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일을 끝없이 늘리는가
우리는 종종 이런 경험을 합니다.
“이 보고서는 2시간이면 끝낼 수 있을 텐데… 왜 하루 종일 붙잡고 있었지?”
혹은, “회의는 30분이면 충분했는데, 왜 2시간 동안 계속 잡담과 사소한 논의만 이어졌을까?”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 바로 파킨슨 법칙(Parkinson’s Law)입니다.
1955년,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공무원이었던 시릴 노스럽 파킨슨은 《이코노미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이 법칙을 처음 소개했습니다. 핵심은 단순합니다.
“일은 그것을 위해 할당된 시간을 다 채우도록 늘어난다.”
즉, 어떤 일을 하는 데 실제 필요한 시간보다 여유 있게 시간을 주면, 사람은 그 시간에 맞춰 일을 늘리거나 질질 끄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보고서 작성에 2시간이 걸리더라도, 마감이 일주일 뒤라면 사람은 일주일 내내 조금씩 수정하고 고민하며 시간을 다 써버립니다.
이 법칙은 일상과 조직에서 흔히 발견됩니다.
보고서 작성: 짧은 데드라인일 때는 필요한 정보만 빠르게 모으고 핵심만 정리하지만, 시간이 많으면 불필요한 자료까지 찾아내느라 오히려 효율이 떨어집니다.
회의: 안건은 30분이면 끝날 수 있는데, 회의 시간이 2시간 배정되어 있으면 참가자들은 사소한 이야기까지 늘어놓으며 시간을 다 채웁니다.
프로젝트 관리: 실제 개발에 필요한 기간보다 여유를 넉넉히 주면, 그만큼 추가 기능이나 불필요한 검토가 붙어 전체 기간이 늘어나 버립니다.
결국 파킨슨 법칙은 “시간이 많다고 효율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라는 현실을 드러냅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사람은 주어진 시간 속에서 안전함과 완벽함을 추구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시간이 많으면 “더 좋은 답이 있지 않을까?”라는 불안 때문에 불필요한 탐색을 이어갑니다. 반대로 시간이 촉박하면 오히려 집중력이 높아지고, 불필요한 고민 없이 본질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조직 차원에서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긴 일정은 책임 회피와 변명의 여지를 늘려주고, 관료적 절차는 스스로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 조직 전체가 비대해지기 때문입니다.
파킨슨은 이를 두고 “조직은 실제 업무량과 상관없이 팽창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파킨슨 법칙의 확장 개념 중 하나는 사소함의 법칙(Bikeshedding)입니다.
사람들은 복잡하고 중요한 문제는 외면한 채,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사소한 문제에만 지나치게 몰두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수십억짜리 예산을 다루는 회의에서는 큰 그림은 대충 넘어가고, 정수기 교체나 휴게실 디자인 같은 작은 안건에만 몇 시간을 소비하는 일이 생깁니다.
중요한 것보다는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에 집착하는 인간적 경향을 드러내는 사례죠.
파킨슨 법칙을 단순한 흥미로운 관찰로만 끝내지 않고, 업무 관리의 원칙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타임박싱(Timeboxing): 업무를 할당된 시간 안에 끝내도록 짧게 쪼개어 관리합니다.
짧은 마감 기한 설정: 의도적으로 긴 마감 대신 짧은 데드라인을 두어 집중력을 높입니다.
회의 시간 제한: 회의는 30분, 1시간 등 명확한 제한을 두고 안건 중심으로만 진행합니다.
우선순위 명확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해, 시간과 에너지를 배분합니다.
이런 전략들은 “일이 스스로 팽창하는 현상”을 의식적으로 제어하는 방법이 됩니다.
파킨슨 법칙은 70년 전 제시된 개념이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주어진 시간 안에 충분히 괜찮은 결론을 내는 것”이 완벽을 추구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파킨슨 법칙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시간은 통제하지 않으면 당신의 일을 집어삼킨다.”
한정된 시간과 집중 속에서, 오히려 더 나은 성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