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바라기 할머니와의 이별.
어렸을 때부터 나는 유독 외할머니와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기와가 있고 마당이 있는 정겨운 할머니댁에 가면 그 자체가 그렇게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우리네 할머님들이 그러시듯 할머니께서 해주시는 음식은 모두가 정말 꿀맛이었다. 반찬 투정이 심했던 나였지만 할머니댁에 가면 항상 배부르게 먹곤 했다. 할머니 김치, 동치미, 오이지무침, 무말랭이, (어렸을 땐 애칭으로 오도독이라고 불렀다.) 동태탕 등등. 또 할머니댁에 있는 앵두나무에서 앵두를 따서 새콤달콤한 앵두를 맛보는 재미는 그저 나에겐 신기하기만 하고 맛있기만 한 추억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할머니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던 것 같다.
학창 시절을 지나 대학생이 되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잠시 멈춰보니 어느새 연로하신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할아버지께서 만성신부전증으로 투병하시다가 떠나셨지만, 항상 긍정적이시고 '나만 아니면 돼(?)'라는 느낌의 생각을 가지고 계신 우리 할머니는 (심지어 할아버지 사진 무섭다고 치우라고 하셨었다.) 정말 잘 잡수시고 아파트 단지에서 운동도 꾸준히 하시면서 건강하게 지내고 계셨다. 아, 여담으로 현실판 관식이 아버지께서 엄마가 할머니 가까이 계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할머니댁 근처로 집을 이사했다. 지금도 그 집에 살고 있고. 그래서 더더욱 할머니를 자주 뵐 수 있었고,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아버지는 엄마가 살아계셨으면 그러셨을 거라며 꼭 할머니를 모시고 주말마다 식사대접을 하셨다. 물론,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아버지와의 이별. 그 이후에는 내가 우리 부모님께서 하시던 걸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할머니는 그 전의 집을 외가 식구들이 처분하고 아파트 바로 앞동에서 이모와 함께 살고 계셨다.
하지만, 일이 바쁘신 이모와 그 가족들이 출근하고 나면 항상 할머니는 노인정에 가셔서 식사를 하시거나 늘 대충 끼니를 때우게 되셨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더 신경을 쓰셨던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는 내가 쉬는 날엔 되도록 자주 할머니께 맛있는 음식을 해드리거나 외식을 하곤 했다. 연세가 아흔이 넘으셨는데도 잡숫는 것도 너무 잘 잡숫고, 나와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자면 꼭 한 잔씩 소주도 드시곤 하셨다. 할머니와의 데이트는 할 때마다 나에게도 너무 큰 행복이자 기쁨이었다. 할머니 계시는 노인정에 가서 '할머니, 오늘은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라고 말씀드리면, 그렇게 옆의 할머님들께 자랑을 하셨다. '우리 큰 손주가 맛있는 거 사준대요.' 귀여우셨던 우리 할머니. 한 번 드셨던 건 다음 날은 별로 잘 안 드시고 새로운 음식을 좋아하셨던 할머니. 꼭 당신이 넣어놓은 적금 이자 타는 날이면 나한테 그 이자 몽땅 내어주시며 용돈 하라고 하셨던 할머니. '할머니'라는 존재의 의미는 나에게는 남다르게 다가오곤 했다. 그렇게 내 곁에 오래 머물러 주시길 바랐던 할머니께서 내 동생의 결혼식에 친할머니와 혼주로 앉으시기로 하셨던 할머니께서 동생 결혼 며칠 전. 갑자기 입원을 하셨다. 그전에 작은 외삼촌께서 할머니 식사 대접하신다고 모셔가셔서 그 댁에서 주무셨었는데, 과식을 하셨는지 체하신 것 같다고 하신 지 이틀 만에. 검사 결과는 암. 그놈의 암.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하루하루가 다르 다는 걸 그때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나와도 불과 며칠 전 식사를 하셨었는데 그렇게 잘 드셨던 할머니께서 호흡기를 달고 계셨고 식사도 힘드셔서 두유를 드시고 계셨다. 치매 증상도 있으셨어서 다른 가족들은 잘 못 알아보셨는데 내가 도착하자마자 힘겹게 숨을 고르시며 '승협이 왔네'라고 하시더라.
할머니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 모습이 내가 뵈었던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내 동생 결혼식엔 친할머니만 혼주로 앉으셨고, 동생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기 하루 전. 그렇게 할머니는 내 곁을 떠나셨다. 구름이와 이별하고 두 달이 채 안되었을 때였다. 동생 결혼식은 꼭 보시고 싶으시다던 우리 할머니. 운명의 장난인지 그렇게 며칠을 앞두고 할머니는 결국 동생 결혼식을 보지 못하셨다. 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우리 부모님을 모신 곳에 같이 모셔놓고 조금 멀리 떨어져 계셨던 할아버지도 모시고 오게 되었다. 이제 한 장소에 가면 네 분을 모두 뵐 수 있게 됐는데 그 장소가 납골당이라는 게 너무 슬프고 아프고 힘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지금도 닭백숙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할 때면 불쑥불쑥 할머니가 생각이 난다. 내가 해드리는 음식 맛있다 맛있다 하시며 너무 잘 드셨었는데. 내가 심적으로 힘들거나 지칠 때 '괜찮아, 잘할 거야 우리 승협이.'라고 늘 해주시던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