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간 우울감의 폭풍
나는 그날 밤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래서 그 고통스러운 밤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내가 이 생을 끝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일요일이었다. 오전 여덟 시. 여느 때와 같이 뿌스스 눈을 떴다. 춥다. 전기장판이 두 시간 전에 꺼졌기 때문이리라.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오른쪽으로 돌아 누웠다. 자리가 너무 따뜻해서 늦잠을 잘까봐, 나는 일어나야 하는 시간보다 두 시간 일찍 전기장판이 꺼지도록 타이머를 맞춰 놓는 습관이 있다. 오른손을 뻗어 협탁 위의 핸드폰을 집었다. 아침을 주문하기 위해서다. 언제나처럼 또우쟝, 요우티아오, 빠오즈, 차예단을 시킨다. 한국으로 치면 두유 한 대접, 설탕 안 묻힌 꽈배기 하나, 고기 찐빵 하나, 삶은 달걀 하나다. 매일 아침 먹는 나의 고정 메뉴. 이제 몸을 일으킨다. 머리를 다 감고 나올 때 즈음 음식이 도착했다는 배달원의 전화가 올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부스럭부스럭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걸어갔다. 고개를 숙이고 뜨끈한 물로 뒤통수를 적신다. 오늘은 뭘 해야 하더라? 딱히 없는 것 같다. 12월 6일의 졸업논문 프로포절을 마지막으로 지난 4개월간 나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했던 일들은 모두 마무리되었다. 빨리 논문 작성을 시작할까 하는 불안감이 마음 한 구석에서 쉬지 않고 쿵쿵 울려댄다. 애써 억누른다. 지금 쉬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 몇 년 동안 대상포진에 걸리기를 두 차례,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를 세 차례. 큰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는 꼭 한 번 쉬어가야 한다는 삶의 지혜를 얻었다.
내일은 출근도 해야 한다. 오늘은 조금 쉬고 싶다. 읽고 싶었던 책을 읽어야겠다.
오늘 읽는 것은 <김우중과의 대화>라는 책이다.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의 부제처럼, '이 넓은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므로 더 크게 꿈꾸고 더 용감히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책이다. 또 한 편으로는 70-90년대 한국 산업 발전사 그리고 당시 정부와 기업 간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졸업논문에도 도움이 될 법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자꾸만 고 김우중 회장의 사람 관계를 보여주는 문장에 밑줄을 치게 된다.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 처세, 재치, 끈끈하고 깊은 관계, 사람들이 그에게 보여주는 신뢰...... 나도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이런 모습 나도 닮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짤막한 감탄의 표현이나 나의 생각을 볼펜으로 적어갔다.
몇 달째, 마음은 계속 삐걱거리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부분에 널빤지를 덧대고 못을 박아 넣기를 수십수백 차례. 멀리서 보면 이미 누더기나 다름없다. 무엇보다도 인턴 생활이 너무 힘이 들었다. 가장 동경하던 곳, 너무나 기대했던 업무. 그래서 다른 두 군데의 기회를 저버리고 발을 내딛었던 자리. 졸업하고 여기에 들어올 수만 있다면 정말 정말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직장. 그런 곳에서 부적응자가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너댓 명 남짓 작은 사무실에서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 나를 싫어하고 답답하게 여기는 것 같은 그 사람 앞에서 나는 자꾸만 더 위축되었다.
벌을 받나 생각했다. 사무실 분들이 나를 많이 예뻐해 주셨던 지난번 인턴 자리를 여기에 오기 위해 그만두어서, 박사 과정 선배님 여러 분이 동시에 나를 추천해 주었던 다른 인턴 자리도 여기에 오기 위해 거절해서, 그렇게 감사한 줄도 만족할 줄도 모르고 계속 욕심을 부려서 벌을 받나 생각했다. 출근 전날 밤이면 가슴이 두근거려 잠을 들지 못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너무 중요한 직장이어서, 꼭 인정받아야 할 것 같아서, 여기서 포기하면 절대 안 될 것 같아서, 버티면 곧 잘할 수 있게 될 것 같아서,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일찌감치 인정하고 그만둘 수가 없었다.
