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남편은 늘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다. 어린 시절 4대 독자로 큰 그를 보면서 아무 상처도 구김도 없이 자랐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여행을 준비하면서 남편은 “아이들과 추억을 많이 남기고 싶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아이들과 많은 추억을 남기는 것이 여행을 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그 이유엔 자신의 결핍이 있었다.
남편이 초등학교 고학년을 올라갈 무렵 미국으로 떠난 시아버님과 7년 정도 떨어져 살았다. 30여 년 전의 미국행은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스마트 폰은 커녕 전화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영화에서 보던 국제편지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소통의 방법이었다. 큰 산 같았건 아버지는 자신이 아버지만큼 자란 후에 다시 만났다. 다시 만난 아버지는 낯선 어른만큼이나 어색했다고 고백했다. 아버지를 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키우는 중학교 고등학교시절 그에게 아버지는 없었다.
성인이 되고 아빠가 되고 난 후 남편은 아이들과 놀아줄 때나 놀러 다닐 때 종종 “나는 어린 시절 아빠랑의 기억이 너무 없어”라고 아쉬운 듯 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와 추억이 없는 것이 오랜 공허함으로 남는듯했다. 그래서 그의 꿈은 늘 아이들과 추억을 많이 만드는 것이었다. 덕분에 그는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잘 웃겨주는 좋은 아빠가 되었다. 훗날 세 아이의 추억 속에 아빠가 좋은 모습으로 오래 남기를 바랐다. 그것이 이 여행을 시작하게 만드는 큰 동기가 되었다.
이렇게 사람의 결핍이 인생의 방향을 정할 때가 많다. 나도 어린 시절의 결핍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행복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보상받고 싶었던 나는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 꿈이 되었고 그것을 위해 달려왔다. 가난이 죽기보다 싫었던 우리의 부모님은 가난을 벗어나는 것만이 그들의 평생의 소원이 되어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똘똘 뭉치게 했다. (물론 자신의 결핍만 보고 그게 전부인양 달려가는 것은 무척 위험하다.)
개인의 결핍은 개인의 인생의 중요한 방향과 선택을 결정할 때가 많다. 때문에 결핍이 삶의 원동력이나 힘이 되고 목표를 하게 만들고 지금의 나나 남편처럼 도전하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개인의 결핍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지금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결핍이나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지나친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본다. 아이들이 경험해야 할 적절한 좌절이나 어려움도 겪게 하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아이들이 우는 것조차 견디지 못하는 부모들도 있다. 모든 것이 다 제공해 주고 해결해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절대로 건강한 양육이 아니다.
굳이 주지 않아도 되는 결핍과 아픔을 남겨줄 필요는 없지만 살면서 자연스레 경험해야 하는 좌절이나 실패까지 막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아이를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는 것도 그리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세상은 절대로 온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핍과 적절한 좌절과 아픔은 때론 아이에게 근육을 키우게 만들어 삶의 큰 동기와 원동력이 될 때가 많다.
우린 캠핑카로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남편이 바랬던 아이들과 추억을 엄청 쌓고 있다. 아마도 추억의 양과 질로 치자면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은 추억을 만들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들이 결핍 없이 성장하고 있을까? 사실은 아니다. 아빠의 꿈 덕분에 아이들은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추억을 학교에서 배울 많은 것들을 1-2년 정도 잃어버렸다. 아이들에게 나름의 결핍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크게 염려하지 않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도 남편의 인생에서도 결핍으로 인해 우리에게 목표가 생기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더 노력하고 도전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결핍만 채우기 위해 달려가는 인생이 아니라면, 인생에서 적절한 좌절과 결핍은 때론 훌륭한 보약이 될 것이라는 것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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