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두 사는디~
주말에 남편이 청소를 하다가 화분을 깼다. 2년 전 입주할 때 부모님이 선물해 주신 조그만 다육이 삼총사 중 하나인데 얼마 전에 내가 수건을 떨어뜨려서 이미 만신창이가 된... 친구였다. 안 그래도 앙상한 다육이가 깨진 화분 옆에 누워 있는 걸 보고 울컥 화가 났다.
"떨어질 거 같으면 들어달라고 하지!"
아슬아슬한 곳에 올려둔 건 난데 괜히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밤에 자려고 누우니 다육이에게도 남편에게도 미안했다.
"아까 화내서 미안해. 내일 같이 다육이 병원에 가줄 수 있어?"
"병원이 어딘데?"
"화원 같은 데 가면 고쳐주시지 않을까?"
"그래, 가보자."
다음 날 아픈 다육이1과 이상한 다육이2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다육이3은 이미 죽...) 집 근처 화원 두 군데에서 허탕을 치고 거리가 좀 있는 곳의 화훼 단지로 갔다.
"저 중에 어디로 가면 되는 거야?"
"OOOO 어때? 간판이 귀여운데."
"그런 기준으로 골라도 되는 거야?"
"그런가... 다육이 많은 데로 들어가 보자. 다육이 전문점."
안타깝게도 다육이 전문점은 휴일이었다. 이대로 집에 가면 아픈 다육이1도 다육이3을 따라갈 것 같아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사장님 두 분이 TV를 보고 계시던 간판이 귀여운 그 꽃집으로 들어갔다.
"화분을 깼는데 다시 심어주실 수 있을까요?"
"우리는 다육이 안 허는디. 줘 봐유."
얼굴이 검게 그을리신 남자 사장님이 무심한 얼굴로 다육이를 살펴보셨다.
"얘는 좀 이상하게 크고 있는데 이것도 봐주실 수 있을까요?"
"이상한 게 아니라 원체 옆으로 크는 건디 자리가 없어서 웃자랐구만. 좀 짤라주지 그랬슈."
"엄마가 사주신 건데... 살려주세요."
"아이구, 엄마가 보시면 요 모냥으로 키웠냐고 한 소리 하시겄네. 이게 잘 키우면 입이 뽀글뽀글 올라온다구."
사장님은 적당한 화분을 골라 아픈 다육이1을 심어주셨다. 이상한 다육이2도 웃자란 부분을 잘라 다른 화분으로 옮겨주셨다.
"아픈 다육이는 죽을 수도 있을까요? 오늘내일하는 것 같은데."
"왜 죽어유? 나두 사는디~"
손만 안 들었지 벌 서는 모양을 하고 있던 남편과 나는 사장님 농담에 깔깔 웃었다.
"더운데 한 잔씩들 하세요."
여자 사장님이 쟁반에 종이컵 두 개를 가져오셨다. 작은 식물 하나 제대로 못 키우는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친절이 감사해서 컵에 든 것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것은 찬물에 연하게 탄 커피였다. 나는 커피를 못 마시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사장님은 인터넷에서 식물, 화분까지 다 사 와서 심어달라고 했던 어느 모녀 손님 얘기를 하시며 원래 이런 거 잘 안 해준다, 그러니까 잘 키워라, 물은 2주에 한 번, 병아리 오줌만큼 말고 종이컵 한 컵으로 시원하게 부어주라고 하셨다.
"화분값 5천 원이유."
"만 원 드릴게요. 거스름돈은 안 주셔도 돼요. 감사해요, 사장님."
"아 뭔 소리유. 5천 원 가져가유."
"아니에요, 다음에 또 올게요."
"아, 그럼 이거 가져가유, 이거 심어줄게."
사장님은 뒷걸음질 치는 우리를 불러 세우시고 빠르게 화분 하나를 옮겨 심으셨다.
"이게 이름이 천국의 계단인가 그려. 햇빛을 보면 잎이 빨개진다구. 얼마나 이뻐. 관심을 주면 얘들도 다 알어. 물은 2주에 한 번. 오늘 집에 가면 흠뻑 한 번 줘유."
"감사해요. 잘 키워서 분갈이하러 올게요, 사장님."
"그려, 또 와유."
나갈 때는 두 개였던 화분이 집에 돌아올 때는 네 개가 되었다. 그동안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올려뒀었는데 해를 많이 봐야 좋다고 하셔서 빨래 말리는 발코니에 나란히 놓았다. 시원한 물도 한 컵씩 부어주었다. 깨진 화분과 함께 다육이도 버릴까 했는데 그러지 않길 잘했다. 우리 같이 잘살아 보자, 친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