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기억속의 어머님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

성취감과 허탈감은 원래 동시에 오는 거야.

by 바이올렛




어머니는 요양원을 휩쓸고 간 코로나에 걸렸다가 완쾌하셨다. 그 소식을 듣는 동안 우리는 면회 한 번 가질 못했다. 모든 보호자들의 면회가 금지되었었다. 국가에서 어버이날 전후로 3주간 임시로 접촉면회가 가능하도록 허용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가 오늘 다녀왔다. 남편도 나도 마음으로만 보다듬고 있었지 실질적으로 꼭 한 번 안아드리지도 못한 채 외롭게 어머님 혼자 코로나를 이겨내도록 했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



지난여름 요양원에 입소하신 어머님은 이제 몇 달 후면 만 1년을 그곳에서 지내신 셈이다. 우리가 보기엔 무탈해 보였을 수도 있지만 요양원 직원분들의 말에 의하면 어머님은 손길이 많이 가는 중증 치매 어르신이라고 한다. 평소에는 큰소리로 고집도 부리곤 하시지만, 우리가 면회 갔을 때는 새색시처럼 조용하게 대답하고 부끄러운 내색을 많이 하곤 하셨다. 요양원 직원이 그런 낯선 모습을 보고 어머님께 장난스러운 핀잔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나도 요양원 입소 전 어머님의 다양한 모습을 다 보았기에 지금의 새색시 같은 모습도 다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다. 기억이 사라지는 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어제 머리를 잘랐다는 직원의 말처럼, 어머님은 단정한 머리에 옷도 정갈하게 입고 계셨다. 그동안은 면회가 허용되더라도 비접촉 면회를 해왔고, 접촉 면회는 몇 달 만에 처음 한 것이기에 서로 꼭 끌어안고 손도 맞잡아보고 같이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남편이 핸드폰을 내밀며 자신과 어머님을 함께 찍어달라고 했다. 둘을 한 화면에 담으니 내 마음도 뭉클했다. 어머님께 브이 포즈도 하고, 두 손가락으로 작은 하트도 만들어보시라고 했다. 브이 자를 만드는 것은 가능했지만, 손하트는 불가능했다.



두 손가락을 꼬집듯 만들어 하트 표시를 해야 하는데 눈으로 본 것을 따라 하지는 못하셨다. 그 모습을 보니 아이들 어릴 때에 젓가락질이 서툴던 모습, 나의 손하트를 따라 하려고 손가락을 요리조리 움직여보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님이 우리 아이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졌다. 남편이 어머님 손을 요리조리 움직여 하트를 만들었고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어머님 손끝에 시선이 멈췄다. 단정하고 짧게 깎은 손톱을 보니 어느덧 내 귀에선 어릴 때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손톱을 손수 깎으시던 장면이 떠오르며 소리가 함께 나는 것 같았다. 탁! 탁! 경쾌한 손톱깎이 소리. 그 소리 너머로 내가 본 것은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열 손가락, 열 발가락의 손발톱을 깎던 정성이었다. 지금의 나는 요양원에 어머님을 모셔놓고 한 번씩 소풍 가는 마음처럼 가볍게 집을 나서지만, 아버지는 매일 퇴근하고 돌아오시면 그처럼 할아버지를 손수 돌보셨다. 엄마는 말할 것도 없이 아침 해가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할아버지, 할머니를 돌보셨다. 나는 그런 우리 집안의 분위기가 때로는 무겁고, 어둡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제는 내가 그 나이가 되었다. 우리 엄마, 아빠의 나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돌보시던 부모님 나이가 되어보니 어릴 때는 모르던 많은 것이 보인다. "너는 아직 어려서 몰라. 그런 건 어른들이 알아서 하는 거야."라고 했던 많은 것을 이젠 실제로 남편과 상의해서 처리해나가고 있다. 이 나이가 되어도 모르는 건 그때의 어린 시절과 다를 바가 없지만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몰라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몰라서, 어려워서, 어리니까, 이해받고 양보를 기대하던 때는 이젠 다 지났다.



