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