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습니다
해가 바뀌면서 결혼 8년 차가 되었다. 동갑인 남편과 나는 나란히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고 (이미 오래전에) 몸무게 앞자리도 바뀌었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 건 새해가 되기 며칠 전 잠들랑 말랑할 때였다.
"새해에는 살을 좀 빼보자."
"좋지, 좋지."
"우리 서로 응원해 주자."
"아유, 그럼, 그럼."
까무룩 잠이 들 땐 몰랐다. 배우자와 함께하는 다이어트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열흘 전 연력 두 장을 주방 벽에 붙였다. 금주에 성공한 날 각자 스티커를 붙이기 위해서였다. 퀘스트 광인인 남편은 지금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스티커를 붙였다. 반면 지난주까지 주말도 없이 출근하고, 격무에 시달렸던 나는 벌써 빈칸이 드문드문(?) 보인다. 그래도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이 나흘 전 금주에 이어 저녁 금식을 선언했다.
"진짜 안 먹는다고? 진짜?"
"도와줘, 나 이번엔 진짜 다이어트할 거야."
남편은 업무 특성상 서 있는 시간이 긴데 한동안 발목 통증으로 고생을 했다. 살을 빼면 발목이 덜 아프지 않을까, 생각하니 금식을 말릴 수도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 나까지 동참하게 됐다. 요리 담당에게 내 밥은 좀 해달라고 할 염치가 없어서.
한 끼 한 끼가 소중해진 우리는 어젯밤 침대에 누워 열띤 토론을 했다.
"내일 점심 돼지갈비 어때?"
"미쳤다. 술 안 먹을 수 있어?"
"난 어차피 버린 몸이니까 그냥 먹을게. 여보는 먹지 마."
"하, 침 나온다."
그러다 오늘 아침 눈을 떠 다시 검색을 하고 급 수제비로 메뉴 변경을 했다. 남편이 30년 전통의 맛집을 찾아낸 것이다.
"칼국수 하나, 수제비 하나, 수육 소 하나 주세요."
우리의 주문에 사장님은 고개를 갸웃하시더니 메뉴를 바꿀 것을 제안하셨다.
"저희 양이 많아요. 칼국수나 수제비 중 하나만 시키시고 곱빼기를 하세요."
이번엔 우리가 갸웃했다. 두 그릇 파는 게 사장님한테 좋은 거 아닌가. 하지만 처음 가본 식당이니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사장님이 주방으로 가시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장님, 우리가 누군 줄 아시고 지금ㅋㅋㅋㅋㅋㅋㅋㅋㅋ"
"1일 1식하는 도른 자인 건 모르시겠지ㅋㅋㅋㅋㅋㅋㅋㅋ"
수육에 이어 수제비 곱빼기가 나왔다. 우리는 또 한 번 웃고 말았다.
"와, 이게 뭐야ㅋㅋㅋㅋㅋㅋ"
"말 그대로 곱빼기 주는 식당 처음 보네. 2인분이잖아, 이건."
양도 양인데 맛도 엄청났다. 같이 먹은 겉절이는 판다면 사 가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먹다 보니 왜 사장님이 덜 시키라고 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 맛있게 만든 음식을 양이 많아서 남기면 얼마나 아까우실까. 역시 시키는 대로 하길 잘했다. 우리는 딱 배부르게, 음식을 남기지 않고 친절한 사장님의 배웅을 받으며 식당을 나왔다. 행복하고 소중한 한 끼였다. 내일은 뭐 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