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공부를 하면서 느낀것은 진정한 치유나 회복은 다른사람이 해줄수가 없다는 것이였다. 성직자, 정신과 의사나, 치료사 상담가들의 역할은 그들의 잘못된 생각이나 신념을 알려주고 좀더 나은 방향과 선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지, 내담자와 환자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수 있는 것이 아니였다. 한마디로 스스로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일어나 나아가지 않는 사람을 일으킬 방법은 그누구에도 없다.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치료의 과정이 몇달만에 좋아지는 사람도 있고 수년에 걸쳐도 제자리 걸음인 경우도 많다. 물론 그 과정에서 환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또 그들을 격려함으로 그들이 스스로 털고 일어나기를 끝까지 기다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정신과 의사나 치료사는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인생엔 안타깝게도 그들을 그렇게 지지하거나 신뢰할 만한 관계를 가진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어떤 면에서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치유하고 회복하고 성장하게 할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할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믿는다. 나또한 그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을 다스릴수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를 분석하고 나의 상황을 객관화 할줄 아는 능력에서부터, 포기할 것을 포기하고 변화시킬수 있는 것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이 어찌보면 치유와 회복의 전부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무작정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거나 혹은 그냥 방치했다. 대신 남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에만 급급히 살아간다. 좋은 타이틀, 직업, 혹은 좋은 엄마, 화려한 삶이 마치 그들을 대신 말해주는 것처럼. 그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이 쉽지 않을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은 때론 나의 부모가 그리 완벽하거나 좋은 부모가 아니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고 또 그런 부모라도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발버둥 쳤던 나를 기억해 내는 일이다. 때론 거절 당하고 때론 외로웠고 때론 화나고 분노했던 나의 초라한 모습을 마주해야 하기도 한다. 그렇게 묻어논 나의 열등감, 수치심, 죄책감, 분노등을 마주해서 인정할 것을 인정하고 떠나보내야 할 것은 떠나보내야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때로는 그 당시로 돌아가는 것만큼 아프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은 모른척하거나 회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트라우마, 소위 상처라고 하는 것의 가장 무서운 점은 우리의 정서적 시간을 그곳에 머물러 있게 된다. 그리고 내면이 성장하고 자라는 것을 방해한다. 그리고 내면이 성장하고 성숙해 지지 못하면 우리는 절대로 어른이 될 수 었다. 이렇게 어른이 되지 못한 성인은 주변의 사람들과의관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게된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탓하고 남을 탓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속 깊은 곳을 들여다 볼 용기가 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자신의 실체와 마주하고 들여다 보는 사람이 성숙해 지고 진짜 어른이 된다.
답은 이미 내안에 있었다.
이 과정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과 친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그리고 왜 좋아하고 싫어하게 되었는지.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과 나의 꿈은 무엇였고 여전히 내안에 포기하지 못한 열정은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나에게 있는 장점은 무엇이고 내가 생각하는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객관화 할수도 있어야 한다. 또한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을 예민하게 읽을수 알아야 하고 건강하게 표현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누구보다 힘들고 어려울때 나를 잘 다독여 줄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에 대한 사용설명서를 준비하는 것이다. 물론 이 사용설명서는 살아가면서 늘 수정되고 보안된다. 생각보다 인간에겐 많은 잠재력과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스스로 한계만 정하지 않는다면.
그 사용설명서를 가장 정교하게 만들어주는 도구들이 사실 배우자이고 자녀들이다. 우리는 애초부터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단점과 약점이 있고 아픔이 있다. 그것을 인정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공적인 장소에선 자신의 진짜 마음은 숨기고 산다. 남들에게 부끄럽고 창피하기 때문에 . 그러나 감추고 숨길수록 인간은 성숙해 질수도 어른이 될수도 없다.
