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ual Review 평가를 들었다. 걱정하던 것보단 결과가 잘 나왔지만 지난 2021년부터 2022년의 시간들을 상사가 내 앞에서 주욱 훑을 땐 그때(특히 2022년 초) 느꼈던 막막함과 절망감 같은 것들이 철사처럼 내 마음에 구멍을 뚫고 몇분간 그 자리를 긁으며 지나가는 듯 했다. 요는 발전을 했다는 거였지만 나는 또 어느새 '올해 그만큼 못하면 어쩌지' 를 생각하고 있더랬다.
거절을 잘 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가 왔다. 일의 실력은 결국 개인의 인격과 결단에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결국 돌고 돌아 내가 가장 약한 부분에까지 다다랐다. 1월에 참 스트레스를 알게 모르게 많이 받았는데 그 병목의 원인이 바로 칼같이 선을 긋고 네 일, 내 일 나누는 걸 못해서인 것 같다고 상사가 말했다.
인품으로서의 선함과 회사의 착함은 다름을 다시 한 번 그가 역설하였는데, 내심 내가 그래도 선하게잘 살아보려는 걸 상사도 아나 싶어 마음 한 켠이 흐뭇해지다가도 또 사회의 호구가 되는 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출렁 하고 내려앉았다. "우리는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이니까 이해관계가 먼저잖아요." 란 그의 말에 또 생각이 많아졌다.
타고난 감정형인 나로선 이해관계를 넘어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 있기 때문에 감정을 배제하고 문제만 말하기가 아직은 좀 힘이 든다. 그래서 논리가 필요한 거랬는데 '논리' 란 단어도 아직은 나에게 친숙하지 않은 무서운 단어다. 하도 논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한(혹은 생각하게 만든) 세월이 길어서인가.
그 밖에도 도식화를 잘 해보라는 주문을 받았다. 오 이 역시 쉽지 않은 단어다. 나는 매년 내가 잘 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삶으로부터 도전을 받는 것 같다. 물론 이걸 해내면 또 꽤나 흡족스런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머리로는 어느정도 알지만...
재밌는 건 상담을 받으면서 몇년간 먹다 안 먹다를 반복한 우울증 약을 끊고 상태가 나아진 흐름에 정비례하여 내 업무 퍼포먼스도 성장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오늘 발견한 건 나는 사람에게 상당히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는 것도.
최근 상사도 여러 동료들도 예전보다 훨씬 바빠지면서 내가 혼자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얘기해야 하는 분량이 늘어간다. 상사에게 당연히 힘들어요 어려워요 도와주세요를 전처럼 하지 못할 거란 사실도 생각이 났는데, 그걸 인지하면서 갑자기 내 마음이 아파왔다. 퇴근길에 왠지 헛헛한 마음이 들어 강남역까지 걸어가는 순간 그 아픔이 예전 연애에서 '통화는 맨날 하지는 말자' 란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절망감(?!) 과 같다는 걸 깨달았다.
의존을 할 수 없다는 건 내게 연결이 끊어지는 듯한(실제로는 연결이 끊어지는게 아님에도) 누군가 나를 거부하는 듯한 느낌을 들게끔 하나보다. 하지만 오늘 조금 다르게 생각해본건 이 과정은 내가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아닌 동등한 위치에 서서 이야기하고 생각을 하고, 또 언젠가는 누군가가 나에게 기대는 일의 밑바탕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였다. 좋은 관계는 건강한 상호 의존이 만드는 걸 알고 있으니.
오 하나님, 당신은 결국 온전한 의존은 당신에게만 가능하단 사실을 끊임없이 알려주시네요. 그러면서 또 <아티스트 웨이> 에서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와 스스로가 매일 글을 써내는 의식 위에 의존을 하는 것이 건강한 관계의 출발점이라고 역설했던 대목도 떠올려 보았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