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재산이 얼마 이상이면 형제자매 관계가 갈라진다는 말의 진위
어릴 때 엄마에게 우리 집 재산이 얼마나 있냐고 물어보면 "애들은 그런 거 몰라도 된다."는 대답을 들으며 자랐다. 나는 살아가는 내내 '애들'인 상태로 살 줄 알고 돈은 나와 거리가 먼 거라고 생각하며 무지한 상태로 자랐다. 직장에 입사해서 '장마저축(장기주택마련저축)'이니 '개인연금'이니 라는 말을 주워듣고는 가입하곤 했지만 결혼하면서 목돈이 필요해서 거의 다 홀랑 해지해버렸다. 청약통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내가 나름대로 하찮기만 한 내 경제관념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면 선배들은 "그냥 꾸준히 저축하는 사람이 결국 제일 부자 되는 거다."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곤 했다.
세상 사람 모두들 풀 대출을 받고, 레버리지 효과를 누리며 자산을 불려 가는 동안 우리는 우리 형편에 맞는 집에 살며 심지어 저축까지 하면서 살았다. 새나라의 저축왕이라도 될 기세로, 아무런 투자도, 자산 증식에 대한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가족의 건강과 안위만 생각하며 몇 년을 살았다. 우리에겐 돌봐야 할 아이 둘에, 셋째 아이인 어머님까지 계시기에 그것에 모든 신경을 쏟고 가족 간에 불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돈을 불리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여기며 지내왔다.
그렇게 삶의 우선순위를 가족의 평온으로 꼽는 나와 남편에게도 막중한 임무 하나만큼은 피할 수가 없다. 치매를 앓고 계시는 어머님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이다. 어머님 명의의 고향집, 그리고 예금이 있다. 지인 중 한 명은 돈이 수중에서 일하지 않은채 놀고 있으면 불안하다고 했다. 단 몇 천만 원만 있어도 어떻게 투자를 할지 포트폴리오를 짜 보느라 머리가 바쁘게 굴러간다고 했다. 나와 남편은 반대다. 안전하게 은행에 들어있어야 제일 든든하다고 여기고 있고, 특히 어머님 재산에 대해서만큼은 우리가 가진 원칙을 흔들지 말자고 여기고 있다. 그 돈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시작한다는 건 우리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한 사람의 노후를 책임질 돈, 마지막까지 인간으로서의 고귀함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도와줄 돈이기 때문이다.
얼마쯤의 돈을 남편이 주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어머님의 공인인증서, 통장, 도장 같은 것을 보관하는 물리적인 관리뿐만 아니라 어머님의 연금이 잘 들어오고 있는지, 매달 나가는 요양원과 병원 비용 지불 등 경제적인 관리까지를 도맡고 있다. 그런 와중에 큰집에서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단 몇 달만 어머님 통장에서 돈을 빌릴 수 있겠는지 물어오셨다. 남편은 내게 그 소식을 전했고, 나는 뜻대로 하라고 이야기했다. 어머님 통장에 있던 돈의 일부가 큰집으로 갔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큰집에선 이사를 잘 마쳤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리고 오랜만에 우리 집 식구, 큰집 식구가 다 같이 식사를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아주버님은 지난번에 어머님 통장에서 빌린 돈을 갚는 대신 앞으로 갚아나갈 은행 대출금이 크고, 대출기간이 길어서 형편이 만만치 않으니 조금 더 사용할 수 있겠는지 물어오셨다. 아이들 다섯 명과 형님은 밖에 있었고, 그 자리엔 아주버님, 남편과 내가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딴 곳을 보며 밥과 고기를 입에 넣고 꼭꼭 씹는 것 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대화는 두 남자가 이어갔다.
