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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카피 Nov 26. 2019

08 신입 카피라이터가 되는 법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지만, 그게 취업시장이라면 어떨까? 더군다나, 신입 채용 0명에 가까운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를 지망한다면 말이다. 1년에 단 한 번, 채용인원 1-2명인 종합대행사 신입 공채 카피라이터로 입사한 나는 엄청난 학벌을 자랑하지도, 죄와벌이니 도스토예프스키니 그런 풍부한 교오양을 갖춘 문학소녀도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선배들에게 늘 들었던 건 "넌 참 쌧복(인복, 시기운 등 각종 운수를 총칭하는 옛날 비속어)이 좋아~"란 말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 경험상 쌧복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잠시 “교과서 중심으로 예습 복습을 철저히 했어요”라는 수능 1등에게 빙의하자면, “선택과 집중을 했습니다.”라고 하겠다.


 우선 나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 이 일이 나와 잘 맞는지, 내가 선택해도 되는 직업인지 알아보기 위해 광고홍보학과도 들어가보고, (막상 광고회사에 간 선배는 아주 드물었다) 광고회사에서 운영하는 대외활동에도 참가했었다. (그리고 내 인생 최고치의 음주량을 갱신했다.) 


 ‘선택’의 과정을 겪는다는 것은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당연하게도 내 구직에 후회가 없을지 미리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그 과정들이 이력서 위에서 나의 흥미를 대변해준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광고에 흥미를 가졌던 저는~”이라는 건 입이 아닌 이력서가 말해주는 것이다. 부가적인 장점들도 많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무엇에 흥미를 갖는지 (자기소개서에 무엇을 쓰면 좋을지), 혹은 광고회사를 지망하는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사는지 (내가 지금 뭘 하면 좋을지)를 알 수 있으며, 운이 좋으면 관심사가 비슷한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친구와 광고회사를 욕하는 글을 쓰는 중이다!)


 본격적으로 취업시장에 뛰어들면, ‘집중’의 과정이 필요하다. 열 군데를 찔러보는 게 아니라, 될만한 곳을 잘 골라, 온 힘으로 찍어보는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찍어볼 만한 하나의 점, 나에겐 그게 종합대행사 인턴의 기회였다.


 공채로 전환 가능한 4개월짜리 인턴이었는데, 어렵게 어렵게 인적성과 면접을 통과하여 얻은 천금같은 기회였다. 아, 물론 인턴 면접일지라도, 모든 면접엔 포트폴리오를 들고 가는 게 좋다. 신입인데 어떻게 포트폴리오가 있냐고? 그냥 그동안 쓴 글, 하다못해 SNS에 끄적인 갬성글이라도 무조건 가져가야 한다. 다른 경쟁자들은 독립출판한 책을 가져오기도 한다.)


 꽤 많은 경쟁률을 뚫고 얻어낸 자리였지만 4개월 후엔 50%의 전환률로 옆사람과 나, 둘 중 하나는 떨어지게 되어있었다. 다른 업종에서야 “4개월동안 취업준비도 못하게 해놓고 1/2이라니! 비인간적이야!” 라고 하겠지만 광고회사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치외상식권. 1/2이라는 전환률은 정말 감지덕지한 숫자였다.


 내가 가장 ‘집중’한 시간은 그 4개월이었다. 여기가 바로 승부처라고 생각했고, 죽어라 일했다. 매일 새벽까지 남아 레퍼런스를 찾았고, 아이디어는 기본 H안까지 가져갔다. (무려 8가지..!) 평일엔 내일 출근이 없는듯 일했고, 주말엔 내일의 회의를 위해 출근했다. 물론 그것이 팀의 '업무'에 얼마나 기여했을지는 미지수지만. 인턴 마지막쯤엔 최종 경쟁 PT를 했고, 성적은 좋지 않았던 것 같지만 (나중에 들으니 밑에서 3등이었다고) 나는 당당히 취업했다.


 우리팀 팀장님께서 매우 좋은 평가를 주셨다고 했다.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라 “얘가 안 되면 도대체 누가 되어야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상무님께 찾아가 말하셨다 한다. 고작 신입사원 하나 뽑는데 자기 일처럼 열과 성을 다하는 좋은 팀장님을 만난 걸 쌧복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내가 팀에서 죽어라 노력했던 4개월이 그 쌧복을 만들어낸 게 아닐까?


 광고회사 제작팀에서 최종 임원면접이란 형식에 가깝다. 대부분 인턴을 통해 실무자들에게 검증된 후보자들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임원면접은 아무일도 없이 넘어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날, 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터넷에서만 보던 “아버님은 잘 지내시고?”를 직접 목격한 것이다. 4개월동안 동고동락한 내 곁의 전우가 낙하산이라니. 프로듀스 101이 조작되었다는 걸 알게 된 팬들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싶다. 사업구조상 다른 회사의 ‘을’일 수밖에 없는 광고회사인지라, 은근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광고주 이사의 아들부터 광고주 상무의 딸까지. 가뜩이나 없는 자리에 숟가락을 올리겠지만 어쩌겠는가. 그냥 애초에 없는 셈 치고, 우리는 우리의 페이스대로 나무질을 할 수밖에.


 여기까지가 내가 광고회사에 입사하게 된 이야기이다. 쓰다보니 자랑같지만, 실은 자랑할만한 일인 것 같긴 하다. 적게 쳐도 300명의 지원자 중 1명이 되었다는 건, ‘쌧복’이란 단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을 테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진짜 저렇게까지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시기였기도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온 우주의 도움을 바라며 이 외진 곳에 당도한 모험가여. 그런 당신을 위해 이 말을 남기고 싶다. 오늘의 나무질에 집중하자. 그리고, 힘을 모아 격파할 내일의 한 점을 기다리자.


Written by. 前 카피라이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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