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 아래 반짝이는 네모난 빛들
번듯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편해야 할 친구들 간의 만남도 편하지가 않다.
어느 타이밍에 ‘요새 무슨 일 해?’라는 물음이 나올지, 그때 멋쩍게 웃으며 얼마나 솔직하게 내 상태를 설명해야 할지, 그 자체를 고민하느라 만남을 꺼리기도 했다. 친구는 별생각 없이 물어본 것일 테고, 내 대답이 어떻든 곧 잊고 오히려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을 수도 있다. 나 자신의 초라함에 집중한다는 것은 누구나 자신을 가장 신경 쓴다는 것의 증거이기도 할 테다.
인생의 초라한 순간은 이야기가 되었을 때 재미를 주는 요소가 된다. 첫 시도부터 훌륭하고 잘되고 이야기의 끝까지 잘 나가기만 하는 맥락은 왠지 보기 싫지 않나? 그런 이야기가 존재하기는 하나?
머릿속의 나는 자기 계발서의 한 꼭지처럼 빛나는 성공을 향해 나아가고 그것을 성취해내고 싶지만, 바깥에서 나를 관찰하듯 본다면 주식 차트처럼 오르내리는 곡선 위에 서있는 한 인물이 보일 것이다. 그 인물이 흙탕물에 처박히고 생존의 위협을 넘어 끝내는 만나게 되는 행복한 미래, 그 결말을 바라면서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게 될 것이다.
일상에서 번뜩이며 지나가는 쓰고 싶은 일들이 있다. 기세 좋게 연재 버튼을 눌렀지만 이내 흐지부지 되어버린 글 목록이 부끄럽다. 아침 10시 반부터 이제는 해가 짧아 어둑해져 버린 저녁 6시 무렵까지, 9개의 호텔 객실을 청소하고 나니 문득 이 마음 그대로 청소하는 일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 폴더 한쪽에 사용하지 않는 앱으로 분류되어 있던 브런치 앱을 다시 깔았다. 늘 생각하고 있었지만 가장 최근에 쓴 글이 작년이라는 것이 멋쩍다.
청소하는 일은 한지는 이제 만 2년을 넘겼다. 1 객실을 청소할 때마다 수당이 쌓이고 월급으로 받지만 4대 보험은 없다.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밤은 일주일 중 가장 성수기여서, 만실이 될 때가 많다. 그러면 오늘처럼 하루에 9개 전후의 객실을 청소하게 된다.
‘생활형 숙박시설’ 줄여서 생숙이라고 불리는 오피스텔 구조의 건물에서 호텔이 운영되고 있는데, 일반적인 호텔처럼 고정된 시간을 일하는 게 아니라, 배정받은 만큼만 청소하고 알아서 퇴근한다. 검색하다 찾아본 바로는 일반적인 호텔은 여사님이라 불리는 (주로 중년의) 여성들이 하루 10~12 객실을 청소한다고 한다. 일반적인 호텔에서는 매일 츨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꾸준히 10~12 객실 청소를 한다면, 나의 경우 평일엔 줄어든 숙박률만큼 청소할 객실 수가 많지 않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고정된 월급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평일엔 3시 전후로 끝나 밝은 하루가 몇 시간 남아있다는 것이 좋다. 오늘은 이미 캄캄해진 하늘을 보며 나왔다. 어제보다 조금 살이 찐 반달이 떴고, 그 아래 근처 호텔이 보였다. 체크인한 방들의 네모난 주황빛, 달 아래 그만큼 밝은 네모들의 집합을 보며 내가 청소하고 나온 건물을 올려다본다.
오늘 하루 나의 시간을 이곳에서 9 객실을 청소하는데 썼다. 어느 날은 이 생각이 괴롭고, 오늘은 담담히 뿌듯하다. 세상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먹다 남은 라면을 싱크대 개수구에 부어 걸러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넣고, 변기 물기를 폐수건으로 닦고, 얼룩이 있는 리넨은 다시 또 갈면서, 하루치 숙박료를 지불하고 들어올 누군가를 위해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두고 나왔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꾸준히 누군가의 수고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저절로 알게 된 지난 2년. 귀로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는 것, 돈 받고 운동한다는 정신승리, 끝나고 나오면 신경 쓸 것이 하나도 남지 않는 말끔함. 이런 장점들로 인해 다음 단계로 나아갈 결단을 내리기 전 지지부진한 마음을 지닌 채로 매일 출근하고 있다.
이 챕터를 다 쓰고 나면, 책장을 넘기고 나면, ‘아 그때 참 좋았지’라고 말할 수 있게 내일도 오늘처럼 열심히 청소기를 밀어야겠다.