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노멀 시대의 문화 패러다임

문화의 본질을 직시하라.

by 김태완

‘문화’라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축적된 삶과 생각이 묻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각 나라의 문화에는 그 나라의 특성이 묻어나고, 각 지역의 문화는 그 지역의 특성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이나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기업이나 조직도 그동안 수행해 온 일하는 방식이나 구성원 등의 성향에 따라 기업이나 조직 고유의 특성을 기반으로 조직문화가 형성되어왔다. 그리고 조직문화는 하나의 강력한 경쟁력으로 자리매김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문화’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크고 작든 간에 형성된 공동체 속에 형성된 암묵적인 공감이다. 이러한 문화가 ‘우리’라는 끈끈한 유대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전통적인 ‘문화’의 개념의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뉴노멀 관점에서 ‘문화’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문화’는 아날로그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문화’는 감성과 정서를 자극하며, 그것으로부터 휴식을 받기도 하며, 영감을 얻기도 한다. 그래서 ‘문화’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뗄 수 없는 삶의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조직 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하는 방식은 ‘문화’가 아니다. 그것은 시스템이다. 조직에서의 문화는 조직 구성원들이 공감하고 있고, 거기서 일에 대한 자긍심을 얻는 동시에 창의성을 얻을 수 있는 분위기이다. 조직문화 역시 아날로그적 감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아날로그 차원의 ‘문화’들 역시 디지털의 파도에 그 차별성과 특성을 점차로 잃어가고 있다. 문학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던 경험은 증강현실, 가상현실의 디지털 기술이 결합하여 진화된 ‘메타버스(Metaverse)’라는 우리가 상상 속으로 생각하던 세상에 대해서 이를 체험화하게 만들 것이다. 인공지능은 현재의 유명 가수뿐 아니라 이미 세상을 떠난 유명 가수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모방하여 노래를 부르고 있으며, 인공지능이 창조한 가상의 인물이 광고나 뮤직비디오 등에 출연하여 실존하는 연예인들보다 더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글을 통해 감성을 공유하고자 하는 작가들보다 유튜브의 크리에이터로서 자신만의 공감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이나 기관 등과 같이 특정 목적과 목표 달성을 위해 모인 조직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조직문화는 조직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깨닫고, 이를 통해 일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면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암묵적으로 형성된 기업의 분위기와 여건을 의미한다. 즉 구성원들의 정서와 감성에 비중을 두고 있는 아날로그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 내 MZ세대 구성원의 증가와 팬데믹으로 인한 언택트 기반의 업무환경은 디지털 기술과 연계되어 기업의 문화를 점진적으로 바꿔가고 있다. 과거의 기업 문화는 소통과 협력이 기반이 되었다고 하면 현재의 기업 문화는 연결과 공유가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소통과 협력은 주로 구성원의 정서적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졌다고 하면 연결과 공유는 구성원의 논리적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소통과 협력은 대면과 아날로그적 접근법에 비중을 두고 있다고 하면 연결과 공유는 디지털 차원의 접근법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기업 문화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본질에 대한 변화에 대한 우려도 우리가 고민해 볼 사안임에 틀림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 시대에 있어서 인공지능, 기계로 대체하기 어려운 직업에 대해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으나, 공통적인 내용은 바로 사람들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은 인공지능이나 기계로 대체하기 불가능하다고 한다. 세무사, 법률가 등은 직업 대체 확률이 0.98인데 반하여 사람들의 아날로그 감성에 기반한 직업(안무가, 작가, 화가 등)은 직업 대체 확률이 0.004 이하라고 한다. 문화는 사람들의 감성적 교감이며, 공감이다. 문화를 굳이 경제적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문화’는 ‘생명 경제’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축이다. ‘생명 경제’는 이어령 교수가 이미 2000년대 초반에 기계화 문명이 발전될수록 사람들의 생명을 위한 경제 시스템과 인프라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세계적 경제학자는 ‘자크 아탈리’ 교수는 4차 산업혁명과 팬데믹이 맞물리면서 ‘생명 경제’는 이제 하나의 주장이 아닌 인류의 삶에 대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으며, 현실화 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사람은 좌뇌와 우뇌가 있다. 좌뇌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에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우뇌는 감성적이고 정서적 관점에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삶의 균형을 위해 좌뇌와 우뇌에 각각의 역할에 적합한 정보와 신호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학문이 생겨나고 문화가 생겨난 이유이다. 현재의 대내외적 여건은 좌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우리에게 제공되는 대부분의 정보와 신호는 대부분 좌뇌만을 자극하는 것들로 차고 넘치고 있다. 하물며 그동안 우리에게 우뇌를 자극해 주었던 정보와 신호들 마저 좌뇌를 자극하는 것들로 변모되어 제공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어떠한 현상이 일어날까? 결국 사람이 기계와 인공지능에 비해 나을 것이 없는 결국 그것들에 의하여 종속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많은 디지털 기술 전문가들과 미래학자들은 인간의 감성적인 부분에 대한 디지털 기술의 접근을 합리화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음악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충분히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준다고 한다. 그리고 개인의 성향과 기호를 이야기하면 그 부분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제공해주겠다고 한다.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가 음악을 듣고, 그림을 감상하며, 소설을 읽은 이유는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 담긴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피아노 소나타에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이야기가 있고, 고흐와 피카소의 생각과 담겨 있는 그림에서 생각에 잠겨보고, 도스토옙스키와 헤밍웨이의 글에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스토리가 우리의 감성적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다. 이것은 인공지능이나 기계가 채워줄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영원히 채우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문화’에 대해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부분이다. 단지 오감을 만족시키는 감각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문화’가 아니라 우리의 정서적, 감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아날로그적 측면의 ‘문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의 MZ세대들이 최근 LP판에 열광하고 있으며, 오프라인 서점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으며, 인터넷 쇼핑몰보다 오프라인 쇼핑몰로 몰리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 게임이 아니라 아날로그 보드게임에 높은 호응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뉴욕 타임스의 문화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색슨의 저서인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정서적, 감성적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이를 해소하려 한다.”라고 언급했다. 결국 사람들은 아날로그적 감정과 정서의 충족이 살아가면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편리성 등에 초점을 맞추어 강제적으로 사람들의 본능을 전환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뉴노멀 시대에 변해야 할 것은 변해야겠지만 변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문화’의 본질이다. 기술이 ‘문화’의 본질까지 침범하는 것은 사람들의 삶의 본능적 욕구를 강제로 빼앗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디지털 기술이 대부분의 영역에서 사람의 끊임없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편의성을 제공해주고 있지만, 일부 영역에서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야 할 부분도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함께 공감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진정 편안하게 쉼을 얻고, 생각하며, 음악이나 그림에 담겨 있는 스토리를 음미하면서 사람의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키킬 수 있는 문화의 본질은 뉴노멀이 시대인 지금뿐 아니라 앞으로도 더 다른 차원의 세상인 넥스트 노멀의 시대에 이르러서도 영원히 지켜야 할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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