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비극, 인생의 희극
어머님의 속옷과 간식, 요양사분들이 드실 간식을 사서 요양원에 다녀왔다. 갈 때마다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둘이 집을 지키고 나와 남편만 다녀온다. 집과 가깝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군대에서 요즘도 이런 용어가 쓰이는지 모르겠는데 "관심 사병"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걸 요양원에도 적용해보자면 "관심 어르신"이라는 개념으로 직원들이 특히 신경 써야 할 만큼 요주의 인물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바로 우리 어머님이 그에 해당한다. 요양원에 계신 모든 어르신을 통틀어 가장 젊으시지만 치매 증상은 날이 갈수록 힘이 세지고 있다. 식사, 목욕, 수면 등 기본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마다 직원들이 진땀을 빼고 있는 것은 물론 최근엔 공격적인 모습까지 보였다고 한다.
이제는 글을 쓰면서 덤덤히 책상에 앉아서 우아한 소설이라도 쓰는 것처럼 그 일과 내 일상을 분리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죄책감이 든다. 그것은 불과 작년까지 내게 해당하는 일이었는데, 이제는 요양사분들이 업무로, 그것도 아주 힘든 업무로 진행 중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지난번에 어머님 돌보는 것이 요즘 여러모로 협조가 되지 않아 힘들다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씀하신 요양사분이 이번엔 함께 내려오지 않으셔서 더욱 마음이 쓰인다. 마음만 쓸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돌아와서는 이렇게 이 모든 상황을 기록하는 것에 더 열을 올리는지도 모른다.
남편과 나, 어머님 이렇게 셋이 대화를 나누다가 남편이 어머님의 상태에 대해서 더 깊이 대화 나누기 위해 나간 사이 나와 어머님 둘만 남았다. 우리 앞에선 늘 소녀처럼 앉아계신 어머님. 약을 잘 챙겨 드셔야 한다, 목욕하자고 하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라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는데 막상 어머님과 둘만 남게 되니 아무 말 없이 그냥 안아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애들 안아주듯 어머님께 안아드리겠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님이 엉거주춤하게 일어나시는 거다. 꼭 안으려면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귀엽다는 생각을 하며 나도 꼭 안아드렸다. 어머님께 이런저런 말을 해봤자 사실 별로 어머님께 와닿는 것은 없다. 우리 앞에선 온순한 양처럼 알겠다고 하시지만 우리가 돌아가고 나면 다시 '관심 어르신'으로 돌아가신다니 막막하고 답답하다. 어머님이 요양원에서 별 탈 없이, 편안하게 지내시려면 직원들에게 협조하는 게 필요한데...
안타까운 마음, 어머님이 조금이라도 사람을 믿고 따랐으면 좋겠는 마음을 담아 안아드렸다. 그런데 꼭 안긴 어머님이 내 등을 같은 간격으로 톡톡 두드리시는 거다. 마치 우는 아이 달래는 엄마처럼 톡톡 편안하고 다정하게 쓰다듬어주신다. 남편이 이 다독임을 받으며 자랐겠구나 싶어 지니 마음이 한결 따뜻해졌다. 그렇게 아이를 길러내셨을 어머님은 이제 우리의 돌봄을 받다가 전문 돌봄 인력의 보살핌을 받고 계신다.
어머님과의 진한 포옹을 마치고 두 손을 붙잡고 어머님께 말씀드렸다.
"어머님, 곧 어머님과 제 이야기가 담긴 책이 나올 거예요. 어머님이 제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님은 대답 없이 환하게 웃기만 하셨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곧 책이 나올 거라는 걸 어머님께 말씀드렸다고. 편집 중인 원고를 미리 읽어본 남편이 잘했다고 이야기했다.
어머님의 치매를 발견한 순간부터,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거주지를 옮겨 우리가 모시던 것, 다시 우리 부부의 손길로는 도저히 봉양이 어렵다고 판단하던 순간까지 우리는 수없이 많은 고개를 힘겹게 넘어왔다. 나는 그때마다 이건 분명히 '비극'이라고 생각했었다. 내 인생에 절대로 오지 말았어야 할 비극.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비극이라고 여겼다.
'내가 잘 못한다.'라는 관념은 생각보다 삶을 송두리째 뽑아내버릴 만큼 강력했다. 남편과의 관계, 어머님을 모심에 있어서 충분하지 않은 공손함, 저절로 우러나오지 않는 효심, 자꾸만 신세를 한탄하게 되는 인생관,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안 풀린다는 태도까지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그 상태 그대로의 나를 글로 적는 것이 괴로웠다. 그래도 매번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 가슴에 와닿는 깨달음과 알아차림이 너무 컸기 때문에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님이 기억을 잃고, 동시에 남편과 나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던 순간을 글로 적어두지 않으면 시간이 흘러 정말로 비극이라고 기억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나는 그것이 꼭 비극만은 아니었다는 걸 발견했다. 비극과 희극은 꼭 맞붙어있는 한 세트였다. 그렇게 나는 약 10년 가까이를 살아왔다. 남편과의 만남부터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까지.
어머님 이야기로 책이 나온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내 30대 인생 모두를 담아두고 싶었고, 인생을 한 번 정리하고 지나가고 싶었기 때문에 그걸로 개인적인 이익을 기대할 수 없다. 그저 이 경험이 다른 어느 가정이 비슷한 상황을 겪을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욕심 갖지 말라고 하늘이 신호를 주는지 출판사와의 의사소통이 만만하지 않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이미 나는 큰 가르침을 받는 중이다.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 헤쳐나가며 마침내 책은 출간될 것이고, 나는 또 그 책을 바라보며 큰 감정의 폭을 견뎌야 할 것이다. 그렇게 인생이 지나간다. 온전히 비극일까, 어느 정도 희극적인 요소가 섞여 있을까를 끊임없이 물어가며 오늘을 사는 것이 인간이다. 모든 인간에게 억울할 만큼 공평하게 힘든 일과 좋은 일이 번갈아 찾아온다.
책의 마무리 작업이 잘 이루어져서 어머님께도 우리의 지난 시간이 그렇게 억울하고 어둡지만은 않았다고, 나는 그 시간을 통해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성장한 것은 물론 한 인간으로서도 깊은 감사함을 느꼈노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오늘 면회에서는 어머님이 몇 년 만에 웃음을 보이셨다. 같은 타이밍에 같이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들이 던진 별 말 아닌 것으로 우리랑 같이 웃고, 아주 잠시나마 어머님과 제대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간병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아주 희귀하고 꿀 같은 찰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