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콘텐츠
저에게는 영국에서 온 중학생 친구가 있습니다.
이웃집에 사는 그녀는 한국과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데다가 그녀의 동생이 저희 아이들과 동갑이라 자연스레 친해지게 됐지요.
그녀의 엄마는 아이 넷을 둔 슈퍼맘인데 첫째와 둘째는 벌써 성인이 되어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어쩜 넷 다 그렇게 잘 자라는지 제가 늘 옆에서 부러워하며 그녀의 육아 비결을 훔쳐보고 있답니다. (이 이야기는 차차 풀어보겠습니다.)
아부다비는 매주 금요일이 기도하는 날이라 직장과 학교가 모두 열두 시 즈음 끝납니다. 그 친구 하고는 금요일에 학교 끝나고 만나 점심을 먹기도 하고 그녀의 강아지 데이지를 산책시키기도 합니다. 저희의 주제는 그녀와 저 모두 관심이 있는 한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혹은 아이돌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일본 아니메 (애니메이션)를 좋아하는 그녀는 코스프레에 열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녀뿐 아니라 그녀의 가족 모두가 코스프레를 사랑하지요. 핼러윈 데이 때는 다 함께 괴기스러운 분장을 하고 만나서 동네 키즈카페에서 하는 핼러윈 파티에 참여하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코믹콘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중동에서도 코믹콘이 열리는 줄 모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가장 인기 있는 이벤트 중 하나라고 합니다. 3일간의 방문객이 무려 4만 명에 이르고 코믹콘을 보기 위해 인근 나라에서도 비행기를 타고 달려온다고 하니 말입니다. 일본에 살며 아니메 팬이었던 그리고 지금은 K-웹툰의 나름 큰 손 (쿠키 굽굽)인 제가 이 진귀한 이벤트를 놓칠 순 없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일요일에 다녀왔습니다.
영상에는 모두 담아내지 못했지만, Mefcc로 검색하셔서 보시면 중동 덕후들 또한 코스프레에 대한 열정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마블 캐릭터와 일본 아니메 캐릭터들이 가장 인기가 좋아 보였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젊은이들 뿐 아니라 가족단위의 방문객도 많았다는 점입니다. 중동은 더운 기후 때문에 실내 스포츠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단연 게임입니다. 얼마 전 방한 한 빈살만 왕세자 또한 게임광으로 유명하지요. 아부다비의 갤러리아몰이나 야스몰에 게임 관련 샵 (버진 스토어 및 Geekay 스토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오일머니로 인한 경제력이 뒷받침이 되어주니 모바일 기기나 게임 기가 주요 수입물품 중 상위에 늘 포진해 있습니다.
나무가 귀한 나라여서 그런지 아부다비의 학교는 진작부터 패드를 활용한 교육을 학교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는 디지털 인간이면서 아이들만큼은 아날로그로 키우고 싶은 저는 처음에는 학교의 이런 방침이 너무나도 불만족스러웠어요. 아이들은 교과서 대신 1인 1 아이패드를 가지고 있고 숙제를 비롯한 많은 수업을 아이패드로 진행합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학부모들보다 이곳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패드와 게임기를 쥐어주는 나이대가 더 낮다고 느꼈습니다. 그 덕분인지 아이들은 자연스레 게임문화에 익숙하게 되고 게임 산업의 큰 손들이 되는 거지요. 당연히 장단이 있습니다. 어차피 이러한 기기들을 접하고 살아가야 할 아이들이니 조금이라도 빨리 배워 능숙해지고 또한 이를 통해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 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역시 중독이라는 단점 또한 피해나갈 수 없지요.
저는 단점을 케어하는 방법 중 하나가 이런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생각 합니다. 이번 코믹콘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팬아트 부스들이었습니다. 전시장의 1/3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직접그린 삽화부터 굿즈들 까지 다양한 팬아트를 만날 수 있었고 (케이팝 굿즈와 한글 아이템도 있었습니다) 방문객들은 이러한 상품을 사는데 주저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이를 나만의 방식으로 2차 생산하며 또 다른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살아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제 영국 중학생 친구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녀는 용돈을 모아 코스프레 용품들을 구매합니다. 최근에는 미싱기를 사서 직접 의상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지요. 그녀의 부모님은 이를 전적으로 지원해 줍니다. 물론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는 선에서지요. 그런 열정 덕분에 그녀는 학교 대표로 디베이트 대회에 나가는 등 학업에 있어서도 전혀 뒤처지지 않습니다.
이번 코믹콘은 제가 그동안 보아왔던 중동의 모습과는 색달라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두바이에서 열리는 전시회나 아트 페어가 30-40대의 리치하고 우아한 취미생활을 보여주는 장이었다면 코믹콘이야 말로 활기 넘치는 젊은이들의 축제의 현장이었답니다.
아쉬웠던 점은 한국 관련 콘텐츠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중동 진출을 노리고 있는 우리나라 콘텐츠 기업들이 이러한 젊은 덕후들의 이벤트를 교두보 삼아 본격적인 활로를 찾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웹툰 보고 있나. 중동으로 오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