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아
폭풍우였다. 온 세상을 뒤흔들어 놓은 사납고 자비 없는 폭풍우였다. 거대한 저택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들어가 있어도 미세하게 떨리는 벽, 덜컹덜컹 흔들리는 창문, 웅웅거리며 나를 위협하는 바람 소리가 모두 느껴지는 무서운 폭풍우. 너무 오랫동안 계속되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분명한. 멈추는 방법도 도망치는 방법도 알 수 없는. 그런 폭풍우였다.
유서를 쓰는 내내 나는 아이처럼 마구 울었다. 마치 뜨거운 기름을 만난 물이 튀듯이 심장박동도 호흡도 제멋대로였다. 불규칙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어깨를 따라 글씨도 노트 라인 위 아래를 오르락내리락 했다. 떨리는 손은 쏟아지는 마음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마구 움직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도... 그 날의 글은 내가 여지껏 써낸 그 어떤 글보다도 완벽하게 정제된 언어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그 글을 오랫동안 다시 열어보지 않았다. 무리를 지어 나를 쫓는 고통들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다 벼랑 끝에 몰려 쏟아낸 발악과도 같은 외침. 마음을 전부 불로 지진 듯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날. 아무렇지 않게 다시 마주할 수 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 주저 끝에 그 노트를 열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마구 쏟아내듯 적어내려간 그 글은 그 순간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십여 년. 어쩌면, 이십 년 넘게 내 마음을 갉아먹어 온 벌레들. 그들에게 마음을 갉아먹히며 느꼈던 고통들이 그 안에 압축되어 있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고통받고 곱씹고 발버둥쳐 왔기 때문에, 마구 쏟아내듯 적어내려간 그 글이 그토록 정제된 언어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줄의 마침표를 찍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걸쳤다. 어디로 가야 할까? 온 신경이 이 질문에 쏠려 있었다. 발을 끌며 숙소 건물 밖으로 나갔다. 중앙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을 둘러싼 건물들을 올려다본다. 기억을 더듬어 높은 층의 구조를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없다. 창문도, 베란다도, 옥상도, 모두 잠겨 있다. 어렴풋이 예전에 들었던 괴담과도 같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몇년 전, 기숙사에서 뛰어내린 외국인 학생이 있어서 사람이 뛰어내릴 만한 곳은 모두 문을 잠가 놓았다는.
건물 꼭대기를 훑던 눈을 조금 더 올려 본다. 밤하늘이 보인다. 조그맣게 별이 빛나고 있다. 그 자리에 한참을 서서 멍하니 바라본다. 춥다. 맨 발에 슬리퍼 차림의 발이 시리다는 것을 깨닫는다. 12월 말의 북경, 사나운 바람이 뺨을 때리고 지나간다. 내일 마저 찾아보자. 발을 돌려 터벅터벅 기숙사 방으로 돌아온다.
머릿속에는 백만 개의 풍선이 빵빵 터져버린 뒤의 잔해만이 남아 있다. 온갖 색깔의 터져버린 풍선 조각이 힘 없이 매달려 너덜거린다. 멍한 기분으로 침대 위에 앉아 핸드폰을 들었다. '우울증 응급약'이라고 검색해 본다. 마땅한 결과가 없다. 우울증 약, 우울증 치료, 정신과 진료, 우울증, 자살과 같은 검색어를 차례로 입력해 본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을 돌보는 의사들의 이야기도 있다.
한참 동안 핸드폰에 고정되어 있던 눈을 들어 허공을 바라본다. 아무래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