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스터디 #2015년 8월 2일 키워드 : 창조와 모방
어떤 무언가를 '창조'했다고 일컬어질 수 있는 최초의 것을 떠올려본다. 그것은 아마도 구석기 시대 동굴 안에 돌로 긁어 만든 벽화가 아닐까? 그림의 소재가 된 것은 주위에서 계속 봐왔던 동물, 식물 들이다. 흔히 접한 무언가의 모습을 따라 그린 것이다. 또한, 뾰족하고 날카로운 도구 즉, 뗀석기는 동물의 발톱이나 사람의 손톱에서 영감을 얻고 만든 것임을 우린 예측할 수 있다. 창조를 하려면 필연적으로 그 창조에 바탕이 되는 무언가를 '모방'하는 것이 전제될 수밖에 없다는 명제가 도출된다.
그렇지만, 마냥 무언가를 따라 한 것이라면 창조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저 '복제'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모방하기 위해 원천이 된 소재가 새롭게 가치를 얻어 어떠한 새로운 무언가가 되었을 때 비로소 창조가 된다. 누군가는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다고 일컫는다. 그러한 가치는 대게 '관심'으로 부터온다. 모방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선 요리조리 뜯어보고, 생각해보고,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느껴보고, 때로는 따져보면서 도출된 생각을 가치로 변화해서 결과물로 내놓는 것. 그것이 복제와 다른 창조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분명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교묘한 복제로 타인의 생각을 자신의 것인 양 따라 하는 모방은 결코 창조라 할 수 없다. '표절'이다. 모방하여 비롯된 창조와 표절의 경계를 어떻게 구분 지을 수 있을까? 끊이지 않고 대두되는 난제다. 누군가는 창조라고 주장하고, 누군가는 표절이라 하는 엇갈린 주장이 펼쳐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프로듀서에게는 양날의 검이 아닐 수 없다. 제작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의 아이템이 떨어졌을 때 대게는 재미 난 다른 콘텐츠들을 둘러보며 아이디어를 얻는 과정을 거친다. 다른 무언가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이를 잘 녹여내면 프로그램의 창조에 기반한 것이다. 하지만 정말 재미 난 아이템을 발견하더라도 이를 어떻게 더 가치 있게 재가공할 것인지에 대해 답을 내리지 못한다면 아이템이 없는 상황만큼의 고민거리가 된다. 이는 곧 제작자에게 부담이 되고 때론 좌절로 이어진다. 또한, 방금 발견한 그 아이템을 그대로 재현해서 내 프로그램으로써 전달하고픈 욕심을 세차게 뿌리쳐야 하는 것도 과제가 된다.
표절과 모방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가치를 더 창출해내는 창조로 프로그램을 이끌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의 '본질'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다. 내가 어떠한 콘텐츠를 만들어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자부심을 끝까지 붙들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에서 표절과 모방의 갈림길에서 방향이 정해진다. 예를 들어 욕심나는 한 문장, 혹은 한 장면이 있다고 가정하자. 여기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콘텐츠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욕심나는 그 문장, 그 장면에서 흠을 찾아내거나, 내 콘텐츠에 대해 보다 탁월한 점을 쉽게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녹여내고, 반영하여 창조가 되고 이는 또 다른 누군가의 창조에 있어서 모방의 대상이 될 것임을 안다. 그리고 복제 혹은 표절에 대해 당당히 분노하게 된다. 반면, 콘텐츠에 대한 자부심이 없이 그저 콘텐츠 바깥의 것에 욕심이 있다면, 얻어지는 부차적인 것에 집중할 것이고, 자부심이 없는 콘텐츠는 한계가 금방 찾아오기 마련이다.
혹자는 '일단 유명해져라. 그럼 대중들은 너가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란을 한다. 표절로 콘텐츠를 만들어 '똥'을 쌌다고 치자. 유명세로 인해 박수를 받을 수도 있지만, 진정 내가 제작하지 않은 콘텐츠로 올라간 자리에서 '어라? 똥이었네?' 하고 정체가 들통 날 수도 있다. 이는 시청자들의 기대를 내팽개쳐진 대가로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똥은 언젠가 냄새를 풍기기 마련이고, 시청자들은 이를 어떻게든 알아챈다. 그리고 어쩌다 그것으로 박수를 받을 지라도, 표절이 틈틈이 쌓인 콘텐츠는 자부심을 가질 수 없으며, 그럼 또 표절로 방향이 이끌어지게 되는 순환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창조와 모방은 뗄레야 뗄 수 없고, 창조와 복제 그리고 표절은 똑같이 닮은 다른 길과도 같다. 분명한 것은 만들고자 하는 창조물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어려운 갈림길에서 보다 가치 있는 '창조'의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묵직한 해법 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