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승진

초저속 승진 후기

by 초롱


꼬꼬마 막내작가 시절 이런 질문을 받은 적 있다.

"초롱이는 언제 메인 작가 되니?"

그때나 지금이나 표정 관리 못하는 나는 썩은 얼굴로 두 가지 생각을 했는데 하나는 '뭐 저런 질문이 다 있지?'였고 또 하나는 '그런 날이 오겠냐', 지금 말로 '겠냐고'였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오고 말았다. 너무 오래 걸리긴 했지만.


방송작가는 크게 막내-서브-메인으로 나뉜다. 막내 때는 자료 조사, 섭외, 간단한 보도 자료 정도를 작성하고 서브 작가로 입봉, 그러니까 승진을 하면 본격적으로 원고를 쓴다. 다만 이걸 일반화할 수는 없어서 10개의 팀이 있다면 10개의 체계가 존재할 수 있다. 막내가 원고를 쓸 수도, 서브가 섭외를 할 수도.


나는 3년 차에 서브로 입봉을 했는데 또래들보다 좀 늦은 편이었다.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들은 중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정보 프로그램에서 주로 입봉을 했는데 (지금도 그런진 모르겠다) 내가 있는 팀에 이미 입봉 대기자들이 몇 명 있는 상태였다. 순서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막내 딱지를 떼고 몇 날 며칠 잔치(?)를 열었다. 그때 한창 베이킹에 빠져 있었던 내 친구 니니가 케이크를 만들어 와서 입봉 파티를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후배만 6명을 갈아 치운 메인 작가한테 지긋지긋한 괴롭힘을 당하고 심지어 몇 달 안 돼 프로그램이 폐지될 줄도 모르고.


10년 차를 넘기고도 메인은 나에게 너무 먼 얘기였다. 계속 방송 일을 할 생각이 없었고 (결국 돌아왔지만) 실제로 이직을 하기도 했었기 때문에 두 번째 입봉은 없을 줄 알았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만난 메인 작가들 대부분이 '저 언니처럼 되고 싶다'는 동경보다 '와씨, 저렇게 되느니 이 일 안 해야지'하는 마음을 갖게 했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차례가 돌아왔던 서브 입봉보다 메인이 되는 과정은 훨씬 고통스러웠다. 원인은 나였다. '난 이걸 꼭 하고 싶어! 할 거야!'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될까 말까인데 조금만 힘들어도 '하씨, 때려치우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열두 번씩 했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물끄러미 거울을 보며 '이 새끼야, 이게 다 너 때문이다' 욕을 하기도 했다. 물러설 데가 없어서 꾸역꾸역 참고 버텼다. 그러고 나니 어느새 사무실에 큰 책상 중 하나에 앉아 있었다.


십몇 년 만에, 아마도 작가 생활 중 마지막 승진을 한 후기는 네 글자로 '쉽지 않네' 정도가 되겠다. 서브 때는 원고만 좀 잘 써도 칭찬 받았는데 지금은 딱히 칭찬해 줄 사람도 없다. (그냥 내가 해준다. '잘 썼구나, 나 녀석') 원고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서 후배들이 잘하고 있는지, 일이 몰리진 않았는지, 방송 준비는 잘 굴러가고 있는지 여러 개 레이다를 쉼 없이 돌린다. 극내향인에게는... 하루하루가 위기다. 그러다 보면 쉽게 예민해지고 옛날 생각이 난다.

'아, 그 지랄 맞던 언니들이 이래서 그랬던 건가...'

물론 결혼 앞둔 후배에게 얼마 못 살고 이혼할 거라고 퍼부었던 악담, 왜 나 없을 때 부장님이랑 얘기했냐고 비디오테이프 집어던지던 폭력성을 이해한다는 건 아니다. 뭐랄까. 그들도 그들만의 고충이 있었겠지 싶다. 그걸 표출하는 방식이 대단히 잘못되었을 뿐.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실화였다. 극내향인답지 않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괜히 껄껄 웃기도 하고 후배들 대신 큰소리를 내는 걸 보면 그렇다. 조금 여유가 생기니 그런 생각도 든다. 이 시간도 다 지나가겠지. 길고 긴 인생에 아주 잠깐 이런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럼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다. 아, 오늘이 금요일이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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