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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Apr 20. 2023

엄마에게 내 소원을 양보할게요.

올해 10살, 9살이 된 남매는 아직도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고 있다. 물론 확신하는 것은 아니고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 존재에 대해 몹시 의심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은 확실하다. 나에게도 산타할아버지 없지? 물으면서 내 표정을 자세히 살피는 것이었다. 표정관리하느라고 아주 힘이 들었다. 그리곤 이렇게 말을 했다.

“너희들이 산타할아버지를 믿으면 선물이 올 것이고, 거짓말이라고 사실은 엄마 아빠가 밤에 놔두고 가는 거라고 믿는 순간 산타할아버지는 속이 상해서 다른 아이들 집으로 가버리는 거야.”

첫째는 의구심을 속에 묻어두고 선물을 받고 싶은 마음에 대충 수긍을 한 것 같고, 둘째는 순수한 눈망울로 올해 크리스마스엔 ‘글라스 데코’를 선물로 받을 것이라며 연초부터 선언을 해둔 상태였다.


연초의 일을 까맣게 잊고 봄을 맞이하고 있던 어느 날, 딸이 나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었다.

“엄마의 소원은 뭐에요?”

“우리 가족 건강하게 지내는 거.”

“엄마 그럼 산타 할아버지한테 글라스 데코 선물 받는 거 대신에 엄마 소원 들어달라고 할게요.”

‘!’

“00야, 고마워”

“대신 산타 할아버지한테 못 받은 선물 엄마가 사주세요^^”


살다보면 이루고 싶은 소망이 생긴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희망 사항, 꿈, 목표 같은 것이 줄줄이 생긴다. 가끔은 욕심인지 순수한 열정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아이들도 하나 둘 소망을 갖기 시작한다. 지금은 눈앞에 선물이 생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점점 무형의 가치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면 점점 꿈의 가치, 인생의 진정한 방향에 대해 지금보단 깊게 생각하고 설정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딸이 나에게 양보한 자신의 소망 실현 기회처럼 자신의 자원을 어떻게 하면 남에게 사용할 수 있을지, 타인과 함께 동시에 꿈을 이루어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될 것이다. 딸의 소망 실현 양보를 선물받고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식구들의 건강을 담보해주시는 느낌을 받으며 든든하게 출근했다. 그리고 하루종일 마음이 따뜻했다.



아들은 종이접기의 달인이 될 기세다. 몸을 콩벌레처럼 말아서 손으로 조물딱 조물딱 한 겹씩 종이를 접는다. 점점 심화용 종이접기를 하고 있고 가끔 코브라 같은 것을 접어서 나의 출근가방에 넣어두곤 한다. 사무실 책상엔 여러마리의 종이 동물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아이는 엄마에게 선물한 후에 그것을 얼마나 소중하게 취급하고 있는지에 대해 몹시 기대를 하고 있다. 그 기대감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 아들이 종이접기책 한 켠에서 꽃 접는 법을 발견했고 그중에 카네이션도 있었나보다. 학교에서 배웠는지, 스스로 생각한 건지 등을 돌리고 새빨간 색종이를 접어 카네이션을 만들고 있었다. 보지 말라고 하면서 다 보이게 접고 있었다. 그래도 모르는 척 했다.


어버이날이 오면 나는 그렇게 한땀 한땀 접은 종이접기 카드를 선물받을 것이다. 그리고 자식 키우는 것이란 내게 어떤 의미인지, 이 시대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볼 것이다. 며칠 전 ‘엄마의 꿈’에 대한 강의를 마치고 돌아왔다. 다음 강의를 기약하며 새로운 콘텐츠가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지금껏 강의하던 것이 있지만 이번엔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 시대에 대해서도 파악해보고 싶어졌고 엄마들의 목소리를 더 생생히 들어서 수집하고 싶다는 생각도 가졌다. 저출생의 시대, 직장내 육아휴직자에 대한 시선, 일과 가정 돌봄의 한계에 대해 많이 생각해왔고 나만의 생각을 다져나가는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무르익지 못했다. 계속 깊게 생각해보는 중이다. 엄마들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이 낳고 키우는 것이 인생 최고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라고 생각하려면 어떤 사회적 통념이 필요할까?


딸이 나에게 제 소원 기회를 양보하고, 아들이 등을 돌리고 카네이션을 접어 어버이날 카드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깊은 행복감을 느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행복감 말이다. 내가 나의 부모에게 할 수 있을까?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은 것을 열 살 무렵의 아이 둘은 하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그들의 순수함, 동심에 매번 감동받고 이 감동의 순간에 대해 세상과 나누고 싶다. 아이 키우는 것이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랍니다. 사실은 제 가슴속 아주 깊은 곳을 건드리는 감동 포인트가 꽤 자주 있답니다, 라고 말이다.


남매의 명언집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밥 먹다가도 노트를 가져와서 메모하곤 한다. 아마 모든 집의 아이들이 그렇게 무방비 상태에 있는 엄마 아빠를 향해 그들만의 순수하고 사랑이 담긴 언어를 쏟아낼 것이다. 그것을 잘 주워담아 제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부모가 많아지면 좋겠다. 나도 그 기록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내 다음 강연 주제는 무엇이 좋을까? 진짜 엄마의 행복을 담보해주는 콘텐츠는 무엇일까? 이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어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많이 생각하고, 나의 말과 글로 좋은 것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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