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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Mar 19. 2023

소문의 근원지

회사에서 푸스스한 머리에 화장끼 없는 얼굴로 업무에 집중하다가 한 번씩 지뢰가 터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웃음 폭탄’ 같은 반어적인 표현이긴 한데 ‘행복한 지뢰’에 속하는 상황이다. 직원들이 어디에선가 소문을 듣고 내가 출연했던 유튜브 영상을 보곤 “잘 봤다”라는 말을 하는 때가 내겐 얼굴이 빨개지고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당황하고 부끄러울 것 같으면 뭐하려고 그런데 출연했냐, 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당시에도 참 고민을 많이 하고 결정했던 건 사실이다. 특히 나와 가까운 위치에서 근무할수록 그 당황감은 더 커진다. 며칠 전엔 나와 함께 근무하는 분, 오늘은 조금 떨어져서 근무하는 분이 나에게 행복 지뢰를 선물하셨다.




행복 지뢰는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저 놀랄 뿐이다. 충분히 짐작하고 가상 시나리오를 쓰며 마음의 준비를 했던 상황이라 기분 나쁘거나 불쾌하지도 않다. 다만 놀랄 뿐이다. 나는 진지한 얼굴로 행인3과 다를 바 없이 그저 내 역할에 충실하게 직장의 배경지처럼 조용한 것을 추구하며 살아왔기에 작은 파동이 일어나는 것일 뿐, 평소의 고요했던 일상은 그대로이다. 걸려오는 전화를 응대하고 굵직한 업무처리를 위해서는 몇 주간의 스케쥴을 잡아서 하나씩 처리해나가고, 작게 바로 바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도 속도감있게 해낸다.


행복 지뢰는 연쇄적으로 터진다. 처음 발파한 사람이 누군지 충분히 짐작간다. 나는 그를 믿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게 이렇게 주변에 잔잔하게 퍼질지 영상 시청수가 올라가는데 영향을 끼칠지는 상상도 못했다. 물론 눈 가리고 아웅 하며 사는 중이긴 하지만 그런 모순 상태로 살아가는 나의 현실이 까발려지는 것 같아 마음에 종소리가 멈추지 않고 계속 울리는듯 조금 분주했고 들떴고 수습하고 싶었다.




소문의 근원지로 추측되는 분께 전화를 걸어 조용한 회의실에서 독대했다. 한바탕 싸움을 벌인 남매를 앞에 두고 먼저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라고 하는 것처럼, 그분께 먼저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하시라고 했다. 그랬더니 내가 영상 속 강의에서 하는 말의 메시지가 좋아서 젊은 직원들에게 공유하고 싶었다고 실토했다. 그래서 몇 개의 지뢰를 터뜨렸는지 여쭤봤더니 여성4, 남성5, 총 아홉 개의 지뢰를 터뜨렸노라고 말씀하셨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하셨구나 싶었다.


그걸 보고 여성1, 남성1이 나에게 와서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잘 보았다고. 환하게 웃음 띤 얼굴, 몇 십분간 영상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꿈을 갖자고 말하는 나와 이미 친해져버렸다는 표정을 앞에 두고 나는 현실의 나로서 어떻게 화답해야 할 지 재빠르게 대처하기 어려웠다. 얼떨떨하게 웃고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n년 정도 더 남았다. 내가 출연했던 영상은 유튜브에서 000 작가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고 회사에는 더욱 잔잔하게 작은 파도처럼 퍼져나갈 것이다. 그때마다 회사에서의 푸스스한 나와 차이가 있는 영상 속의 나는 그들에게 작은 이야깃거리로, 흥미거리로 보여질 지도 모른다. 그게 전부다.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고 부담을 가질 것도 없다.



도서관에서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마음에 드는 소설가의 장편소설 등을 빌려서 쌓아두고 읽고 있다. 좋아하는 소설가의 에세이도 구입해서 읽는다. 동시에 몇 권을 허겁지겁 먹어치우듯 읽는다. 예전에 자기계발서를 그렇게 읽었던 것처럼... 이렇게 몇 년을 빠져서 살면 반드시 무슨 일이든 일어나게 되어있다고 믿으며 또 소설 구상만으로도 머릿속에 여러 세계를 지었다가 전복시키며 하루를 보냈다. 그러니 참 바빴다.


다음주에는 우리 동네에 유명 소설가가 문화센터에서 강연을 하러 찾아온다. 최대한 외부 자극은 줄이며 회사와 소설 수업 듣기만 하면서 살고 있는데 아마도 그 소설가의 강연을 듣고는 한동안 마음이 바쁠 것 같다. 아직은 좋은 소설을 알아보는 눈보단 유명한 소설가들의 화려한 모습에 더 시선을 빼앗긴다. 무엇이 진짜 내가 쫓아야 할 것인지 잘 알아보며 작은 것 하나, 기초 쌓는 것 하나에 충실하며 묵묵히 읽고 쓰면서 살아야겠다.


동시에 회사일도 바빠지고 있다. 그렇게 내게 오는 모든 일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사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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