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가 구름이 되던 날.

또 하나의 가족을 떠나보내며.

by 구름달반짝

우리 가족에겐 아주 오래된 막내가 있었다. 처음 데려왔을 때 몽글몽글 구름 같아서 지은 이름. '구름이' 아는 형 여자친구네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다고 해서 엄마의 반대를 극구 무릅쓰고 데려왔었지. 젖도 떼기 전에. 제대로 강아지를 키워 본 적이 없던 나는 강아지 분유를 사서 새벽마다 따뜻한 물에 타서 온도 체크 하고 먹이고 트림시키고 놀아주고 그러고 강의를 들으러 갔었을 정도로 온 마음을 다해 애지중지 키웠다. 한 해 두 해 같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추억도 많아지고 아플 때도 건강할 때도 늘 함께였지. 엄마, 아버지와의 이별을 겪고 난 후에 가장 큰 위로가 되어 주었던 건 어떤 사람도 아닌 구름이었다. 텅 빈 집에 혼자 들어갈 때면 늘 우다다다 뛰어와 반갑게 맞아주던 구름이.



그런 구름이가 12살이 되던 2024년 갑자기 구름이가 소변을 너무 자주 보더라. 배변 훈련 할 때 쉬야를 하거나 응가를 하면 항상 간식을 줘 버릇해서 이 녀석이 간식을 더 많이 먹고 싶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데, 어느 순간 혈뇨를 보는 걸 보고 아차 싶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첫 진단명은 '방광염' 그래 그럴 수 있겠다 하고 약을 일주일 정도 먹였을까. 동네 병원에서는 방광염이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 병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쿠싱 증후군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해주더라. 사실 그전부터 조금 못 미더웠던 병원이었기에, 다른 병원을 알아보던 때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수의사여서 병원을 개원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바로 연락. 예약을 하고 구름이와 함께 친구네 병원에 갔다. 친구는 구름이를 보자마자 쿠싱 증후군인 것 같은데 라며 운을 뗐다. 그리고 시작된 종합 검사. 구름이는 기저 질환도 많았고 방광염이 아니라 방광암을 앓고 있는 것 같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



치료는 일단 구름이한테 최대한 무리가 가지 않는 약물로 시작했다. 그럼에도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나빠지는 구름이의 상태. 그렇게 좋아하는 오이도 당근도 주지 못하고 무기력해져 가는 구름이를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치료가 계속되던 어느 날,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구름이를 편하게 보내주는 생각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친구의 말. 눈물이 왈칵하고 쏟아졌다. 정말 항암에 좋다는 영양제며 음식이며 인터넷 검색에 지인의 정보에 다 알아봐 가며 지키려고 했었던 구름인데. 친구의 말을 듣고 동생과 통화를 한 후에 어떻게 내가 내 결정으로 구름이를 보내나 할 때까지 해보자 하는 결론을 내렸다. 바로 서울대학교 동물병원 예약. 사실 이것도 운이 정말 좋았던 건 너무 많은 친구들이 아파서 병원에 내원 중이었기 때문에 구름이는 차례가 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한 친구의 예약이 빠지면서 그 자리에 구름이가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서울대 병원에 다니는 동안 정말 긴장의 연속이었다. 구름이가 나이도 있고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마취 자체가 너무 힘든 상황이었다. 검사도 항암 치료도 마취를 해야 가능했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구름이가 치료를 받거나 검사를 받을 때 마취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정밀 검사 후 구름이의 최종 병명은 '골육종' 방광 근육에 암세포가 생긴 것. 수술을 할 수도 없었고 그저 항암 치료만 꾸준히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서울대 병원에서도 구름이가 오래 살아도 고작 60일 남짓이라는 판정. 억장이 무너져 내렸지만 동생과 나는 끝까지 해보기로 했다. 구름이도 사람하고 마찬가지로 컨디션이 들쑥 날쑥이었다. 처음 안 사실이었는데, 강아지도 사람한테 쓰는 항암제 용량만 조절해서 쓰더라. 예전부터 구름이는 나한테만 입질이 있었는데, 먹기 싫은 항암제를 먹이다 보니 내 손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구름이만 살릴 수 있다면. 구름이가 조금 더 우리 곁에 있을 수 있다면. 점점 야위어 가는 구름이를 보면서 마음이 너무도 찢어졌지만 구름이 앞에서는 슬퍼하거나 울지 않으려 애썼다. 서울대 병원에 입원도 여러 번. 정말 어마무시하게 비용이 들었지만 동생과 나는 개의치 않았다. 가족이니까. 그렇게 정기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던 어느 날. 구름이의 어떤 수치가 높아서 입원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담당 선생님의 말씀에 구름이를 입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왔다. 온통 구름이의 소변 흔적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우리 집. 아무렇지 않았다. 구름이가 침대에서 실수를 해도 닦아내고 구름이와 꼭 같이 잤다. 그 더운 여름에 빨래를 수십 번을 하고 결국 건조기를 샀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구름이가 입원을 한 둘째 날, 수치가 많이 좋아졌다는 전화를 받고 다음 날이면 퇴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선생님의 말씀. 다행이다 생각하고 구름이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회사에 출근을 하자마자 서울대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가 올 시각이 아닌데. 안 좋은 느낌은 왜 틀리는 적이 없는지. "구름이 보호자님, 구름이가 지금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회사에 바로 말씀드리고 운전대를 잡았다. 출발하며 동생에게도 전화를 걸어 말을 전하고 병원에서 보기로 했다. 병원에 도착. 동생과 만나 구름이가 입원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산소 호흡기를 달고 힘겹게 숨을 쉬고 있던 구름이. 그래도 우리를 보고 애써 반기려고 노력하는 구름이. 둘 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담당 주치의 선생님께서 구름이를 이제 편하게 보내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고, 동생과 상의 끝에 눈물범벅이 되어 그렇게 해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잠시 대기실에 있으면 호흡기를 떼고 잠시 면회실에서 시간을 보내게 해 주시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동생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밖에서 우당탕탕 하고 분주한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간호사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더니 "구름이가 호흡기를 떼니까 갑자기 숨이 넘어가서 지금 인사하셔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우리 또 다른 가족 구름이는 동생 품에 안겨 나에게 작별 뽀뽀를 해주고 엄마 아버지께 긴 여행을 떠났다. 얼마를 울었는지 퉁퉁 부은 눈으로 김포에 있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으로 이동해 구름이 장례식을 치르고 구름이는 아주 작은 스톤이 되어 우리 곁에 머물게 되었다. 가족을 떠나보내는 일은 아니, 소중한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힘들다. 구름이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