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마치며..

치유는 가능하다

by 원정미



부부갈등의 끝에 부모님은 나이 오십이 넘어서 정신과와 상담실을 찾으셨고 아버지는 불안장애 어머니는 우울증 진단을 받으셨다. 그리고 그 이후 오래도록 넘게 정신질환약을 드시고 치료를 받고 계신다. 이전까지 한 번도 당신들은 잘못이 없다고 완강히 맞서시던 두 분은 치료 덕분에 그나마 좀 유해지셨다. 그리고 요즘은 주변에 이런 정신과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마디로 이제 정신질환 문제는 흔히 말하는 " 정신이 나갔다. 미쳤다. 나약해서 그렇다"라는 말도 안 되는 오명을 벗은 듯하다.


사실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다. 그래서 모두에게 취약점이 있다. 프로이트가 말했듯 모든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약간의 강박, 약간의 불안, 우울 등을 가지고 살아간다. 마치 사람에 따라 콜레스테롤이 높은 사람, 당뇨가 있는 사람, 혈압이 약간 높은 사람, 빈혈이 있는 사람들이 있듯이..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약함을 인지한 사람들은 미리 "관리"라는 것을 한다. 약을 먹기도 하고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하면서 그 연약함을 다스리며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반대로 알고도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당장 아프지 않고 눈에 보이는 불편이 없어서 먹고 싶은데로 먹고 관리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후에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되어있다. 정신질환도 사실 비슷하다. 자신과 가족을 방치한 많은 사람들이 후에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의 우울과 불안으로 괴로워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러나 미리 자신의 기질과 연약함을 잘 알고 잘 관리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단 전제 조건이 스스로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담가가 되고 보니 나는 어린 시절 선택적 함구증( Selective Mutism)을 앓을 정도로 사회성 불안(Social Anxiety)을 겪던 아이였다. 반은 옮기면 몇 달은 누구와도 말을 못 할 정도로 낯가림도 심하고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유난히 어려워했다. 고소공포증과 물 공포증이 있고 거기다 자라면서는 회피성 성격을 보이기도 했다. 실패할 것 같은 것은 아예 시도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나는 기본적으로 불안이 매우 높은 아이였다. 당연히 그랬다. 어머니도 아버님도 불안이 높으셨다. 불안하지 않게 키운 나의 둘째 아들도 나의 두 딸들과 달리 나를 닮아 불안이 높은 걸 보면 분명 가족력이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불안장애에 걸리지도 않았고, 그 어떤 중독현상도 없이 너무나 건강하게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기질적으로 불안이 높다고 모두가 불안장애나 공황장애를 겪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다른 사람들은 내가 불안한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잘 살고 있다. 그럼 나의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절대 아니다. 때때로 이유 없는 불안이 몰아칠 때고 있고 걱정과 의심이 생길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불안을 어떻게 다르려야 할지 나에 대해 능숙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한마디로 불안하고 겁 많던 아이를 이해하고 돌보며 잘 키웠다. 그렇게 그 아이가 어른이 되도록 도와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내가 싫어하는 것은 예의 있게 거절하는 것을 배우고

도전이나 훈련을 회피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 나의 감정을 잘 읽고 건강하게 표현하며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곁에서

사랑받고 사랑 주는 것을 연습하며 내 삶을 감사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같이 불안이 높고 사회성이 떨어지고 겁이 많던 아이가 홀로 미국에 와서 정착하고 미국 상담가로 자란 것이 내가 봐도 신기하다. 거기다 나같이 기질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불안했던 아이가 한 사람과 20년째 행복한 부부관계를 만들고 행복한 엄마가 되는 것은 기적이었다.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내면의 아이가 어른이 되면 가능한 일이다. 사람의 잠재 능력과 회복력은 생각보다 놀랍기 때문에..


내면의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시키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없는 척 잊은 척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를 제대로 사랑하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평안한 소통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 과정 가운데 이 글들이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이 책을 마치려고 한다.

이전 11화자기 치유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