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아들과 함께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내 생에 첫 다이어트인 셈이다. 코로나가 오기 전, 내 나이가 마흔 중반을 넘기 전까지 나는 늘 적정체중에 속해 있었다. 20-30대엔 간혹 '말랐다. 날씬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아이 셋을 나아도 크게 체중은 변하지 않았다. 몸무게가 많이는다는 임신때도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가 끝나고 한두달이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이유는 나는 밥보다는 잠이 훨씬 더 중요했다. 2시간마다 갓난아이 모유를 주느라 새벽에 늘 잠이 부족했던 나는 낮에 아기 젖만 주고 밥도 안 먹고 틈만 나면 아이와 잠만 잘 때가 많았다. 그렇게 몇 주를 보내면 체중은 늘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내 인생에 ' 아 진짜 이제 다이어트해야 해!'라고 결심했던 적은 별로 없다.
이런 이유로 나는 원래 살이 안 찌는 체질인가 보다 착각하며 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이가 사십 대가 넘어가다 보니 조금씩 나잇살이 붙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결정적으로 코로나가 터졌다. 먹는 것이 삶의 즐거움인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24시간 집에 모여있으면서 그야말로 매일이' 먹자 파티'였다. 평소엔 잘 먹지 못했던 튀김요기, 제빵, 특식까지 온 식구의 시간과 에너지를 먹는 것에 집중하면서 불안하고 암담했던 코로나 시국을 행복하게 보냈다. 다만 그 덕분에 나와 남편은 적어도 5-8kg이 쪄버렸다.
그렇게 먹던 버릇은 코로나가 끝나고도 금방 고쳐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밥도 먹고 과자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는 것이 당연한 코스처럼 여기기도 했다.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건강식보다는 아이들이 좋아하고 잘 먹는 자극적이고 탄수화물위주의 식단으로 점차 바뀌어졌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행복했지만 모두 다 점점 살이 쪄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찌고 있는 내 모습이 싫어서 체중계 올라가는 것도 포기하고 살았다.
그러다 이번에 아들이 진지하게 살을 빼고 근육질을 몸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고백하기에 이번기회에 나도 동참하기도 했다. 어차피 아들을 위해 식단을 짜야하고 혼자 다이어트하는 것보다 함께 하는 사람이 있으면 좀 더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들도 응원할겸 나도 같이 먹으면서 살을 빼야겠다고 마음먹었다.아침엔 늘 건강한 단백질로 든든하게 시작하기 위해 검정콩과 대두를 사와 불리고 삶아서 직접 갈아서 수제두유를 만들었다. 하루아침과 저녁은 든든히 단백질과 채소 그리고 약간의 탄수화물로 된 식단으로 먹고 점심은 간단하게 사과나 단백질 음료로 넘겼다. 우린 이것 외에는 간식이나 단 음료, 아이스크림등은 거의 먹지 않았다. 나는 식후 라테 한잔은 마셨다. (그마저도 일주일전에 끊었다.)아들은 매일매일 30-40분 정도 고강도 운동을 했고 나는 아침저녁으로 식사 후 산책정도로 매일 보냈다.
아들은 한 달 반 정도만에 6kg이 빠졌는데 나는 2.5kg이 빠지고 멈춰버렸다. 그리고 계속 정체기이다. 다이어트를 해보지 않다가 한 달 동안 간식도 안 먹고 열심히 했는데 고작 2.5킬로 정도 빠지고 정체기가 온 것에 너무 당황스럽고 스트레스받았다. 젊을 땐 저녁 한 끼만 안 먹어도 살이 금방 빠졌는데 정말 갱년기가 오니 살이 안 빠지는 거가? 싶어서 무척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젊을 땐 그렇게 달달한 것도 자주 먹고 막먹어도 살이 안 쪘는데 왜 이제와 이렇게 살이 잘 찌고 빠지지 않는 걸까? 고민하면서 나는 나를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 나에 대해 보지 못했던 여러 가지가 보였다. 첫 번째 나는 살이 안 찌는 체질이 아니었다. 오히려 살이 잘 찌는 체질에 가까웠다. 다만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소식좌에 가까운 집안이었다. 지금처럼 음식을 냉장고나 창고에 쌓아놓고 먹지 않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다기보다는 1970-80년대는 지금처럼 과자나 디저트, 아이스크림이 넘치던 시절이 아니었다. 외식도 드물었고 과자나 케이크 같은 디저트는 생일이나 소풍 가는 날등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식단은 된장찌개와 생선 그리고 나물위주의 건강식이었다 보니 살이 찔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오고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한 남편을 만나면서 밥하는 것이 내 일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덕분에 우리 집 냉장고와 수납장엔 먹을 것이 넘쳐났다. 특별히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빵,쿠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항상 떨어지지 않게 사다놓았다. 그의 넘치는 사랑이 궁극적으로 나에게 득이 되지 못했다. 거기다 건강보다는 맛있게 먹는 게 중요하다 보니 조리방법도 자극적이고 살찌는 방법이 많았다. 고기는 불에 구워야 맛이고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고 하지 않던가.
나아가 나는 부지런하거나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운동은 말할 것도 없다. 고등학교졸업후 삼십년 가까이 나의 심장박동수는 늘 안정적이고 편안했다 .그나마 아이들을 낳고 키울 땐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할 때가 많았지만 나는 본성적으로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그도 아니면 아예 낮잠을 청한다. 아이들을 좇아 다니던 육체적 육아가 끝나고 나니 내가 부지런히 움직일 일이 많이 줄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지시하거나 전화만 하면 되는 것들이 많다 보니 과거보다 훨씬 신체활동이 줄었던 것이다.
두 번째 이런 나의 성향은 근육이 없는 몸이 되었다. 과거에 아무리 정상 체중이었다고 해도 거기엔 근육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젊은 시절 달달한 빵이나 떡, 커피로 식사를 자주 때우곤 했다. 그런 식생활에도 그땐 젊었고 많이 먹지 않았기에 살이 많이 찌지는 않았다. 소위 마른 비만이라고 해당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나이를 먹고 나의 호르몬의 변화와 더불어 근육량의 부족은 살이 빠지지 않는 몸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 나의 성향이나 나의 생활습관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막연하게 믿었던 '나는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이야'는 나의 착각이었을 뿐이었다. 그때는 살이 찌기 어려운 환경에 있었을 뿐이었고 환경이 달라지면 사람의 몸은 반드시 그 환경에 적응하고 변하는 것이었다. 마치 일본에 사는 일본인들은 비만이 거의 없지만 하와이에 사는 일본인들에겐 과체중이 많은 것과 같은 것이다. 더불어 나의 움직이지 않는 성향과 근육이 없는 몸뚱이는 살뺴는데 최악의 조건임을 깨달았다. 어쩌면 나는 남들보다 훨씬 더 힘들게 살을 빼야 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자각이 되었다. 식단을 바꾸는 것뿐 아니라 40년 평생 살아온 정적인 나의 활동습관을 바꾸어야 하고 너무 하기 싫은 운동을 억지로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의 내 삶에 있어서 총체적 변화를 만들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다이나믹한 변화는 인간의 뇌가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요요가 오고 다이어트에 실패한다는 걸 알았다. 앞으로 나의 다이어트가 쉽지 않다는 걸 직감하는 순간 과거의 즐거움을 참지 못한 내가 너무 후회된다. 하지만 지나간 과거는 과거이고 앞으로 더 큰 후회를 만들지 않기 위해 꾸준히 해볼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