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당신의 회사의 미래는 보장되어 있는가?

위기는 가장 약한 고리에서 시작된다.

by 김태완

1. 무너지는 제국들의 공통점

겉으로 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기업이 있다. 매 분기 역대 최고의 매출을 경신하고, 주식 차트는 우상향을 그리며, 화려한 사옥은 도심의 랜드마크로 위용을 뽐내고 있다. 재무제표라는 성적표만 보면 이 회사는 의심할 여지없는 '최고'이다. 하지만 그 견고해 보이던 성벽이 무너지는 건, 거대한 쓰나미 때문이 아니라, 아주 작은 균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가장 약한 연결고리 하나가 끊어지는 순간으로부터, 붕괴는 시작된다.

과거의 기업은 단순히 '돈(이익)'을 잘 벌면 좋은 회사로 인식되었다.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목표였고, 이를 위해서라면 직원의 희생은 열정으로 포장되고, 협력사의 고통은 원가 절감이라는 성과로 둔갑했으며, 환경 파괴는 성장의 불가피한 부산물로 여겼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아니, 생존의 방정식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다.

오늘날 우리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내고도 한순간에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기업들을 심심찮게 목격하고 있다. 직장 내 갑질이나 불공정한 보상 체계가 익명 커뮤니티를 통해 폭로되면서 핵심 인재들이 이탈하며, 협력사에게 가한 '갑질'은 불매 운동의 불씨가 되어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다.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오명은 투자자들의 자금줄을 끊어버림과 동시에 고객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된다.

이제 직원이 등을 돌리고, 고객이 외면하며, 지역사회가 거부하는 기업은 아무리 금고에 현금이 쌓여 있어도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이것은 윤리 교과서에 나오는 도덕적인 훈계가 아니라 냉혹한 비즈니스 현장의 '생존(Survival)' 문제이다.


2. 회사의 주인이 바뀌었다: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현시대는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가 저물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가 부상하고 있는 거대한 전환의 시기이다. 회사의 주인이 주주 한 그룹에서 직원, 고객, 파트너, 지역사회, 국가, 그리고 미래 세대까지 확장된 것이다.

이 글, ‘좋은 기업을 위한 80가지 조건’은 바로 이 변화된 세상에서 기업이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여덟 영역의 이해관계자의 관점별로 “좋은 기업의 조건”을 다룬다. 우리는 복잡한 경영 이론 대신, 이들 여덟 영역의 핵심 이해관계자들의 관점을 통해 기업이 지향해야 할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한다. 그들의 시선은 날카롭고 냉정하다. 그들은 더 이상 기업이 내놓는 화려한 광고, 언론에 나와 있는 사회 기여 관련 기사 그리고 그럴싸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더 이상 속지 않는다. 그들은 묻고 있다. "당신들은 정말로 우리가 좋아하는 기업의 조건을 알고 있습니까? “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가장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답을 찾기 위한 가이드이다. 추상적인 '지속 가능 경영'이나 'ESG'라는 단어 뒤에 숨지 않고, 현장에서 이해관계자별로 ”좋은 기업의 조건“을 각 10가지씩, 총 80가지의 조건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제시할 것이다.


3. 회사의 운명을 바꾸는 여덟 영역의 이해관계자의 시선

우리가 마주해야 할 여덟 영역의 이해관계자의 시선은 크게 내부(People), 비즈니스(Business), 사회(Reputation), 미래(Legacy)라는 네 가지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여긴다면, 기업의 지속 가능성은 멀어질 것이다.

첫 번째, 내부의 시선: 사람이 머물고 싶은 회사 (People)

가장 먼저 마주해야 할 시선은 바로 '직원'이다. "내부 고객(직원)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외부 고객(시장)도 만족시킬 수 없다"는 말은 진리이다. 직원들은 묻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합리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가? “, "이곳에서 나는 성장하고 존중받는가?". 과거에는 월급만 제때 주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합리적인 성과 공유 시스템은 기본이고, 실패를 용인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 보장되어야 한다. 수평적인 소통과 솔직한 피드백이 오가는 회사의 문화 속에서, 직원들은 비로소 회사의 성장을 자신의 성장으로 받아들인다.

여기에 더해 '구직자'들의 시선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묻고 있다. "내 인생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우수한 인재들은 더 이상 단순히 연봉 높은 회사를 찾지 않는다. 그들은 명확하고 가슴 뛰는 미션이 있는지, 경영진이 존경받는 인물인지, 투명하고 존중받는 채용 프로세스를 갖췄는지, 그리고 자신이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인지를 살펴보고 있다. 채용 브랜딩이 곧 기업의 경쟁력을 입증하는 시대가 되었다.

두 번째, 비즈니스의 시선: 신뢰가 자본이 되는 회사 (Business)

기업은 결코 혼자서 성장할 수 없다. 자본을 대는 투자자와 가치를 함께 만드는 파트너가 있어야 가능하다. "혼자 빨리 가는 것보다, 믿을 수 있는 동료와 멀리 가는 것이 생존법"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묻고 있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있는가?". 그들은 단기적인 수익 급등보다는 지속적인 안정성을 선호하며, 팬데믹이나 공급망 쇼크 같은 외부 충격에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원하고 있다. 투명한 지배구조(Governance)와 미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확신 없이는 그들은 그들의 주머니를 열지 않으려 한다.

