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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재와 아홉수

그 시너지에 대하여

by 초롱


올해 초 경주로 여행을 갔다. 불국사에 들렀을 때 천주교 신자인 (그러나 지금은 성당에 나가지 않는) 남편이 물었다.

"우리 삼재니까, 등 하나 달고 갈래?"

10만 원을 내면 1년 동안 달아준다는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10만 원은 여전히 나에게 큰돈이라 조금 망설여졌지만 그래, 큰마음 먹고 달기로 했다. 몇 가지 예시 글귀 중에 마음에 드는 걸 적으라고 하셔서 하나하나 신중하게 골랐다. 가족건강, 삼재소멸, 만사형통, 소원성취발원. 한껏 경건한 마음으로 기왕이면 석가탑이 잘 보이는 곳에 등을 달았다. 등 님(?), 부디 올해 저희를 지켜주세요. 착하게 살게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봄에 한 번, 초여름에 한 번, 가을에 또 한 번, 올해만 세 번 회사를 옮겼다. 그 사이 나는 공무원이었다가 막내 작가 겸 조연출이었다가 갑자기 메인작가가 되었다. 회사를 옮길 때마다 석가탑 앞에 달고 온 그 등을 생각했다.

'이 정도면... 10만 원 먹튀 아닌가...'

술이 조금 들어간 날이면 그렇게 등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엄마, 봐봐.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등도 달고 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나를 안 도와주지?"

"그나마 등을 달았으니까 이 정도인 걸 수도 있지."

어떤 날은 경주 방향으로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등, 너 진짜 그러는 거 아니다. 이 배신자야!"


아프기도 참 많이 아팠다. A형 독감과 함께 2025년을 시작했는데 두어 달 전 이석증으로 병원에 드러누웠다. 지난달에는 부산 여행을 하루 앞두고 회사 앞에서 꽈당 넘어져 무릎을 갈았다. 또 며칠 전에는 남편과 누워서 아이패드를 보다가 갑자기 얼굴로 떨어지면서 코를 다쳤다. 나는 꺼이꺼이 울면서 생각했다.

'망할 삼재, 망할 아홉수, 망할 등...'


삼재가 들 삼재, 눌 삼재, 날 삼재로 구성(?)된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올해만 지나면 되는 줄 알았더니 앞으로 2년이 더 남았다고 한다. 하... 어쩐지 해탈한 마음이 되었다.

"아홉수는 끝나니까... 삼재가 아무리 쩔어도 올해만 하겠어..."

등을 미워하던 것도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등이 무슨 죄람. 올해는 그냥 이럴 운명이었던 거겠지. 진작에 이렇게 생각했으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텐데 꼭 다 지나가고 나서야 깨닫는다.


어제는 아침 일찍 두 달을 넘게 미뤘던 방 청소를 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남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여보 짱이다? 난 그거 한 2030년쯤 치울 줄 알았는데! 대박!"

"30대의 짐을 40대의 나한테 미루고 싶지 않았어."

나흘 뒤 2026년의 나는 아마도 2025년을 금세 잊겠지. 그래도 이건 기억해 주면 좋겠다. 마흔이 되기까지 고군분투했던 마지막 30대의 나를. 힘들 때 뭐든 원망해 봤자 소용없으니 팔자라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하다는 것도.


나도, 이 글을 읽어주신 당신도, 새해 복 많이 만들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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