책을 읽던 눈을 돌려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내일도 출근이네. 투둑, 투둑. 마음의 도화지에 먹물 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금세 검게 물들어버린 도화지를 한 구석에 고이 접어 넣는다. 다시 시선을 끌고 와 형광펜과 메모로 가득한 책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니야, 잘할 수 있어. 용기 있게 계속 부딪히면 못 해낼 거 없어. 조금만 더 해 보자'. 마음에는 이미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가득 들어차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만 같다. 바둥거리는 마음에 용기를 어거지로 욱여넣는다. 하아, 긴 숨이 새어 나온다. 오후에는 운동을 좀 다녀와야겠다.
오후 네 시. 복싱장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힘차게 몸을 움직여 준비 운동을 시작한다. 웅크려 있기만 하던 마음도 꾸물꾸물 스트레칭을 하는 것 같다. 좋아, 이렇게 다시 기운을 내면 돼. 일부러 더 크게 웃고 밝게 이야기하며 단체 수업을 시작한다. 코치가 짝지어준 연습 상대는 오늘 처음 보는 20대 여자 아이다. 내가 왼손, 오른손, 오른발을 순서대로 휘두르면 그 친구가 미트를 받아준 다음 나를 향해 오른발을 휘두르는 동작이다. 처음 동작을 맞춰 보는데 아, 이상하다. 오른발을 내 왼팔에 가져다 꽂는 힘이 보통이 아니다. 발목 근육이 돌처럼 단단하다. 그 친구에게 물었다. "너 복싱 한지 얼마나 됐어?" 3년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다시 이야기했다. "나는 6개월밖에 안 됐어. 좀 아파서 그런데 힘 조절 좀 해줄 수 있니?"
아니, 그런데 이 아이, 분명히 알았다고 하더니, 일말의 변화도 없다. 동작을 바꿔 이제 그 친구가 왼손, 오른손, 오른발을 휘두르는 차례다. 내가 든 미트를 향해 주먹을 있는 힘껏 내리꽂는다. 나는 받아줄 힘이 없으니 뒤로 훙 밀린다. 다시 이야기했다. "너무 아프다. 나는 이 정도 힘은 못 받아내. 힘 조절을 해줘야 될 것 같아" 알았다고 하는데 그다음 내리꽂는 주먹도 마찬가지다. 나도 짜증이 난다. "미안한데, 네 실력이 너무 높아서 내가 파트너를 해주기가 어려울 것 같아. 아무래도 넌 코치가 받아줘야 할 것 같은데 내가 가서 얘기하고 올게"
코치한테 가서 상황을 이야기했는데 대충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계속 남자 회원들을 상대해 준다. 나도 그 아이도 연습 진행이 안 된다. "아, 씨..." 짜증이 밀려온다. 애초부터 코치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아이와 나는 수준이 전혀 맞지 않는다. 아니, 이 체육관에서 이 여자 아이와 파트너를 할 수 있는 여자 회원은 없다.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대충 짝을 지어 놓은 무책임함에 화딱지가 난다. 개놈의 자식 같으니라고. 입 속으로 욕을 해봐도 화가 가시지 않는다. 저 아이도 짜증 난다. 3년이나 복싱을 했으면 자기 실력도 알고 힘 조절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도대체가 말을 해도 변화가 없지 않은가? 수업료 냈으니까 자기 연습은 해야겠다는 건가? 기분 전환을 하러 온 복싱장에서 되려 온몸이 분노로 범벅이 되어버렸다.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복싱장을 빠져나왔다. 아는 동생과 저녁 약속이 있다. 종알종알 말도 많고 활기찬 동생이다. 내가 좋아하는 면 요리를 먹으러 갔는데, 아, 요리에서 굵은 머리카락이 나왔다. 길이도 길어서 면과 한데 엉켜 있다. 종업원을 불러서 다시 만들어 달라고 했다. 화는 내지 않기로 한다. 같이 있는 동생과의 대화에 정신을 쏟는다. 즐거운 기분에 집중해 본다. 오늘 하루 중에 가장 많이 웃으며 시간을 보낸다.
