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봐서 그리고 그러려니...^^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와이프가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그런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부러 그런 말을 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난 어렸을 때부터 계획형 인간이었다. 모든 계획해야 심적 안정감이 들었고 계획대로 되어야 편안했다. 하지만 중학교 학업계획이 틀어지면서 나의 심리적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던 거 같다. 난 그때 깨달았다..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 내가 세운 학업계획은 틀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성적이 뒷받침되지 않았을 때는 자다 깰 정도로 위쪽이 아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스스로 능력에 대한 메타인지 및 스트레스 관리가 부족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이후부터는 마음의 휴전선을 나 스스로 정했던 것 같다. 성격이 불같아서 우유부단한 걸 싫어하시던 아버지께 간혹 우유부단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사실 인생이 불확실한 건 기본이다. 내 스스로의 감정은 물론 다른 사람의 감정도 수시로 바뀔 뿐만 아니라 환경도 수시로 바뀌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바뀌는 건 수없이도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확실함을 강조하는 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으나 타의적으로 개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충분히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물론 적응하기 위해 혹은 결정하기 위해 확실해져야 하는 선택은 다른 문제 일 것이다.
와이프는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명확해져야 안정감을 갖는 성격이었고 확실한 답을 얻어야 수긍하는 듯했다. ㅎ 난 수없이 많은 사색, 심리적 연습 등을 통해 내 마음 변동의 임계치를 높여 왔기에, 상황 봐서란 말을 많이 쓴다는 얘기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왜 그런 말을 많이 쓰는지를 설명해 줬다.
인생은 수많은 결정을 해나가야 하는 과정일 정도로 결정이 많아.. 학업, 취업, 이직, 경조사 참여 등등 조직의 수장으로서 결정을 할 수도 있고 개인의 작은 결정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스스로 나의 인생에 대해 단정적으로 혹은 가까운 사람과 개인적인 상황으로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건 불확실한 상황발생시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오빠 그렇게 한다며.. 왜 지금 이러는 거야", "그때랑 지금이랑 상황이 같아?" 물론 이렇게 우리 부부는 싸우지 않지만 감정 변화로 충돌하다 보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럴 때 '상황 봐서'란 말은 내 자신은 물론 상대방에게 마음의 휴전선을 세울 수 있게 해 준다. 서로가 결정해야 하는 무엇인가는 서로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불확실성을 대비할 수 있는... 설사 그 불확실한 상황이 일어났을 때 모두가 예견한 것처럼 그에 맞는 대응을 하는 상황.. 이런 상황이면 내 자신에 대한 조급함, 불확실한 상황에 나면 어쩌하는 불안감 등을 조금은 완화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상황이 자연스러워 질려면 전제는 있다.
서로 상대방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원래 예견되었던 상황이 일어난다면 서로 암묵적으로 선택하려고 했던 선택을 그대로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상대방은 믿음대로 선택할 사람이란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그래도 불확실성에서 내 마음을 지켜준 것은 '그러려니'라는 마음 가짐이다. 다르게 얘기하면 인생이 불확실한 상황의 연속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상황 봐서'란 말이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1차 경계선이자 휴전선이라면 '그러려니'란 말은 불확실한 상황이 실제 일어났을 때, 그런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난 예상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마음에서는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실제 불확실한 상황이 일어나도 상처받지 않고 덜 당황할 수 있는 것이다.
말은 쉽지... 물론 말은 쉽다^^ 하지만 어려워도 휴전선을 세워놓지 않으면 마음이 심란한 전쟁터가 될 수 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을 얘기하면 난 일단 선택 전에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불확실한 상황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내 스스로 다짐한다 '설령 내가 생각한 상황이 일어나도 충분히 이상한 상황이 아니야..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이렇게 다짐을 몇 번 하다 보면 실제 그런 상황이 일어나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나와도 상처를 덜 받고 덜 당황했던 거 같다.
내가 사는 현실은 불확실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그 불확실한 상황에서 원하지 않은 결과가 나왔을 때.. 인정할 수 없게 만드는 환경 등.. 더 나아가서 그 불확실한 환경에 적응 못하는 건 내 탓이라는 1차 시선..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 상태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플랫 하게 지내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하지만 마음의 휴전선은 세울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