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에서 화본역까지
이번 여행의 시작은 코레일과 경상북도가 함께 진행하는 반하다 경북 이벤트를 보면서였다. 날이 따뜻해지자 여행을 가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하던 차였다.
그렇다고 왁자지껄하고 번지르르한 여행이 그리운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날 때면 괜히 혼자 산책을 나가거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카페에 나가서 책을 읽는 시간의 갖고 있는 요즘의 그 감성을 이어나갈 수 있는 여행에 목말랐다. 조금은 소소하고 약간은 평화로운 그런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이 이벤트에 포함되는 경북의 작은 지방도시들에 눈길이 갔다. (물론, 부산, 경주와 같은 경북의 큰 도시들도 포함이지만)
내가 최종적으로 고른 '화본'이라는 곳은 군위군에 속하는 곳으로 (군위군은 23년 7월 1일부터 대구광역시로 편입된다고 한다.) KTX와 같은 고속열차는 없는 작은 역이다. 서울에서의 출발역도 집에서 제일 먼 청량리고, 무궁화호 열차로 3시간 30분이 넘는 여정이었다. 제일 충격은 출발이 새벽 6시 50분. (청량리-화본은 하루에 두 번 운행하는데, 다른 한 번은 늦은 저녁 시간이다.)
걱정과 우려가 되었지만, 그 외의 다른 곳들은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보았을 때 내가 원하는 느낌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예약했고, 출발했다.
청량리에서 6시 50분 기차를 타기 위해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나야 했다. 서둘러 준비해서 움직였음에도 기차 출발 5분 전에 도착해서 물 한 통 준비 못하고 기차에 탑승했다. 우리가 탑승한 무궁화호는 매점이나 음료자판기도 없는 기차여서 목이 너무 말랐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른 기상시간으로 제법 피곤했지만 웅성거리고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두 시간을 내리 잔 뒤로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느리게 가는 것만 같은 3시간 30분을 그렇게 버텼다.
시작도 전에 지친듯한 느낌에 걱정을 하며 화본역에서 하차했다. 그리고 화본역이 주는 잔잔한 위로에 피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날씨도 도와줬다. 쨍한 햇살과 푸른 하늘 그리고 그림처럼 드리운 구름. 그 아래에 작고 아담한 간이역 하나가 있었다.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 사는 나에게 조금은 작고 약간은 소소한 이 낯선 간이역의 풍경은 모습 자체로 나에게 위로였다.
나는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서 바쁘게 아등바등 살고 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많은 경험과 나름 스스로의 성장에 대해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밟아간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내가 만든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있다. 혹은, 주변에서 좋지 못한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나에 대한 자신감이 줄어들고, 자기 확신이 낮아지고 자기 확신이 떨어진다. 나의 배경(나이, 학별, 성별 등)을 떠올리며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시작되고, 나와 타인의 타임라인을 늘어놓고 분석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때로는 전공을 잘못 선택했던 것 같고, 때로는 내 값진 경험이 무쓸모 경험이었던 것 같고, 때로는 내 직업군 선택이 잘못된 것 같기도 하다.
배경을 따지고 타임라인을 타인과 맞춰가는 한국 특유의 생각과 발상을 혐오하는 나다. 그래서 해외에 살고 싶었다. 그럼에도 한국교육을 받고 성장했기 때문에 이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다. 부정적인 생각의 시기가 오면 한없이 작아진다.
그런 나에게 화본역의 풍경은 위로고 치유였다. 완벽한 날씨와 그 아래 높은 건물 하나 없는 풍경 때문일 수도 있고, 시간이 많이 지난 옛 모습이지만 그렇기에 더 사랑스러움이 느껴진다는 아이러니 때문일 수도 있다. 다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다.
학창 시절 나는 내 전공을 충분히 즐겼고, 충분히 경험했다. 전공과 다른 분야로의 꿈을 꾸는 것은 힘들었지만 행복했고, 땀과 눈물을 흘리며 뿜어낸 열정 때문에 나는 빛났었다. 해외에서의 삶은 너무나 외롭고 때로는 버겁고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내는 듯했지만 그 경험은 내 삶에서 뺄 수 없는 가장 중심이 되었다. 지금은 내 전공과 다른 분야의 직업을 갖고 있지만, 욕심도 있고 고집도 있다. 나는 썩 괜찮고, 괜찮게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