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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Jun 09. 2024

내향인의 일탈

이거슨 새로운 역사


 20년 만에 미용실을 옮겼다. 나 같은 왕 곱슬머리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라 몇 날 며칠을 끙끙거렸다. 아무리 곱슬이 심각해도 눈치 주거나 쫓아내지 않는 디자이너님을 찾기 위해 블로그를 뒤지고 또 뒤졌다. 어떤 미용실 후기에도 그런 정보는 없었고 고민 끝에 그냥 집에서 가까운 곳에 가기로 했다.

 굵은 웨이브 머리가 너무나 아름다우신 나의 새 디자이너님은 담쟁이덩굴 같은 내 머리를 보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동안 매직 파마하는 데 6시간 정도 걸렸는데 디자이너님은 딱 절반, 3시간 만에 끝내버렸다. 그렇게 곱슬머리 내향인은 사랑에 빠져(?)버렸다.


 며칠 전 머리를 자르러 갔다. 이번이 디자이너님과 세 번째 만남이었다. 얼굴을 보고 반갑게 인사해 주셨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커트하시게요?"

 "네. 길이 좀 잘라주시고 숱도 쳐주세요."

 가위질이 시작되고 나는 멍때리기 모드에 들어갔다.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는 퇴사 위기를 맞아 속이 좀 시끄러웠다. 한참 망할 회사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디자이너님이 말을 걸었다.

 "고객님은 휴가 언제 가세요~?"

 "아, 휴, 휴가요...? 휴ㄱ..."

 갑작스러운 (그러나 별것도 아닌) 질문에 당황했다. 한참 동공을 흔들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남편 휴가에... 맞춰서... 가려고요... 8월...?"

 디자이너님은 세 번이나 찾아온 나를 이제 단골이라고 생각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갔다. 멀쩡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경청하고 리액션도 하면서 생각했다. 

 '하... 미용실 옮길까...'


 어릴 때부터 낯가림이 심했다. 지금도 친구들에게 용건이 없으면 연락하지 않는다. 약속이 깨지면 하, 진짜 너무 좋다.(?) 마흔이 다가오는데, 사회생활 한 지 15년이 다 돼 가는데 나는 왜 이럴까.


 남편과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서 두부 코너에 갔는데 판촉 사원 분이 말을 걸었다.

 "그거 말고 이거로 하세요, 고객님~ 지금 하나 사시면 하나 더 드려요. 국산 콩이라 맛있어요~"

 "아... 두ㅂ... 네..."

 고개가 쭉 빠지면서 또 고장이 났다. 삐걱대는 내 뒷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은 간신히 1+1을 거절하고 온 나를 보고 깔깔 웃었다.

 "아니, 그냥 한 개만 필요해서요~ 하면 되잖아."

 "몰라... 생각이 안 나..."

 "갈수록 심해지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정말 왜 이럴까.


 이런 나에게 최근 소소한 사건이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연예인을 인터뷰하게 됐는데 그분이 좀 일찍 도착하셔서 잠시 다른 스태프들과 주차장에 계셨다. 차창 밖에서 언뜻 그분을 알아본 회사 직원들이 웅성거리면서 지나갔다.

 "저 사람 OOO 아니야?"

 "무슨 소리야, OOO가 여길 왜 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이성과 감성의 극심한 충돌을 겪게 되는데...

 '하, 알랴주고 싶다! 알랴주고 싶다!'

 결국 나는 일면식도 없는 그분들께 다가가 말했다.

 "OOO 씨 맞아요!"

 "오, 그래요?"

 "거봐~ 내 말이 맞잖아~"

 내향인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날 집에 와서 내향인 일탈 썰을 떠들었더니 남편이 빙글빙글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구, 장하다~ 대단하네 내향인~"

 사람 쉽게 변하지 않겠지만 나도 가끔은 이렇게 파격적(?)일 수 있다구!

 


내용과 무관한 사진은 

어느 날 주유하러 갔다가 

달콤한 사탕!이라는 말이 귀여워서 

찍어보았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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