과연 그 나이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있을까 싶을 만큼 긴 세월 동안 은행 대출을 갚아야 하며, 매달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가 얼마일지를 생각하다 보니 대출 하나 없는 나까지 머리가 혼미해졌다. 대출받아서 자산을 늘리기는커녕 저축까지 하면서 자본주의에 거슬러서 살고 있는 내가 이상한 사람같이 느껴졌다. 기억과 정신이 없는 어머님의 돈, 그 돈을 신줏단지 모시듯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관리하고 있는 우리 부부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어쩌면 제일 쉽게 헐어서 사용할 수 있는 돈을, 제일 멀리 있는 돈처럼 조심스레 관리하고 있던 우리 부부의 규칙이 고리타분하고 아둔하게 느껴졌다. 왠지 돈 관리뿐만 아니라 다른 세상살이까지 다 이런 식으로 뒷걸음질 치는 사람들처럼 보일까 봐 겁이 난다. 어머님은 기억만 못하실 뿐, 신체의 다른 기능은 모두 연세 대비 매우 건강한 편이다. 어머님의 예상 수명을 객관적으로 예측하면서 앞으로 어머님 건강에 어떤 변수가 생기더라도 대응할 수 있게, 우리 두 형제 집안에 타격이 없이 아이들을 길러낼 수 있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함부로 빠져나가는 돈은 없는지 확인하고, 치매와 관련해서 받을 수 있는 국가의 재정적 지원, 제도적 지원을 명확하게 찾고 혜택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보다 남편이 그런 것에 더 밝은 편인데, 내가 가끔 실정도 모르고 남편에게 모르는 소리를 하면 그는 서운해하기도 한다. 그가 어머님의 치매 보험, 건강 보험, 요양원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모두 도맡고 있기 때문에 나는 믿고 지지하면서 필요한 서류를 평일에 떼어주거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용히 도울뿐이다. 지금 우리 부부는 한 사람의 인생 후반부가 당사자 본인이 직접 챙기지 않더라도 안전하고 품위 있게 이어져나갈 수 있게 하는 일을 하는 중이다.
그런데 그 반듯한 균형을 만들려고 애쓰는 우리 부부에게 어머님 돈 얼마로 대출을 갚고, 일정 부분 생활비를 충당하는 데에 사용해야겠으니 가족 간에 융통성 있게 빌려서 사용할 수 있겠냐는 말은 참 아프다. 아주버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눈을 마주쳤다간 내 머릿속에서 하는 생각,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이 모두 들킬 것 같다. 고개를 숙이고 고기를 씹어 먹는다. 억울한 마음, 속상한 마음, 허탈한 마음이 흙탕물을 휘휘 저은 것처럼 올라온다.
더불어 내 입에서 함부로 이상한 말이 튀어나오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 대화는 계속 남편이 이어가는 중이다. 다행이다.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그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형에게 차분하게, 침착하게 이야기한다. 우리 부부가 한 이불을 덮고 자면서 그동안 수년에 걸쳐서 대화한 끝이 다르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와 나는 이제 미리 말을 맞추지 않아도 가지고 있는 생각이 같다. 어머님 일에 대해서는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단에 올라선 것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둘은 괴로운 마음을 나누었다. 그렇게는 안 된다는 남편의 말에 순순히 수긍하셨던 아주버님의 마음을 우리는 이해한다. 아이가 셋이나 되고 늦둥이 막내는 아직 세 돌도 되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났고, 새 집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갈 지도 모두 알겠다. 하지만 어머님 돈은 우리 형제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어머님 살아생전에, 어머님은 허락과 불허를 판단하지도 못하시는 상황에서 우리 판단으로 꺼내서 쓸 수는 없다는 합의에 함께 도착했으면 좋겠다.
어느 집의 사정이 더 급하고 더 중한지 쉽게 판단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간의 돈 문제에 대해선 서로 상식과 기본 규칙을 더 확고하게 했으면 좋겠다. 많은 집안에서 실제로 돈 때문에 사이가 갈라지곤 한다. 가족 간에 얼굴 붉히는 일이 있는 것은 물론 소송으로도 번진다. 그러다가 연이 끊어지기도 한다. 오늘 그 식탁에서 있었던 대화가 어떤 미래로 연결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야기의 물길을 바로 잡아 보려고 노력이라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남편과 내가 하나의 음을 맞추듯 같은 생각을 가지기 위해 끊임없이 어머님과 관련한 의사 결정에 흔들리지 않는 공통의 기준을 가지는 것, 그리고 아주버님과 형님께도 우리가 어머님 재산을 관리함에 있어서 이런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데에 심정적으로 흔들리는 상황이 생기지 않게 도와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밖에서 일을 하면서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어쩌면 돈을 좇는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다만 혼자 외치려니 너무 목소리가 작아서 목이 쉴 뿐 멀리까지 전달되지 않는 때가 훨씬 많다. 그래도 괜찮다. 세상은 바보 같아 보이는 사람들의 무모한 도전이 좋은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모두 기록 중이다.
어머님의 인생 마지막 장이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 있기를, 어머님이 기억하지 못하실 그 시간 동안 보살핌을 하는 형제와 며느리의 마음에 균열이 일어나지 않기를, 두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사촌지간인 다섯 명의 아이들이 좋은 모습을 보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하는 고민, 내가 글로 남기는 기록이 불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어느 것이 맞는지 방향을 찾고 싶어서 뱉어내는 처절한 외침이라는 것을 훗날 아이들이 알고, 또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다른 가정의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사람은 모두 늙는다. 아프고 병들 확률이 나이 들수록 높아진다.
내 노년도 누군가의 노력과 고민으로 조금이라도 고귀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내가 어머님의 존엄함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