최근엔 오래 바라던 일을 하나 마치곤, 성취감과 동시에 허무감을 느끼느라 마음속 허탈감을 감출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 큰 욕심과 원대한 희망이 나를 차곡차곡 짓누르는 것 같아서 잠도 안 오고 마음도 불안하던 터였다. 그런데 그런 내색을 하는 것도 싫어서 더 괴롭던 차였다. 그런데 오랜만에 어머님을 뵙고 오니 내 마음은 다시 예전의 푸릇푸릇하던 때로 돌아간 듯하다. 매일 밤 어머님의 잠자리를 챙기기 위해 두 아이를 이르게 재우고 종종걸음으로 향하던 어머님 댁, 어머님 방.



그 냄새, 그 분위기, 그 장면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리고 그때 가졌었던 꿈과 희망까지도 한꺼번에 떠오른다. '엄마도 꿈이 있어.'라고 외치며 현실의 어려움을 어떻게든 극복해보겠다고 애를 쓰며 살던 과거 그 시절의 내가 작은 꿈 하나를 이루곤 가뿐 숨을 내쉬는 현재의 나를 위로하는 기분이 든다. '그토록 바라던 일을 이뤘는데, 또 그다음 걱정을 하는구나.걱정마, 지금은 좀 쉬어도 돼' 라면서 나를 위로한다. 어머님을 가장 열렬하게 모시던 그때의 처절했던 내가, 새로운 꿈과 새로운 욕심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지금의 내 어깨를 쓰다듬는다.



앞으로의 내 인생은 꾸준히 성과를 만들고 싶어서 도전하고 감내하고 성취하는 것의 연속일 수도 있다. 그것을 장애물 달리기라고 생각하면서 매번 숨을 헐떡이면서 살 지, 마땅히 느끼고 경험해야 할 삶의 소중한 징검다리라고 생각하면서 나아갈지는 순전히 나의 선택에 달린 것이 아닐까? 내가 한 발자국씩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사실은 무척 자랑스럽다. 뒤를 돌아보며 후회하기도 하고, 앞을 바라보며 희망이 주는 눈부심에 절로 눈가가 붉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한 걸음씩 또박또박 내딛는 그 걸음 자체를 나는 무척 사랑한다. 방향도, 속도도, 걸을 때 부르는 콧노래마저도 나는 선택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어머님을 모시던 매 걸음이 그랬듯, 앞으로 내가 꾸려나가고 선택해나갈 앞날도 자기 만족과 자기 사랑으로 채워나가려고 한다. 나에게 하는 말, 보내는 눈빛, 전하는 마음을 나는 매 순간 선택하고 부족함 없이 흠뻑 전하며 나를 살리는 길로 나아갈 것이다. 때로는 연료가 부족해서 마음에도 빨간 불이 들어오고, 체력에도 경고등이 올 수도 있지만, 그런 나를 내가 제일 먼저 안아주고 위로하며 또 걸음을 이어나갈 것이다.



어머님께서 기억이 연결되지 않는 삶일지라도 하루를 꽉 채워 풍성하게 살아가시듯, 나도 보장된 성공만이 촘촘하게 연결되진 않더라도 좌절 커나 멈추지 않고 전체 그림을 보며 한 올 뜯어진 것에 조금도 연연하지 않고 싶다. 결국 올이 뜯어진 바로 그 자리가 내 삶을 더 매력 있게 만들 것이고, 보다 진솔하게 내가 연결되고 싶은 사람들과 나를 깊고 단단하게 묶을 수 있는 매개체가 될 거라 믿으며 오늘도 나에 대한 믿음을 더 키운다.



어머님의 단정한 손톱을 보며, 오늘도 흐트러졌던 내 마음을 단정하게 만들어본다. 어머님은 존재만으로도 늘 나에게 많은 메시지를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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