숙소까지 같이 돌아온 다음 "좋은 밤 보내~" 하고 예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고 헤어졌다. 내 방으로 들어와 문을 여는데, 근본 없이 둥 떠있던 마음은 방에 오는 순간 무서운 속도로 추락해 버린다. 나를 들여다본다. 낮에 책을 읽으며 마음속에 욱여넣었던 용기는 복싱장에서의 일로 이미 말라죽어 있다. 내일은 출근이네. 저벅저벅 몸을 끌고 침대로 올라가 옆으로 누웠다. 멍하니 벽을 바라본다. 내가 혼자인 시간을 귀신같이 알고 오늘도 어김없이 의문들이 스멀스멀 다가온다. 왜, 모든 일이 마음처럼 안 될까? 왜, 노력해도 안 될까? 왜, 무던해질 수 없을까? 왜? 왜? 왜? 왜? 왜?
젠가 게임의 나무블록처럼 차곡차곡 쌓아 올려지던 의문은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왜, 행복하지가 않을까? 꼬리를 잇는 의문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감정이 가득 욱여넣어져 있는 마음을 푹 찌른다. 왜, 나는 이럴까? 뒤를 잇는 의문이 또 한 번 마음을 푹 찌른다. 욱여넣어져 있던 감정들이 그 틈을 비집고 마구 쏟아져 나온다. 왜... 왜... 도대체 왜...... 뜨거운 눈물이 솟는다. 제때 처리되지 않았던 감정들은 마구 아우성을 치며 나를 가득 점령해 버린다. 왜? 왜? 왜? 왜? 왜?... 머릿속에는 나의 목소리가 사이렌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울려댄다.
터져 나온 울음은 멈추지 않는다. 숨을 쉬기 힘들 정도다. 헐떡이며 울다 보니 심장박동은 계속 빨라진다. 감정이 점점 격앙되어 간다.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마음의 감옥에 가둬 두었던 괴로웠던 기억들이 감옥의 철문을 쾅쾅 두드려 댄다. 평생 동안 가장 괴로웠던 순간들이 '나 아직 여기 머물러 있다'라고 존재감을 과시한다. 철문을 부수고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그들은 보란 듯이 내 마음을 짓밟아 놓는다. 모든 것이 무너져간다. 내 마음은 쑥대밭이 되어 버린다. 나는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 어쩔 줄을 몰라 발을 동동 구른다. 울고 또 울어도 고통은 멈추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하면 괜찮아질까? 어떻게 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까?
그런데 방법이 없다. 모든 것을 바로 세울 방법이 없다. 모든 것에서 벗어날 방법도 없다. 그 사실이 또 한 번 나를 밀쳐 저 깊은 나락으로 떨어트린다. 너무 고통스럽다. 이 고통이 어제도, 오늘도 자꾸만 반복된다. 지난 주도, 지난달에도 그랬다. 정말이지 멈추지를 않는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너무 고통스럽다. 이제 그만 멈추고 싶다.
'이제 그만 멈추고 싶다'. 그 생각에 이른 찰나의 순간. 삶은 내게서 급격히 멀어지고 죽음은 성큼 가까워진다. 하늘과 땅이 뒤집혀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존엄하던 삶은 가장 큰 고통이 되어 바닥에 추락하고, 두렵던 죽음은 유일한 안식처럼 내게 다가온다.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소중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마치 하늘과 땅이 뒤집힌 것처럼 전부 뒤바뀌어 버린다. 그렇게 꼬이고 얼룩덜룩해진 세상이 너무 웃기다. 너무 웃겨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하하하, 하하하. 눈으로는 펑펑 울고 있는데 입으로는 소리 내어 웃고 있다. 한참을 그렇게 버둥거리다 진이 다 빠져서야 울음도 웃음도 잦아든다.
협탁 위의 시계와 눈이 마주쳤다.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고통은 멈추지 않는다. 곧 다시 시작될 것이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침대에서 내려와 협탁 아래 좌식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 위에는 볼펜과 노트가 놓여 있다. 커다란 실뭉치에서 한 가닥 실을 잡아당기고 또 잡아당겨 온 세상에 풀어놓듯 가느다란 펜이 그려내는 한 가닥 검은 선이 잔뜩 엉킨 마음을 종이 위에 써 내려간다.
모든 색이 뒤섞여 버린 찰흙 뭉치로는 어떤 모양을 빚어내도 아쉬울 것이 없다. 이미 엉망이 되어버린 세상에 무슨 말을 꺼내놓은들 거리낌이 없다. 그래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속의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전부 끄집어 내놓았다.
노트 두 장. 흔들리는 글씨. 어쩌면 나의 마지막 글이었을, 유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