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크지 않았던 그녀의 세상

쿠사마 야요이의 infinity Mirror Room

by 원정미

미국여행을 다니면서 나에게 가장 큰 특혜이자 호사라고 한다면 각 주마다 유명한 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여행을 시작하면서 남편이 내 건 공약이기도 했다. 딸과 아들에게도 그림공부 겸 교양공부를 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이 날 때마다 나는 남편과 미술관을 다니고 있다.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설레는 순간이 사진이나 스크린 속에 있던 곳을 직접 보는 것처럼 나에게도 가장 경이롭고 놀라운 순간은 책으로만 보던 작품을 실제로 볼 때이다. 책이나 잡지에서 만나 내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작품을 실제로 만나면 늘 다른 느낌을 받는다. 작은 책에서 보던 작품이 큰 액자 속에서 위엄을 나타낼 때도 있고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일 때도 있다. 이런 반전이 아직은 새롭다.


그중에서도 내가 실제로 가장 보고 싶었던 작가의 작품은 쿠사마 야요이였다. 아직 현존하고 있으면서 현대미술사에서도 미술 치료에서도 아주 중요한 작가로 남아있는 그녀의 작품을 언제 가는 꼭 보고 싶었다. 그러다 지난 텍사스 여행을 하면서 들렀던 달라스 미술관과 휴스턴 미술관에서 운이 좋게 그녀의 설치미술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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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서 보던 그녀의 방은 끝이 없어 보이는 큰 공간처럼 보였지만 실상 1평남짓된 공간에 설치된 작품이었다. 따라서 단체 관람을 불가하고 한 명 혹은 가족끼리 두세 명씩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졌다. 전시공간에 들어가면 미술관 경비원 한 명이 따라 들어오고 문은 닫힌다. 쿠사마 야오이의 특별전시를 했던 달라스 뮤지움에선 그 작은 방에 1분 정도 머무는 가격이 한 명당 20불이었다. 달랑 그 작품하나로 말이다. 그만큼 지금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는 작가라는 방증이기도 했다.

달라스 뮤지엄에서의 1분


아무튼 내 머릿속에 상상한 것과 다른, 사람 한 두 명이 겨우 들어갈 것 같은 좁은 통로에 사방을 거울로 만들고 토트 무늬의 호박을 놓거나 천장에 전구를 매달고 불을 끄면 정말 끝없는 'infinity' 세상이 펼쳐졌다. 그곳에 들어간 사람도 끝없이 거울 속에서 복제된다. 한평 남짓의 그 작은 공간이 무한의 공간으로 바뀐다. 1분 동안 그것을 경험하게 해주는 전시였다.


처음엔 아름답고 신기했지만 남편 없이 혼자 그 공간에 있었다면 약간은 두렵기도 했을 것 같다. 아마 여전히 물방울 환시를 보는 그녀의 감정이지 않을까 싶었다. 아름답고도 외롭고 무서운. 하지만 그녀의 그 환시 덕분에 현재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어쩌면 물방울 하나로 시작한 그녀의 세상이 일본뿐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병력이 있으면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으거라 짐작한다. 자아실현은 더더욱 불가능하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다. 환시나 환청에 자신의 삶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세상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 점만으로 대단한 사람인 것은 확실했다. 미술역사나 미술책을 보면서 가장 보고 싶었던 그녀의 작품을 1분씩이라도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참 좋았다. 보고 싶었던 만큼 그녀의 작품은 정말 짧고 강렬했다.


https://youtube.com/shorts/bPruPNt52HA?si=5V_MuEWG-XDq4Dq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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