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그리고 나.

누구에게도 준비된 이별은 없다.

by 구름달반짝

흔히 말하는 자기소개서에 쓰였을 때 가장 인사 담당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얘기. 우리 가족은 항상 화목했었고 부모님께서는 저와 제 동생을 늘 사랑으로 대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가장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그게 정말 내 살아온 배경이자 정말 자부하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우리 부모님께서는 남동생과 나를 부족함 하나 없이 온전히 사랑으로 대해주셨으니까. 그렇게 화목했던 우리 가족에게 처음 아픔을 가져다준 건 어머니의 암선고였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아무것도 모른 채 토요일 오전을 잠으로 맞이하고 있었던 나. 그때는 휴대전화도 있었지만 집 전화도 자주 쓰는 시대였다. 집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 졸린 눈 비비며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누군가 울먹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를 하길래. "잘 못 거셨어요."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또다시 울리는 전화벨. "여보세요?" 건너편에서 그제야 조금은 가다듬은 목소리로 "엄마야, 아빠 바꿔줘." 무슨 일이지. 아무것도 몰랐던 나였기에 주무시던 아버지를 깨웠다. 심각하게 통화를 하시던 아버지께서는 이불을 걷어내시며 내게 말씀하셨다. "에이씨 너네 엄마 암이랜다." 그 말씀에 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굳어서 한 참을 서있다가 같은 아파트 사시는 이모께 전화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이모께 전화를 걸었고 나도 아무 말도 못 한 채 한참 울먹이기만 하다가 겨우 이모께 "엄마 암이래요."라고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항암 치료를 잘 이겨내시고 10년 동안 재발이 없으면 완치라는 의사의 판정을 꼭 10년이 지나서 우리 가족은 들을 수 있었다. 우리 모두 훌쩍 세월을 지나 나는 3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이제 더는 우리 가족에게 힘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서른이 조금 넘었던 그 어느 날. 퇴근하시고 오신 아버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느낀 거지만 그날은 엄마도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당연히 완치라고는 했지만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셨는데, 폐 쪽으로 전이된 암세포가 커지고 있던 걸 의료진 측에서 알아채지 못했다고 했다. 말 그대로 의료사고였다. 처음엔 아버지도 소송을 하실까 생각도 하셨다고 했지만 우선 엄마의 치료가 먼저였기 때문에 그쪽으로는 아예 생각을 접으시고 오직 엄마의 치료에만 전념하셨다. 그런데, 항암제가 효과가 없었다. 게다가 부작용이 심해 엄마의 손과 발은 모두 벗겨지고 짓무르고 피가 나고. 반복이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똘똘 뭉쳐 희망을 놓지 말자며 서로를 다독이고 엄마 치료에 집중했다.



그러던 2020년 9월. 엄마가 TV를 보시는데 갑자기 한쪽 눈이 잘 안 보이신다고 하셨다. 바로 병원 행. 검사가 진행됐고, 처음엔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다고 결과를 받았다. 그러나 이튿날이었나, 영상 의학과에서 엄마의 뇌로 전이된 암세포를 발견했다. 2020년 9월 14일. 그렇게 엄마는 다시 병원에 입원하셨다. 아주 잠시 중환자 실에 계셨던 엄마는 체력도 너무 떨어지시고 수술도 불가한 상태라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무지 했던 나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있다가 그 병동에 붙어있는 포스터들과 글귀들을 보고서 우리에게 엄마와의 이별이 다가왔음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도 끈을 놓지 않으시려고 마음을 굳게 다잡으시려고 노력하시다가 엄마의 섬망 증상에 이내 무너지셨다.



의식이 옅어져 가시면서도 내가 걱정이 되셨는지 나를 꼭 찾으셨고, 그렇게 우리 엄마는 우리 세 부자가 지켜보는 앞에서 2020년 11월 16일 불과 입원하신 지 두 달여만에 아주 긴 잠에 드셨다. 그 후로 우리 남자 셋은 서로 의지하고 똘똘 뭉쳐 잘 이겨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를 너무 사랑하셨던 아버지는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엄마를 모신 납골당에 다녀오셨고 동생은 직장 출퇴근이 너무 오래 걸려 자취를 하게 되어서 아버지와 함께 있는 내가 퇴근하면 꼭 아버지와 저녁 밥상에 반주를 하며 아버지의 말 벗이 되어드리려 노력했다. 나는 스케줄 근무를 하고 있었을 때여서 거의 주말에 출근을 했고, 동생은 주말에는 꼭 집에 와서 같이 있다가 돌아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평소 안부 전화도 정말 잘했던 내 동생이 아버지께서 전화를 안 받으신다는 카톡을 보내왔다. 주말에도 정말 바지런하게 일찍 일어나셔서 집안일까지 하셨던 분이라 이상했지만 그 전날 나와 큰외삼촌과 함께 약주를 좀 드셔서 늦게 일어나시나 했는데, 그렇게 아버지는 영원히 일어나시지 못하셨다. 엄마와의 이별 후 채 3년이 되지 않은 2023년 2월 12일. 동생과 나는 또 그렇게 아버지와 갑작스러운 이별을 했다. 그 큰 이별 뒤에 또 다른 이별이 찾아올 거라고는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