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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완 Jul 14. 2019

스킨인더게임

선택과 책임의 불균형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경고 / 나심탈레브

스킨인더게임” / 나심 탈레브 / 비즈니스 북스

선택과 책임의 불균형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경고


‘’Skin In the Game(스킨인더게임)”은 경제적인 영역에 직접 관여하여 그 영향을 받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케임브리지 사전) 이 용어의 기원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조사를 했지만 정확한 기원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인 ‘나심 탈레브’는 스킨인더게임을 기존의 어원에 근거하여 “자신이 책임을 안고 현실(문제)에 참여하라.”라고 좀 더 현실감이 있게 정의하였다. 그리고 저자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책임과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현실 속에서 사회, 경제, 정치에 이르는 전 영역에 걸쳐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기준을 만들고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나서는 사람들은 과연 이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임하고 있는가? 책임감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더욱 복잡하고 힘들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책임감에서 자유로운 소수의 사람들이 이 세상을 주도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스킨인더게임’은 사람들의 책임감을 나아가 행동과 책임의 균형이 바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간섭주의들로 인해 세상이 혼란스러워진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현상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상을 잘 설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사람들이 주목을 받으며, 중용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이 제안하는 정책이나 해결책에 의해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 만약 우리가 제안한 사실에 따라 사람들이 행동을 취한다면 그 행동이 나온 결과에 대해 우리는 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서는 안 된다.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사무실에 내린 판단에 의해 전 세계 곳곳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는가? 그러나 누구 한 명도 이러한 상황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자신과는 직접적인 관련성은 많지 않지만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간섭 주의자들로 인해 오히려 기존의 질서가 파괴되는 현상이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간섭 주의자들이 지켜야 할 가장 큰 원칙은 자신들의 간섭으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되지 않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간섭 주의자들은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되지 않는 한 타인의 피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간섭 주의자들은 인도주의, 인본주의를 가장 크게 외치고 있는 집단이지만 가장 이와는 거리가 먼 행동을 서슴지 않고 시행하며, 이를 합리화하고 있다. 


안정성이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관료주의는 지도층이 자신의 책임에서 자유로워질수록 심화된다. 예로부터 절대군주의 시대에는 관료주의가 만연해왔다. 현시대에도 독재권력 하의 국가는 관료주의가 권력을 이루고 있는 핵심 축이며, 기업의 경우에도 경영층이 절대권력을 가지고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수록 기업의 관리체계는 자연스럽게 심각한 관료주의적 시스템에 지배를 받게 된다. 관료주의적 시스템의 특징은 복잡한 제도와 규제를 설정함으로 모든 것을 지나지체 안정된 구조로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안정된 구조의 특징은 현재의 기득권층이 가지고 있는 모든 권한과 권력을 유지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의 저서인 “안티프레질”에서 사람과 조직은 예기치 못한 사건과 변화 그리고 충격에서 손실이 아닌 이익을 얻어내는 특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안정적 구조기반 하의 시스템의 예기치 못한 충격에 대한 대응에는 매우 취약하다. 이는 지나친 안정성은 경직성을 유발하게 때문이며, 이는 예기치 못한 충격을 흡수할 수 없는 구조적 속성이 이미 조직의 DNA화로 내재되어있기 때문이다. 


시스템 학습이 필요하다. 

시스템 학습이란 중대한 실수를 반복적으로 범하는 사람들은 시스템의 본질적인 특성에 따라 소멸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만 남게 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음주운전을 빈번하게 하는 사람은 운전면허를 취소하므로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위험을 줄이고 있다. 범죄자들은 사회와 격리하여 일반인들이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 학습이다. 이러한 시스템 학습 체계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한다. 이러한 시스템 학습에 반대하는 계층은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스템 학습체계를 설계하는 사람들은 누가 되어야 하는가? 자신의 행동과 판단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들이야 한다. 행동과 판단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복잡한 것을 선호한다 복잡한 것은 예외조항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사회 그리고 기업에 이르기까지 시스템 학습체계는 조직의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고 상호 간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매우 필요한 요소이다. 단 이를 설계하는 사람이 누군가 인지에 따라 이는 일부 계층의 은신처를 만들어주는 부작용이 발생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아무런 위험도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이 정책을 결정하고 시스템을 설계하게 된다면 이로 인해 발생되는 모든 피해는 사회에서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시스템 학습 체계는 더 이상 가동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한 조건 _ 행동과 책임의 균형성 확보

현재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어 놓았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유지되지 못한다면, 즉 앞으로 생존할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생존을 보장하는 행동만이 의미가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 특히 정치가, 경영자, 학자들은 그들의 주장과 이론, 그리고 업적에 대해 대중이나 전문가들에게 평가받고 싶어 한다. 진정한 평가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하는 것이다. 시간에게 평가를 맡길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사람에게 평가를 받기 위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행동과 책임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갖지 못한다. 그들의 평가가 자신의 위상을 결정하고 현재의 기득권을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기계와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판단과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태도이다. 자신의 판단과 행동에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가장 먼저 기계로 대체해도 상관이 없는 영역이 될 것이다. 행동과 책임의 균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고자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은 자신에게 미칠 위험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역사에서 영웅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위험성을 감수하고 세상에 뛰어든 사람이다. 그들은 그들의 판단과 행동의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지 않았다. 위험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를 즐기는 사람은 없다. 수많은 간섭주의들이 무책임한 판단과 행동을 통해 세상에서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지만 세상은 그들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 덕분에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은 결코 복잡한 해결책을 만들지 않는다. 문제와 직접적으로 대면해 있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의 해법을 복잡하게 만든다. 그리고 거기서 스스로 우월성을 과시한다. 이것이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 문제를 다루는 차이이다. 직접 수행하지 않고 상상만 하는 사람은 절대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그리고 그 수행에는 반드시 책임의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우리가 거짓으로 나타낼 수 없는 유일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나심 탈레브의 “스킨인더게임”에서 주장하고 있는 행동과 책임의 균형성은 생소한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어려서부터 배워온 황금률이자 도덕률이다. 그러나 저자는 현시대의 수많은 문제들은 행동과 책임의 불균형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힘 있는 자일수록 그들의 판단과 행동에 대해 자유롭고 그것들로 인해 발생되는 모든 피해는 힘없는 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고 한다. 부와 권력이 점점 더 소수에게 집중되고 있는 현시대의 구조적 특징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 행동과 책임의 균형을 위해서는 위험성을 감수해야 하기 위한 태도가 필요하며, 이 태도를 갖추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거짓이 없는 진정한 가치이기 때문이라는 나심 탈레브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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