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에 대한 단상
<바른 마음> 3-4장을 읽으며
양가가 모두 기독교 집안이고, 엄마 뱃속에 잉태되던 순간부터 서른살이 된 지금까지 교회를 벗어나본 적 없는 나 같은 사람을 "모태신앙"이라 일컫는다. 사실 피치못할 사정을 제외하고는 예배를 거의 빠져본 적 없고, 코로나 이전에는 반주와 성가대를 했고, 지금도 일요일마다 가정예배를 부모님과 드리고 있다. 보통 이 사실을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되면 먼저 하는 말은 "넌 참 독실하다." 라는 말이다.
사실 내가 그리 독실하다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나는 항상 교회에서 하라는 것과 반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좋든 싫든 기독교적 세계관과 신앙이란 건 겉으로 그래보이진 않을지언정 깊숙히 스며들어있기는 하다.
사람들이 기독교를 접할 때에 가장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고, 거부감마저 느낀다는 교리 중 하나는 "너희는 모두 죄인이다." 일 것이다. 사실 모태신앙이긴 했어도 죄인이라는 개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기엔 뭔가 거부감부터 들었다. 내가 왜 죄인인가. 그놈의 에덴동산부터 이어진다는 '원죄' 를 가져서? 내가 그동안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잘못한 것들이 있어서? 그렇기에 기도에 회개가 중요하단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지만, 막상 회개할 차례가 되면 할 말이 없었다. 늘 "제가 지은 죄들 있긴 있을텐데 그거 다 용서해주세요." 라고 한 번에 퉁치고 지나간게 다였다.
그러다 충격을 받은 건 대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가는 모 선교단체의 겨울 수련회였었다. 통성으로 시작된 저녁 집회 기도 시간- 회개 기도 시간- 한복판에는 펄펄 뛰고 구르며 자기 죄를 자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방언 터진 사람, 울며 불며 '주여' 를 몇번 씩이나 연호하는 사람... 할말 없는 나는 그 시간이 어떻게든 지나가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랬다. 그리고 집회가 끝난 후 친구의 한 마디. "나 목사님 그 말씀 듣자마자 내 죄가 자동적으로 전부 다 읊어지는 거 있지. 정말 많이 울었어."
할 말이 없었다.
죄인이란 무엇인가
사실 하나님과 멀어진 기독교적 '죄인' 이 아닐지라도, 내가 '죄인' 이라는 자각은 오히려 교회 밖 세상 속에서 더욱 많이 하게 되었다. 사랑했던 사람을 내 거듭된 잘못으로 떠나보내며 회개 기도를 하던 나날과, '미투' 운동을 기점으로 내가 한때 존경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했던 시간, 그리고 사회 온갖 뉴스에 열을 내던 내가 실질적으로 불합리한 사회 구조를 개혁하거나 가까운 이를 돕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던 순간들.
마태복음 7장에서는 나의 모순을 이러하게 꼬집는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
<바른 마음> 3-4장에서는 장을 거듭하여 말한다. "어떤 도덕적 판단의 기준은 놀랍게도 이성이 아니라 우리의 직관과 감정에 의존하고, 보통 상황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도덕적 추론 능력' 과 이성은 우리와 우리가 속한 집단의 입장을 대변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발달할 뿐, 상황의 진실을 판별하는 능력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 고..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죄' 와 '죄 아닌 것' 을 판별하고 누군가를 정죄하는 능력은 기막히게 뛰어나지만, 막상 나의 치부가 드러날 때 막으려고 급급한 능력마저 뛰어나다는 것. 세상의 훌륭한 이론을 섭렵하고, 아무리 훌륭한 일들을 해도 내가 권력과 부를 갖게 될 때에 여전히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일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이것이 바로 어린시절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우리는 모두 죄인' 의 뜻이었을거라 막연히 짐작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서 죄인이 된다는 말의 뜻도, 단순히 예배 빼먹고 기도나 헌금 안 하는 걸 넘어서서 자신을 계속 감찰하고 내 생각과 마음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다는 뜻으로 어느새 읽혔다.
30대가 된 지금, 나의 지난날을 되돌아보자면, 난 늘 어떤 상황과 입장을 이해하기보다는 나의 입장과 마음을 더욱 드러내고 인정받기를 바랬던 것 같다. 세상의 옳음과 그름을 더욱 잘 판단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휴, 얼른 다음장으로 넘어가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