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의 피부관리와 어머님의 눈썹 문신

나이 들수록 해야 할 일

by 바이올렛


그동안 두 차례 요양원에 면회를 다녀왔다. 다녀올 때마다 마음은 무겁다. 우리가 가정에서 돌보며 한계상황이라고 생각하여 요양원에 모셨는데, 요양원에서도 지금이 한계상황이라 생각하여 더 상급 시설인 '요양병원'으로 모셔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배회, 망상 등 단체생활에 지장이 있는 증상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오랜만에 뵌 어머님은 아주 독한약으로 처방받아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상태였다. 유리벽 너머로 비대면 면회를 하는데 한눈에 보아도 기력이 없을뿐더러, 마주 앉은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계속 땅으로 시선을 떨구고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런 독한 약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어머님은 요양원을 휘젓고 다니시며 제시간에 식사를 하지 않으시고, 목욕을 하지 않겠다고 보호사에게 반항을 하고, 거울을 보고 소리를 지르실 것이다. 불가피하게 선택한 독한약의 처방이고, 그렇게 해서 나타나게 된 어머님의 현재 상태이다.


계속 머리를 땅으로 떨구고 정상적인 대화를 이어가기 힘든 상황. 어머님이 제일 좋아하는 아들이 왔는데도 1초 정도 미소가 스쳐 지나갈 뿐 별다른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하신다. 옆에 앉은 나를 보시곤 '준이 엄마'라고 스치듯 말씀하신다는 게 그저 신기하고 감사한 상황이다. 그래도 나를 알아보시는구나. 하지만 그 1초 정도의 인지가 사라지고 나면 다시 어머님과의 대화는 불가능해진다.


계속 바닥만 바라보시는 어머님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돌아온 면회시간이었다. 매번 면회 갈 때마다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어머님의 눈썹 문신이다. 어머님은 피부가 아주 고운 편이어서 새카만 눈썹 문신이 유난히 눈에 띈다. 더구나 요양원 실내에서만 생활하시기에 피부가 더 하얘졌는데 그로 인해 까만 문신이 더 눈에 도드라진다. 어머님도 곱게 화장을 하고 수백 명 앞에서 마이크를 잡으며 종교 활동에 전념하시던 때가 있었다. 그때 어머님의 단정한 외모는 빛을 발했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목욕 한 번 하는 데에도 여럿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물론, 목욕을 거부하고 분란을 만들지 않기 위해선 독한 약을 처방받아 제때에 먹어야만 한다. 그러니 어머님의 까만 눈썹 문신이 별 소용이 없다. 그것은 마치 지나간 날의 영광 같아 보인다.


내가 한참 외모를 가꾸고 남 앞에 서서 하는 일을 했던 짧은 기간이 있었다. 그때 눈썹 문신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었다. 뭐 외모 관리쯤이야 대수롭지 않다는 듯 살아가는 나였기에 그 말을 듣고도 눈썹에 아무런 손도 대지 않고 지나갔었다. 하지만 얼마 후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자 나는 바로 피부과로 향했다. 눈썹 문신은 하지 않았지만 고가의 피부관리권은 결제했다. 그리고 꾸준히 몇 달간 주기적으로 찾아가서 얼굴에 치료와 관리를 받았다.


기미를 제거하고, 피부톤을 밝게 했으며, 좋은 영양제를 바르고, 팩을 올리는 피부관리를 받았다. 나는 밝은 얼굴로 재탄생했고, 돈을 들인 만큼 내 얼굴의 잡티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하지만 같은 시간 어머님의 고왔던 얼굴엔 기미가 앉았다. 잡티가 늘었다. 그리고 눈썹 문신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머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느껴지는 지배적인 감정은 '허무함'이다. 특히 오늘은 더했다. 10회 피부관리권을 사용하는 마지막 날이어서 아침밥을 먹고 피부과로 향해서 관리를 받은 후, 곧바로 남편과 요양원으로 향했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분초를 다투어 피부관리 예약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얼굴을 곱게 만드는데 시간을 쏟는 열정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졌다.


어머님의 시계는 그 시간 동안 느슨하게 흐르며 그 곱던 얼굴에 잡티를 남기고 지나가버리는 것을. 결국 나의 외모 또한 사회생활의 한가운데에 있는 지금이야 꾸미고 살피고 투자를 해야 하겠지만 언젠가는 검버섯이 생겨도, 톤이 칙칙하게 바뀌어도, 그것을 도리어 자연스러운 노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시점이 올 것이다.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이례적으로 요양원 직원이 따라 나온다. 독한 약을 복용한 후 어머님의 기운 없는 모습에 충격받지 말라고 부연 설명을 해주신다. 나와 남편은 충격받지 않는다. 우리도 이미 가정에서 다 보았던 모습이다. 약의 세기와 치매 증상의 상관관계를 잘 알고 있다. 앞으로 치매 증상이 불쑥불쑥 심해질수록 약은 더 독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면 약을 먹지 않겠다고 집어던지고, 허공에다가 혹은 거울에다가 대가 큰소리를 치고 욕을 하는 증상도 사라질 것이다.




문득 출생에서 죽음까지 가는 길에 놓인 수많은 연결고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쯤 나는 어느 정도에 와 있을까? 노년으로 향해 갈수록 죽음과는 가까워지고 노화는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지금은 피부과 진료대에 누워서 간단하게 레이저로 잡티를 제거하는 정도이지만, 언젠가는 나도 독한 약으로, 강력한 보호로, 나의 노화와 맞서 싸워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내가 곱게 그 과정을 지나가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고, 마치 잠을 자듯 죽음에 이르고 싶다고 해서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저 운명에 맡기고 나의 마지막을 순리에 맡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어머님을 만나고 올 땐 늘 현재의 내 고민들이 작고 귀엽게 느껴진다. 긴 세월이라는 자로 나의 고민을 재다보면, 아예 측정단위부터가 다르다. 하루 이틀 고민하고 나면 사라져 버릴 것들에 대해서 나의 긴 세월을 기준으로 삼으면, 무엇이든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그러니 오늘, 여기에서 너무 심각하게 살고 싶지 않다. 어떤 땐 꿈에서까지 쫓아오는 현실의 고민을 안고 사는 나에게 모든 젊음은 사라지고, 나이 듦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것이라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이 오고, 또한 많은 것이 가버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가끔 어머님의 눈썹 문신처럼 오고 가는 것들 사이에서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있지만, 대부분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그러니 너무 얽매이지도 연연하지도 말고, 딱 오늘 하루만큼만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그러면 좋은 거라고 말하고 싶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눈썹 문신을 하지 않을 것 같다. 피부 관리도 10회를 마쳤다. 지금과 같은 모든 것이 빠른 시대에 외모도 경쟁력이겠지만, 나는 왠지 그러고 싶지 않다. 자꾸만 자연스러운 것, 완벽하지 않아도 가장 편안한 것을 찾아서 나의 노화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조금 더 관심을 쏟고 싶다. 저절로 거북이 목에 구부정한 자세가 되어가고 있다. 가끔 옆모습을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할 수 있다면, 건강한 자세와 밝은 미소를 오래 유지하는 것에 조금 더 관심을 쏟아봐야겠다. 그리고 나이에 따라 나의 외모가 바뀌어가는 것을 또 하나의 축복으로 여기는 마음가짐을 가져봐야겠다. 그게 지금 내가 관심있게 해보고 싶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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