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곤충과 동물을 가까이 두지 못하는가

by 두드림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


나는 곤충을 집에서 대량으로 키우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작은 곤충이 바글거리는 모습은 언제나 징그럽고 불결하게 다가온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취미로 즐기고, 애벌레가 자라는 과정을 신비롭게 지켜보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 곤충은 불편과 거부감을 상징한다. 특히 그 수가 많아질수록 그 불쾌함은 몇 배로 커진다.


어쩌면 이해할 수 있게되었을 수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어린 시절부터 동물과 멀리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아버지는 집에서 새도 키우고, 오리도 길렀다. 개는 물론이고, 어느 날은 공작을 데려오시기도 했다. 마당의 연못에는 물고기를 넣어 기르셨고, 심지어 사슴을 데려오신 적도 있었다. 서울 변두리의 집이었지만, 아버지의 고향인 문경의 기운이 그대로 스며든 듯했다. 그렇게 나는 다양한 동물들과 늘 가까이 지냈다.


그 자체가 싫지는 않았다. 그러나 냄새와 털, 배설물은 언제나 나를 불편하게 했다. 동물이 주는 생명력과 활력은 좋았지만, 그 곁에 따라붙는 불결함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아버지가 동물과 자연을 가까이하려 애쓰실수록, 나는 오히려 청결과 정돈을 더 강하게 갈망하게 되었다.


그리고 트라우마들 ...


거기에 더해, 어린 시절의 충격적인 경험들은 내 감각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동네 뒷산에서 어른들이 개를 잡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나는 개고기를 아예 손도 대지 못한다. 초등학교 3~4학년 무렵에는 돼지를 망치와 도끼로 도축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날 이후로 20대가 될 때까지 돼지고기를 먹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LPG 가스 폭발로 사람들이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장면을 본 뒤로는 한동안 고기 자체가 목에 걸렸다.


그 결과 내 식성은 남들과 달랐다. 달걀조차 비린내가 나면 못 먹었고, 돼지고기는 불가능했다. 민물고기도 비린내 때문에 손을 대지 않았고, 닭고기 역시 통닭 같은 형태만 겨우 먹었다. 소고기도 구운 것만 가까스로 삼켰다. 식탁은 나에게 늘 긴장과 불편이 공존하는 자리였다.


성인이 된 뒤에야 조금씩 달라졌다. 20대가 되면서 돼지고기를 억지로라도 먹다 보니 언젠가 삼킬 수 있게 되었고, 삶은 소고기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삼계탕도 그 즈음에 가능해졌다. 40대가 지나면서는 오리고기 같은 음식도 식탁에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스러운 확장이 아니라, 사회생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적응한 결과였다. 지금도 나는 고기를 즐겨 먹는 편은 아니다. 여전히 비린내나 질감에 순간적으로 거부감이 올라올 때면 젓가락이 멈춘다. 최근에는 유튜브에서 도축 영상을 보다 보니, 다시금 고기를 먹는 것이 싫어지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아버지와 함께 낚시터를 자주 다녔던 기억도 있다. 낚시라는 행위 자체는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 주변은 불편했다. 텐트 주변의 지저분한 땅, 여기저기 널린 물고기 사체, 미끼로 쓰이는 지렁이, 그리고 끓여 먹던 매운탕의 비린내. 나는 그것들이 싫었다.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로는 낚시터를 따로 찾아가 본 적이 없다.


나는 코가 민감하다. 공기가 조금만 달라져도, 먼지가 살짝만 떠 있어도 내 코가 먼저 반응한다. 공기청정기 센서보다 내 콧물이 더 빠르다. 그런 나에게 동물의 털은 치명적이다. 눈에 잘 보이지 않아도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한 털과 냄새는 금세 내 몸을 불편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에게는 대수롭지 않을 일도 내게는 큰 문제로 다가온다. 그래서 반려동물의 털과 냄새는 더욱 견디기 어렵다.


결국 동경은 항상 불편과 동행했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나는 자연을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불편해한다. 산과 강, 숲과 바다의 풍경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러나 캠핑이나 글램핑을 즐기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습기, 냄새, 벌레, 정리되지 않은 환경은 나의 감각을 자극해 금세 불쾌감을 불러온다.


나는 동물과 곤충을 싫어한다고 단순히 말하고 싶지 않다. 어릴 때부터 늘 그들과 가까이 있었고, 자연의 풍경을 지금도 사랑한다. 하지만 내 안의 감각은 불결함, 냄새, 털, 죽음의 흔적, 비린내에 늘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그것은 나의 체질이자 경험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래서 나는 동물과 곤충을 집에서 가까이 두고 키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집 안 가득 곤충을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나에게 곤충은 언제나 징그럽고 불결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동물 역시 마찬가지다. 멀리서 관찰하는 것은 즐겁지만, 생활 공간을 나누고 싶지는 않다.


결국 나는 깨끗하고 정돈된 공간 속에서 평온을 얻는다. 다른 사람들은 반려동물의 체온에서 위로를 얻지만, 나는 먼지와 냄새 없는 공기, 고요하게 정리된 방에서 안정을 찾는다.


그것이 내게 어울리는 삶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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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AI Alchemist & Maestro 두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