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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Jul 17. 2023

당신이 있어서 다행이야



오늘이 멀어지는 소리

계절이 계절로 흐르는 소리

천천히 내린 옅은 차 한잔

따스한 온기가 어느새 식듯

내 청춘도 그렇게 흐를까

뭐랄까 그냥 그럴 때 말야

더는 아무것도

머무르지 않는 게 서글플 때

숨 쉬듯 그대 얼굴을 떠올려봐

늘 그걸로 견딜 수 있어

모두 흘러가 버려도 내 곁에 한사람

늘 그댄 공기처럼 여기 있어

또 가만히 그댈 생각해

늘 그걸로 조금 나아져

양희은 님” 늘 그대” 가사 중에서


나이가 40 후반을 넘기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결혼은 절대로 젊은 날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실 20- 30대땐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 친구도 많고 부르는 곳도 많고 건강하고 능력 있고 가능성이 많은 시기엔 결혼이라는 제도는 우리의 자유를 박탈함과 동시에 수많은 책임감에 묶인다. 그것이 너무나 비합리적인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40 후반을 시작하면서  흰머리도 나고 죽어도 빠지지 않는 나잇살과 노안으로 씨름한다. 어떤 병이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되었다. 이제 진짜 노화가 시작된다는 느낌이 썩 즐겁지는 않다. 이런 시간을 나 혼자 맞이하게 되었다면 참으로 서글프고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내 인생의 내리막길에 함께 걸어내려갈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되었다. 가장 젊고 아름다운 시절에 만나서 함께 가정을 꾸리고 전쟁 같은 육아와  생계를 지켜낸 남편이 곁에 있다는 것이 무척 든든하다.


우린 서로의 나약함과 치부를 모두 알고 있고 함께 이루어낸 역사가 있다.  나와 그의 주름과 흰머리는 마치 전쟁터에서 받은 훈장처럼 우리가 함께 살아온 세월과 추억이 묻어있기에 서글프지만은 않다. 이젠 말하지 않아도 내 삶을 다 알고 있는 그가 “공기처럼” 함께 있었다는 것이 감사하다.  아이들도 크면 언젠가 우리를 떠날 것이다. 우리의 부모님의 인생의 시계도 얼마 남지 않으셨다. 언젠가 고아되어 우리 둘만 남을 수도 있다는 것이 피부로 확 와닿는 나이가 되었다.

 

놀면서 만난 친구는 일하기 시작하면 헤어진다. 술로 만난 친구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고 직장 동료도 퇴직을 하거나 직장을 옮기면 소원해진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혼자가 되는 것이다. 나이 먹을수록 친구가 필요하지만 오히려 나이들 수록 친구를 만나기도 우정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하루라도 젊을 때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에겐 시간과 물질 그리고 관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젊을 땐 이런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기가 참 어렵다는 것이 함정이다.


노후를 위해서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100세 시대를 말하는 요즘 우리의 노후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 꼭 배우자가 아니더라도 나에게 소중하고 의미 있는 사람들과 든든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인생은 결과가 아닌 과정의 연속이다. 아무리 결과가 화려하고 큰 성과가 났더라도 과정 속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그리고 그 과정의 기쁨은 혼자 누리는 것보다 함께 누릴 때 기쁨이 배가 된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하면서 "당신이 있어서 다행이야"라는 고백을 할 수 있다면 인생은 분명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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