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아닌 실제가 요구되는 시대에 대하여
요즘 기술 담론을 듣다 보면 오래된 단어 하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온톨로지(Ontology).
20여 년 전부터 이 분야를 붙잡고 씨름해온 사람으로서는 반갑기도 하고, 조금은 서늘한 기분도 든다.
당시 온톨로지는 일종의 만병통치약처럼 불렸다.
복잡한 지식 문제를 해결해줄 새로운 무기이고, 기업이 가진 모든 어둡고 불명확한 지식을 구조화해 하나의 질서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정작 현실 적용은 달랐다.
모두가 그 가치를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작업을 끝까지 수행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일은 너무 어렵고, 너무 많은 손작업을 요구하며, 너무 비싸고, 무엇보다도 도메인 전문가들이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의 형식화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AI가 없던 시절, 우리는 순전히 사람의 두뇌와 문헌과 회의를 동원해 ‘암묵지’를 뜯어내고 분류하고 정제해 ‘형식지’로 만드는 일을 해야 했다.
당연히, 그 시절의 기술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 후 20년이 흐르고 AI가 등장했다.
LLM, 자동 분류, 관계추출, 패턴 분석, 의미 기반 검색…
온톨로지 구축에서 한없이 손이 많이 가던 작업들이 이제 상당 부분 자동화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언젠가는 가능하겠지”라며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수준의 작업들도, 이제는 실제로 구현 가능해졌다.
그래서 산업 곳곳에서 다시 온톨로지가 소환되고 있다.
AI를 더 똑똑하게 만들기 위해, LLM과 기업 데이터 사이에 질서와 구조를 부여하기 위해,
그리고 ‘AI First’ 시대의 진짜 경쟁력을 얻기 위해.
그러나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된다.
조금 쉬워진 것이지, 쉬워진 것이 아니다.
난이도는 여전히 높다.
그리고 그 난이도는 기술 그 자체보다는 인간 지식의 복잡성에서 비롯된다.
온톨로지는 결국 ‘암묵지 → 형식지’의 변환 과정이다.
이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목표 지점이 존재한다.
과거의 학습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고, 단순 통계나 회귀적 추론으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는 인간 맥락의 고유 구조를 포착해야 한다.
이 작업은 근본적으로 어렵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많은 기업들은 온톨로지를 새로운 데이터 기술, 혹은 AI 엔지니어링의 연장선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온톨로지의 심장부는 도메인 지식 그 자체다.
지식을 분해하고, 의미를 구획하고, 관계를 명시화하고, 모호함을 제거하는 일은 단순한 프로그래밍이 아니라, 해당 분야의 ‘언어·조직·문화·과정’을 완전히 이해한 전문가만이 수행할 수 있는 일이다.
쉽게 양성할 수 있는 인력들도 아니다.
몇 주간 훈련한다고 만들어지는 직업군도 아니다.
오히려 장기간 쌓인 업무 경험과, 의미를 구조화할 수 있는 사고 능력을 동시에 갖춘 극히 제한된 인재들이다.
이 때문에 Palantir가 이 영역에서 실제 어떤 작업들을 수행하는지, 그들의 시스템이 어떤 전처리·추상화·정합성 관리 프로세스를 거치는지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마케팅 문구가 아니라, 실전에서 어떤 지식 공학이 작동하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Palantir는 한순간에 지식 구조화의 챔피언이 된 것이 아니다.
IBM, Xerox PARC, Cyc 프로젝트 등 30여 년 동안 쌓여온 지식 관리·의미 표현 경험이 누적된 끝에
비로소 지금의 제품과 시장을 만든 것이다.
온톨로지를 다시 이야기하려면,
우리는 이 역사를 반드시 직면해야 한다.
돌아보면 나는 ‘지식관리(Knowledge Management)’라는 말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이 분야에 발을 들였다.
그때 회사들은 지식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지만, 정작 지식을 구조화하는 데 필요한 노력과 비용은 감당하지 못했다.
지식관리 시스템은 포털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방대한 문서 저장소에 불과했다.
지식은 체계화되지 않았고, 의미는 연결되지 않았고, 활용성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AI가 지식을 ‘추출’하고 ‘연결’하고 ‘일반화’할 수 있는 시대다.
사람이 해야 했던 70–80%의 반복 작업이 자동화될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 마침내 ‘진짜 지식관리’의 시대가 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제야 우리가 그 말의 진짜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AI가 강해질수록, 온톨로지는 더 강력한 요구로 돌아온다.
AI가 세상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먼저 지식을 조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온톨로지가 다시 회자된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화로 “쉽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이 성숙한 지금, 온톨로지를 구축해야만 하는 이유가 모두 눈앞에 드러난 것뿐이다.
AI가 제대로 작동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차이는 결국 ‘지식 구조화 능력’에서 갈릴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은 단순한 개발이 아니라, 기업 내부 지식을 해부하고 다시 조립하는 근본적인 ‘지식 공학’의 문제다.
우리는 이제 30년 전의 유행이 아니라, 진짜로 필요해진 온톨로지의 시대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조용히 그리고 깊게 이 작업을 다시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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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AI Alchemist & Maestro 두드림
- Orchestrating AI, systems, and human judg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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