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반항, 과격한 행동으로 갈수록 독한 약을 처방받아 복용 중인 상태였다. 치매약이라는 것이 병을 낫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 증상을 그 자리에서 멈추게끔 하는, 진행 속도를 늦추는 정도의 효과만 있기에 어머님은 거의 약에 취해서 생활 중이셨다.
계속 고개를 땅으로 떨구고 있었고, 의사소통은 불가능했다. 면회 시간 내내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요양원 직원은 방어적인 태도였다. 주말에 근무하는 자신은 아는 바가 없고, 보다 자세히 대화하고 싶으면 주중에 근무하는 물리치료사에게 전화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쪽에다가 요구하라고 했다. 남편이 물리치료사와 통화를 했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어머님의 목과 어깨를 잘 좀 풀어달라고 요청드렸다. 운동 시간에 제 시간에 함께 따라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이지만 최대한 몸을 움직이도록 이끌어달라고 했다.
2주가 흘러 어머님을 다시 찾아뵙고 왔다. 한층 순한 약으로 바뀌었고 어머님은 지난번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셨다. 남편도 잘 알아보았고, 우리가 묻는 말에 알맞게 대답도 하려고 노력하셨다. 아들의 이름, 아들의 얼굴은 제대로 알아보시지만, 며느리인 나의 얼굴과 나의 이름은 가물가물하신가보다.
물론 병중에 계신 어머님의 상태를 잘 알고 있지만, 매번 투명인간이 된 듯 남편의 그림자처럼 옆에 붙어서 마치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 기분은 항상 애매모호하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몫과 내가 지켜낼 수 있는 자리를 지켜보려고 요양원에 매번 함께 간다.
가끔 나를 잘 몰라보시는 어머님 앞에서 딴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만약 나이가 나보다 많고 평균 수명도 나보다 짧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어머님은 내가 혼자 돌봐야겠구나. 나 혼자 면회를 오고 나를 보고 갸웃거리시는 어머님을 보살펴야겠구나...
매번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마음이 되지만, 꿋꿋하게 웃고 주물러드리고 밥 잘 챙겨드시라는 말씀을 드린다. 그런데 면회 마지막쯤, 어머님이 점심 식사하러 올라가시느라 요양보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짧게 나눈 대화에서 나는 이런 말을 들었다.
"딸이세요?"
나는 딸이 아니다. 나는 어머님 기억속에서 흐릿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며느리이다. 그런 내가 어머님의 상태가 2주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는 말에 격하게 반가워하고,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 중 가장 젊은 연세인 어머님이 보호사들 사이에서 '언니'로 통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같이 웃음지었더니 나를 며느리가 아닌 딸로 본 것이었다.
요양원에 면회오는 사람들의 모습만 보아도 딸인지, 며느리인지, 아들인지, 사위인지 구분이 간다. 멀리서보아도 딱 티가 난다. 나는 그동안 어정쩡하게 선 모습으로, 누가 보아도 며느리의 형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밝게 웃어도, 어머님의 좋은 소식에 조금만 반가워해도 '딸'로 보인다는 사실이 의아한 듯 반갑고, 쑥스럽기까지하다.
예전에 친정식구들과 밥을 먹고 계산을 하는데, 아버지에게 깍듯하게 존댓말을 쓰며 내가 계산하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또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니라고 당신이 계산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식당 주인은 "시아버지세요?" 라고 물었다. 나는 친정아버지와 그렇게 격식을 차리며 살아간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가족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딸은 살가울 것이다. 며느리는 시부모 모시는 데에 불평을 내재하며 살아갈 것이다. 친정 부모님은 늘 편한 존재이다. 시부모는 늘 불편한 존재이다.' 등등.
살다보니 그런 선입견에 꼭 맞을 때도 있고, 그런 고정관념을 스스로 깨부수며 살아갈 때도 있다. 그저 우리집 형편에 맞게, 그때그때의 내 상황에 맞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어머님은 확실히 기운을 차리셨고, 이젠 내 차례다. 그동안 복직 후 4개월 가량이 흘렀고 어머님이 요양원에서 1년 넘게 잘 적응해나가시듯, 나도 적어도 1년은 그렇게 적응에 애를 써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어머님의 아련해진 기억을 확인하고 오는 날은 늘 현실의 고단한 문제들이 작아지는 효과가 있다. 시간 앞에, 세월 앞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늘 이 시간,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처지에 있다는 사실, 보다 충실한 선택으로 한 사람 몫의 의무를 다 해나가는 현실, 그런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어머님은 독한 약과 순한 약 사이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계신다. 식사를 맛나게 잘 하신다는 이야기, 혹시 견과류나 말랭이류의 어르신 간식을 준비해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언질이 반갑다. 돌아오는 길에 멸치와 함께 든 땅콩, 고구마 말랭이, 소포장 견과류를 주문했다. 저녁 간식 시간에 어머님의 입이 심심하지 않게 도와드리고, 나는 또 내 시간에서 허튼 구멍이 있지는 않은지, 나를 위한 하루를 살고 있는지 살펴봐야겠다. 아이도 키우고 어머님도 돌보는 나는, 내가 잘 챙겨야겠다. 속상하지 않게, 외롭지 않게, 무리하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