'파트너(협력사)'들의 질문은 더욱 본질적이다. "나의 등을 맡길 수 있는 든든한 동료인가?". 단순한 모기업과 하청의 관계가 아니라, 기술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의 파트너로서 자신들을 여기고 있는 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납품 단가 후려치기가 아닌, 공정한 계약과 제때 지급되는 대금 결제 시스템 그리고 파트너의 애로 사항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지원하는 관계 위에서만 진정한 동반 성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세 번째, 사회의 시선: 평판이 브랜드가 되는 회사 (Reputation)

기업은 사회라는 토양 위에 뿌리내리고 있다. "평판은 기업이 사회에서 비즈니스를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면허증"이다. '국민(소비자)'들은 묻고 있다. "책임질 줄 아는 정직한 기업인가?". 제품의 안전과 품질은 타협할 수 없는 절대 조건이다. 더 나아가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디지털 윤리를 지키는지, 위기 상황에서 진정성 있게 사과하고 책임지는지를 주시하고 있다.

또한 기업이 위치한 '지역사회'의 시선의 중요성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해지고 있다. 지역 사회의 "우리 이웃으로서 환영받을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 인재를 채용하고, 지역의 환경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젠트리피케이션(Gentirfication)을 유발하지 않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지역 사회에서 '우리 회사'라고 불리지 못하는 기업은 결국 가장 확실한 우군을 확보하지 못하고 고립되는 상황을 겪게 된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낙후되었던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중상류층이 유입됨으로 인해 기존의 주민들이 피해를 입고 밀려나는 현상

네 번째, 미래의 시선: 더 큰 유산을 남기는 회사 (Legacy)

마지막으로, 위대한 기업은 현재를 넘어 30년, 50년, 100년 이후의 미래를 지향한다. 이를 위해서는 "오늘의 이익을 위해 내일의 가능성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경영 철학이 필요하다. '국가'는 묻고 있다.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고 난제를 함께 풀기 위해 노력하는 파트너인가?". 성실한 납세와 준법 경영은 기본이며, 이제 기업은 저출산, 고령화, 청년 실업과 같은 국가적 난제 해결에 동참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민간 외교관의 역할까지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두려워해야 할 시선, 바로 '미래 세대'이다. 그들은 묻고 있다. "다음 세대에게 떳떳한 하게 물려줄 수 있는 회사인가?". 그들은 탄소 중립(Net-Zero)을 넘어, 훼손된 자연을 복원하는 재생적(Regenerative) 경영을 요구하고 있으며, 기술로 인해 인간이 대체되는 환경 속에서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는 '기술 인본주의'를 실천하고, 100년 후에도 존경받을 수 있는 가치를 남기는 것에 대한 약속을 원하고 있다. 기업은 그 약속에 대한 의지를 가시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4. 지속 가능성의 구체화: 모호함을 넘어 행동으로

많은 경영서들이 '착한 기업' 나아가 ’위대한 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How)'에 대해서는 모호하거나 이상정인 개념만을 나열하곤 한다. 이 글에서는 그 지점에서 다음과 같은 차별점을 두고자 한다.

이 책에서는 8대 관점별로 기업이 반드시 갖춰야 할 '10가지 조건'을 명확히 제시한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물음에 구체적으로 답을 찾고자 한다.

1) 직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게 하려면 어떤 시스템이 필요한가?

2) 우수한 인재들이 우리 회사를 선호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3) 투자자들에게 단순한 재무 수치 이상의 신뢰를 주려면 무엇을 공개해야 하는가?

4) 파트너사와 갑질 없는 상생을 하려면 계약서에 어떤 조항이 들어가야 하는가?

5) 국민(소비자)들에게 좋은 평판을 유지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6) 지역 주민들과 갈등 없이 공존하려면 사전에 어떤 소통 채널을 열어야 하는가?

7) 국가의 파트너로서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

8) 미래 세대에게 좋은 회사로 물려주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글에서는 각 조건별로 체크 리스트를 제시할 것이다. 이 글에 담긴 80가지의 체크리스트는 물론 사례들은 경영자와 실무자들이 막막함을 느끼던 ’ 지속가능경영'에 대해 손에 잡히는 가이드 역할을 제시해 줄 것이다. 이것은 트렌드를 쫓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 '존중', '상생'이라는 경영의 불변하는 본질에 대해 현대적인 언어와 도구로 재해석한 것이다.

5. 좋은 기업이 결국 승리한다는 믿음

어쩌면 당신은 반문할지도 모른다. "당장 먹고살기도 바쁜데, 이 모든 이해관계자를 어떻게 다 챙깁니까?" 옳은 이야기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일수록 이 원칙을 지키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위기는 가장 약한 곳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직원을 소홀히 하면 내부에 균열이 생기고, 파트너를 쥐어짜면 공급망이 끊기며, 지역사회를 무시하면 사업장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 미래 세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기업의 미래는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이 8가지 시선을 균형 있게 만족시키는 기업은 어떤 위기가 닥쳐도 무너지지 않는 '단단함'을 갖추게 된다. 직원들은 회사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고, 파트너는 고통을 분담하며, 소비자는 그 기업을 지켜주기 위해 지갑을 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속 가능한 생존(Sustainable Survival)'의 핵심이다.

이 글은 대한민국 기업들이 지향해야 할 '일하기 좋고, 믿을 수 있으며, 존경받는 기업'의 새로운 표준을 제안함을 목적으로 한다. CEO와 경영진에게는 회사의 체질을 바꿀 전략적 나침반이, 실무 책임자에게는 당장 적용 가능한 업무 매뉴얼이 되길 바란다. 또한 진짜 좋은 회사를 찾고 싶은 취업 준비생과, 재무제표 너머의 가치를 보는 현명한 투자자들에게도 유용한 가이드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한다.

이제, 당신의 회사를 돌아보자.

당신의 회사는 직원에게, 파트너에게, 국민(소비자)과 지역사회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나아가 미래 세대에게 어떤 모습으로 인지되길 원하고 있는가? 8가지 시선이 던지는 질문 앞에 당당히 답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 답을 찾는 여정을 지금 시작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