한국인이 존경하는 박완서님의 글을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이유도 그분은 자신의 내면을 의사가 마치 인간을 해부하듯이 자신의 내면 하나하나 살피셨다. 그렇게 자신의 속사람을 과감히 마주하시고 드러내셨다. 그 과정을 통해서 그 힘든 전쟁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시고 모두가 존경하는 어른이 되셨다.
화목한 가정, 남들은 다 팔자 좋다고 알아주는 이러한 결혼생활이 문득문득 나를 힘들게 했다. 속에는 누더기를 걸치고 겉만 빌려 입은 비단 옷으로 번드르르하게 꾸민 것처럼 자신이 한없이 뻔뻔스럽고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 실제적인 가슴의 통증으로 비명을 삼킬 때도 있었고, 어디 남 안 듣는 곳에 가서 실컷 소리 지르고 싶은 충동이 뭉쳐 병이 될 것 같은 적도 있었다.
나도 그때 생리만 멎은 게 아니라 성장도 멎어버린 것 같다. 반세기도 넘어 전의 추위, 굶주림, 불안, 분노 등 원초적 감각의 기억은 그로 인하여 감기도 걸릴 정도로 현실적인 데 비해 현재 누리고 있는 소비사회의 온갖 풍요하고 현란한 현상들은 그저 꿈만 같다.
나는 누구인가? 잠 안오는 밤, 문득 나를 남처럼 바라보며 물은 적이 있다.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영혼이다. 80을 코앞에 둔 늙은이이다. 그 두 개의 나를 합치니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년 된 고옥에 들어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만 기다리는 형국이 된다. 다만 그 붕괴가 조용하고 완벽하기만을 빌뿐이다.
-못가본 길이 아름답다 중에서
따라서 솔직히 자신의 마음과 대화를 나눌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고 그렇게 자신과의 대화의 물꼬를 터주는 사람이 가족이다. 왜냐하면 숨기고 싶었던 나의 감정과 모습들을 이들보다 더 자주 급작스럽게 꺼내는 사람들은 없기 때문이다. 사회에선 만나는 사람들과는 모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히 예의를 갖추고 살수 있다. 그래서 그 선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때론 나의 의지로 회피하거나 잘라낼수도 있다. 그러나 가족은 그럴수 없다. 특히 자녀들에겐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부부관계와 육아가 힘든 것이다. 선을 그을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그들이 나의 숨겨진 상처와 열등감을 가장 빨리 찾게해주는 사람들이 되기도 한다.그때 내가 그 상처와 아픔을 또다시 외면하고 회피하지 않는다면 그곳에서 치유과 회복이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는 한층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가족관계는 신비하고 놀라운 관계이다.
나는 미국에 와서 하고 싶은 그림공부도 하고 받지 못한 사랑도 남편에게 충분히 받으며 건강해 지는 듯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깊은 내면에 분노와 화가 있었다. 그리고 번번히 그 것이 나를 넘어지게 하고 좌절케 했다. 그래서 엄마가 되고 아내가 되고 나서 스스로에게 정말 많은 질문을 던졌다. 마치 상담사가 내담자에게 질문을 하듯이 " 이 일이 이렇게 까지 화를 낼 일인가? 그런데 넌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거니? 이것이 정말 화가난 거니 아니면 다른 감정이니? 이게 정말 아이/ 남편을 위한 일인거니? 아니며 너를 보호하기 위해서니?" 등등 때때로 전혀 이성적이지도 않고 어른스럽게 반응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매일매일 나에게 물었다. 그 과정이 때론 쉽진 않았지만 늘 항상 답은 상황이나 타인이 아니라 나에게 있었고, 그렇게 나 스스로 답을 찾으며 치유해 갔다.
반복적으로 똑같은 이유로 나를 불편하게 하고 화나게 하는 상황이 있다면 그것은 어찌보면 타인이나 환경의 탓이 아닌 경우가 많다. 타인에게 비난과 화살을 돌리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 보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이렇게 스스로 자기 성찰이 가능한 사람이 어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