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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정미 Feb 15. 2024

결핍만 채운다고 인생이 해결되지 않아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부부싸움과 고부 갈등이 내 자아상과 내 자존감에 크나큰 치명타를 주었고, 결국엔 불안과 우울증으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그 결핍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했다. 이런 나의 결핍을 우리 아이들에게 절대로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것이 엄마가 되고 나서 나의 육아의 목표이자 결심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무엇보다 집안에서 부부싸움을 줄이고 아이들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것에 목숨을 걸었고 다행히 성공했다. 남편과는 눈만 맞으면 장난치고 웃을 정도로 화목한 관계를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이 알아서 척척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모의 건강하고 따뜻한 관계가 아이들에게 좋은 토양이 되긴 해도 그것이 모든 육아를 해결해 주는 만능키는 아니었던 것이다. 육아는 그 자체로도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당시에 나는 내 결핍이 너무 커 보여서 그것만 메꾸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것이 내 인생의 문제해결답안지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곤 무척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었던 부모님 세대는 등 따습고 배부르면 아이들이 저절로 클 줄 알았던 것과 같다. 그래서 그 결핍을 메꾸고자 밤낮없이 돈을 벌었지만 자식들은 '언제 나를 사랑한 적이 있었나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부모가 육체적 허기에 눈이 멀어 정서적 허기가 있다는 것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 안에 결핍이 지나치게 큰 경우 그것만 보이고 그것만 채우려고 하면서 다른 곳에 구멍이 생기는 것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마치 바람피우는 아버지에게 큰 상처를 받은 딸이, 바람 안 필 것만 같은 남자만 찾는 것과 같다. 부모의 술 때문에 고생한 자식들이 술은 입에도 갖다 대지 않는 사람에게 끌리게 되고, 재정적으로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은 능력 있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만" 찾게 된다. 그것만 채워지만 내 인생이 편해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 그 결핍이 채워진다고 정말 행복해지고 평안해지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난관과 어려움을 만날 때가 훨씬 더 많다.  바람은 안 피우지만 폭력적인 사람인 것을 보지 못하거나, 돈은 잘 벌어도 냉담하고 이기적인 사람일 수도 있다. 자신의 결핍 때문에 그런 부분을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부부가 갈등이 없고 한마음만 된다고 아이들이 저절로 잘 자라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부부사이가 좋으면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되기는 한다.) 미성숙한 한 생명체를 성숙한 시민으로 키우는 일에는 인내심과 참을성 그리고 지속적인 훈육과 훈계가 필요한 과정이었다. 내가 아무리 남편과 사이가 좋다고 해도 아이들은 미성숙하기에 실수도 하고 잘못을 했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을 가르치고 훈계해야 할 것은 꾸준히 반복적으로 훈계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절대로 즐겁지 않았다.  나의 결핍과는 별개로 육아를 하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면 다른 것은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줄 착각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결핍이 너무 크다보면 오히려 현실적이지 않은 기대나 희망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연애나 결혼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개인적인 상처로 인해 바람을 안 피우는 사람, 경제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 술만 안 마시는 사람을 찾는 것은 정말 위험한 조건이 된다. 이런 조건에 내 시야가 함몰되면 정작 중요한 다른 요소를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특별히 연애나 친밀한 관계 안에서 건강하고 따뜻한 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선 여러 가지 인격적인 성숙함이 필요한데, 그런 것들은 미처 못 보고 지나칠 때가 많다. '그래도 이 사람은 적어도 술은 안 마셔, 능력은 있어.'라고 안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곤 막상 연애를 시작하거나 결혼을 하고 땅을 치고 후회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 "왜 나는 이런 사람을 만났을까?" 하며. 


내면의 결핍이 큰 사람은 시야가 좁아지기 쉽다. 그래서 막연하게 그 결핍만 채우면 내 인생이 달라지리라 믿고 그런 사람만 찾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단순히 결핍뿐만 아리나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배우고 다듬어 가야 할 것들이 무척 많다.  그래서 오히려 자신의 결핍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과 더불에 정말 나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 우리 부부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나의 결핍 때문에 시야가 좁아져서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없는지는 살펴보는 과정이 오히려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데  시초가 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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